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그림책과 기록하기
그림책과 생각 대화 9
그림책 장면에 오랜 시간 머물러요. 그 시간 동안 장면의 안과 밖을 연결시켜 천천히 바라봅니다.
'저 장면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지? 어떻게 그 일이 일어났을까?'
'장면 밖에서 누군가 바라보고 있다면, 어떤 말을 해줄까?'
장면을 바라보면, 문득 내 생각이나 느낌으로 떠오는 것이 있어요. 장면을 살피며, 나의 느낌이 떠오르는 순간을 놓치지 않아요.
"나는 왜 그 장면에서 울컥한 마음이 떠올랐을까요?"
<우리는 당신에 대해 조금 알고 있습니다> 그림책을 펼쳤어요. 그림책 속 식물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식물이 있는 공간, 그 너머의 공간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를 연결해서 지금 느낌과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식물은 우리들의 베란다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식물은 아주 오랫동안 우리를 관찰했다고 전해요. 물론 쉽지만은 않았다고 이야기해요. 나도 식물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살고 있었는지 기억을 가져와요.
내 기억이 떠올랐어요. 내가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힘들었을 때, 그때는 식물들을 돌아볼 수도 없었어요. 그때 <우리는 당신에 대해 조금 알고 있습니다> 그림책 속 식물들은
"당신은 가끔 많이 힘들어 보입니다.
우리를 돌아볼 수도 없을 만큼."
이렇게 이야기해줍니다.
식물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지럽게 놓여있던 그때 마음을 가지런히 놓아봅니다.
"그래, 나 그때는 참 많이 힘들었어."
시간은 돌아서 다시 지금의 나에게로 옵니다. 시간을 넘나들며,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마주하게 하지요. 아이들에게도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아이들 마음속에 남아 꾹꾹 막혀 있던 응어리를 하나씩 풀면서 자기 이야기를 꺼냅니다.
'작은 숨소리'로 마지막 힘까지 다해 부르는 아이들의 마음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그림책 장면은 아이들의 시간을 되돌려, 예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을 견주도록 해요.
지금은 어떤지, 그때는 어땠는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이들이 끝도 없이 힘들었던 순간, 뛸 듯이 기뻤던 순간, 이해되지 않은 슬픔에 소리도 내지 않고 울었던 시간까지.. 예전의 자신을 지금에 데려와 바라보게 해요. 아이들은 지금의 마음으로 그때를 이해하며, 돌아보기도 하고, 여전히 힘들기도 해요.
식물이 우리를 관찰했던 것처럼, 아이들은 자신을 관찰하고 기록하게 합니다. 왜 자신을 돌아보며 관찰해야 할까요?
그 시간은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아이들은 영문도 모르는 질문에 속절없이 헤매다, 자신의 등대를 찾아냅니다. 그 등대를 보면서, 자신의 길을 가려고 마음먹어요. 자신의 느낌과 이유를 기록하는 아이들에게 힘이 생깁니다.
자신을 되돌아보며 부단히 성장시키는 기록하기는 이렇게 스스로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는 힘이 됩니다. 생각의 각도가 생겨, 좋은 선택을 하도록 이끌어주기 때문이지요. 나를 꺼내놓습니다. 그리고 기록합니다. 나의 정성스러운 시간 이야기를요.
삶에 대한 애착, 정성이 더해지는 시간은 언제 만들어질까요?
각자의 이야기는 어떨 때, 의미 있게 다가올까요? 나를 힘들게 했던 그 일들이 지금은 시계 추에 매달린 초시계보다 빨리 스치기도 하고, 고개가 아플 만큼 올려다본 시계의 짧은바늘 움직임으로 느껴질 때도 있지요.
기록을 하며 정성이 더해지는 시간 속에서 아이들은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살게 됩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과정에서 주인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이 선물처럼 다가옵니다.
그림책 장면에 멈춰서, 그 장면과 비슷하게 자신이 겪은 일을 써 내려갑니다. 그 생각이나 느낌을 쓰면서 나를 돌아보고, 스스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되지요. 자기표현을 하는 아이들이 됩니다.
무엇인가 늘 아이들은 해야 합니다. 그 일을 왜 해야 할까요? 누군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는 일마다 의미와 목적을 생각하며 행동하는 아이들에게 그들이 적어놓은 글은 힘을 실어줍니다. 일상에서 느낀 좋았던 마음, 부정적인 마음을 드러내어, 그때 자신을 이해하고, 불편한 마음을 스스로 해소하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림책을 읽으며, 마주한 장면에서 오늘도 천천히, 여유 있는 마음으로 사각사각 소리 내며 기록을 더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