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의 여자
220쪽
여전히 구멍 속에 있다는 사실은 변함없는데, 마치 높은 탑 위에 올라 있는 듯한 기분이다... 구멍 속에 있으면서, 이미 구멍밖에 있는 것이다.
나의 질문과 대답
여전히 같은 세계에 살고 있지만, 그 세계 밖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낀 경험이 있나요?
아이가 물었다.
"선생님, 우리 집은 가족이 2명만 있어요. 엄마와 아빠랑 같이 살지 않아요."
쉬는 시간 다음 수업을 준비하느라, 컴퓨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나에게 아이가 보낸 질문이다. 나는 그 질문을 보냈다고 느꼈다. 아이가 조심스럽게 보낸 질문에 나는 1초의 쉼도 없이 되물었다.
"OO는 어때? 너는 기분이 어때?"
"저요? 저는 괜찮은데요."
"그래? 네가 괜찮다면 다행이다. 혹시나 네가 괜찮지 않다면, 언제든 선생님께 알려줘. 선생님은 너의 이야기를 듣고, 그때 너의 마음에 대해 시간을 함께 할 거니까."
"네!"
흔쾌히 뒤돌아서는 아이의 두 어깨를 살핀다. 안도, 편안함, 즐거움이 양 어깨에 실려있다. 그 질문 이후로, 아이는 수시로 나에게 와서 자신의 마음과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여전히 같은 세계에 살고 있었더라면, 나는 쉽게 판단하고, 내 마음결에 따라 아이의 마음까지 그러할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가족이 2명이니까.. 얼마나 힘들까.. 아마 다른 사람을 신경 쓰느라 주눅 들지 않았을까..
아이의 조그만 행동에도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해석했을 수도 있다. 굉장히 섣부른 형태의 말과 행동으로.
공부하는 삶을 이어가고 있는 나는 여전히 같은 세계에 살고 있지만, 세밀하게 관찰하려는 눈과 마음이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니까, 원래 그렇게 해왔으니까 식의 몰아가는 형태의 판단을 멈추기로 했다. 모든 것이 새로워졌다.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한 기분이 느껴진다. 공부로 얻게 된 마음 과학자의 안경은 쉽게 판단하지 말 것과 여러 가지 상황을 상대방의 의도에 따라 공감적 이해, 일치, 자기 존중으로 살펴볼 것을 요청한다. 이 요청에 응한 이후로 내가 마주하고 있는 세상은 또 다른 느낌인 것이다. 내 가족, 동료, 아이들에게 있어서도 작은 부분이 골똘히 지켜봐야 할 부분이라, 예전처럼 쉽게 나의 날 선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여전히 같은 세계에 살고 있지만, 그 세계 밖에 있는 듯한 기분은 나에게 오히려 평안함과 신중함을 가져다주고 있다.
지금 있는 그대로, 이 시간을 살고 있는 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