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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생각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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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uabba Jan 16. 2020

직업에 대하여

(※이 글은 대략 한 달 전쯤... 쓴 글입니다) 


1. 

요즈음 나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뭔가 하는 일은 많은데 그래서 이걸 다 묶어서 뭐라고 하면 좋을까 생각한다.


직업을 소개할 때는 "프리랜서 브랜드 기획자입니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편이긴 한데,

요즘의 내가 정말 브랜드 기획 일을 하고 있나 싶기도 하고 

브랜드 기획이라는 게 있는 일인가 라는 생각도 들어서 


쓰기는 하지만, 딱히 와 닿지는 않는 느낌이다.


2.

어쨌든 "브랜드 플래너 혹은 브랜드 기획자"라는 말을 쓰기는 하는 게

이것을 대체할 수 있는 단어를 아직 찾지는 못했다.


컨셉 플래너라고 하기에는 (이전에 내가 하는 일은 컨셉 플래닝이었다) 지금은 컨셉만 다루지는 않고

네이미스트나 카피라이터라고 하기에는 내가 하는 일을 한정 짓는 것만 같다.


그렇다고 마케터는 더더욱 아니고. 


3. 

그런 게 뭐가 중요하냐, 일만 잘하면 됐지- 하며 크게 신경은 쓰지 않고 있다.

일단 브랜드 기획자라고 했을 때 모두들 비슷한 이미지를 떠올리고는 한다.


마케터는 아니고, 브랜딩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이구나. 


정확하게 브랜딩 관련 일이라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니깐. 

사람들이 가장 편하고 쉽게 받아들이는 단어를 일단은 쓰고 있는 셈이다.


4. 

과거, 네이밍을 다루는 회사는 "작명소"로 분류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처음 있는 직군이다 보니, 전문직이나 사무직이 아닌 "이름을 짓는다"라는 피상적인 것만 본 셈이다. 그렇다고 아주 틀린 건 아닌 것이 진짜 예전에 회사들은 작명소 가서 이름을 짓고는 했다.


내가 존경하는 분은 항상 네이밍을 "아기 이름 짓는 데도 이 아이의 20년, 50년을 보고 짓는데 회사 이름도 미래의 성장을 생각하며 기획해야 하지 않겠냐"라는 말씀을 종종 하신다. 


5.

그러던 작명소가 이제는 네이미스트, 버벌리스트 등으로 전문 직군이 되어 컨설턴트나 카피라이터와는 구분 지어 받아들이고, 또 일을 의뢰한다. 


카피라이터 출신인 "김하나" 작가님은 본인의 업을 "브랜드 라이터(Brand Writer)"라고 명명한 걸 보았는데 참 좋다는 생각을 했다.

카피라이터보다는 조금 더 브랜드 차원에서 생각하며, 소비자의 언어로 글을 쓰는 것. 그분이 하시는 일과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6.

새로운 말을 조합하고 지어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네이밍을 할 때도 억지로 말을 조합하는 것보다는 베이직한 단어에서 찾는 편이다. 심플함이 주는 힘은 대단하기 때문에. 익히 알고 왔던 이름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훨씬 파워풀하기 때문에. 


하지만 왜인지 나의 업을 명명하는 새로운 것을 찾고 싶은 요즈음이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 브랜드 기획자보다 조금 더 가벼우면서도, 내가 하는 일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것.


7.

요즈음 나의 일을 이야기해보자면 정말 개발 빼고 다하는 듯한 느낌이다. 


아무래도 혼자 일을 하다 보니, 긴 호흡으로 가져가는 일보다는 빠르게 아웃풋이 나오는 일들이 많다. 트렌드 리포팅부터 네이밍, 스토리 라이팅, 콘텐츠 제작 등등.


이 모든 일의 공통사항은 "글쓰기"라는 점이다. 디자인이나 개발이 아닌 아웃풋은 결국 PPT든, 워드 파일이든 "글"로 아웃풋이 나온다는 점이다.


8. 

최근에 JOH에서 발간한 "JOBS : Editor"를 읽어 보았다. 에디터라는 직업에 대해선 꿈이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이기도 했고. 잡지에서 일한다는 건 어떨까 아직도, 가끔은 상상해 본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하는 일과 어딘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보다는 기존의 요소들을 조화롭게 재편집하는 일. 그래서 늘 관심을 갖고 봐야 하며, 소비자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도 다시 한번 봐주고. 


내가 하는 일도 그렇지.

소비자를 보고, 트렌드를 보고, 브랜드가 가진 가치를 파악해서 타깃에게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전달하는 것. 그리고 그 방법은 주로 글이라는 점 또한 닮았다.


9. 

Brand Editor.


문득 생각이 났다. 브랜드 에디터라고 하면 어떨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브랜드가 가진 가치를 나열해보고, 소비자와 마켓을 보고 가장 핵심으로 두어야 할 것을 가려주고 그것을 소비자의 언어로 편집하여 표현해주는 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가장 잘 표현한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10.

하지만 저 단어를 막상 쓰려니 오글거림이 일어났다.

그럼 사람들이 나에게 에디터라고 부를 텐데 이것 참. 오해하기 딱 좋네- 라는 생각과

내가 에디터라는 호칭을 달 수 있을까라는 소심한 생각들. 


이내 나는 생각을 접었다.

어휴, 됐어. 일이나 하자. 저런 게 다 무슨 소용이람. 일을 잘해야지.


11.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언젠가 저 단어를 쓰고 싶기 때문이다.

내공을 조금 더 쌓고, 나도 내가 하는 일을 더 단단히 만들고 나면 당당하게 저는 브랜드를 에디팅 하는 사람이에요 라고 말하는 게 부끄럽지 않을 때. 


그때가 멀지 않은 시일에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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