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107쪽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옆에 서서 구경만 하는 그런 방관자의 입장에서 벗어나, 정말로 실생활을 해나갈 수 있는, 실제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정말로 기쁨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여건이 자기에게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였던 것이다.
나의 질문과 대답
나는 방관자인가요? 혹은 정말로 기쁨을 누리면서 살아가나요?
두려웠습니다. 내 감정을 꺼낸다는 것은 그 뒤에 이어질 책임의 말을 덧붙여야 하고, 긴 시간 동안 설명해야 하는 것을 의미했으니까요.
나는 나의 감정에 방관했습니다. 기쁨은 그런대로 누렸지만, 슬픔과 화, 억울함에 대해서는 남의 것인 양 철저히 비켜서 있었습니다. 내가 주인인 모든 감정들에 대해서 말이죠.
감정의 노예가 아닌가 의심하는 날들이 계속되었어요.
의심을 시작하자 무기력과 침묵이 수시로 찾아들었습니다.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방법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했습니다. 화를 내는 것은 나 스스로가 부족한 것이라 여겼고, 슬픔에 대해서도 비꼬아가며 자신을 비난했습니다. 자책의 시간은 더욱 나를 몰아세웠고, 그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는 높은 성을 쌓아놓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 높은 성에서는 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힘이 빠지는 줄도 모르고, 온 힘을 다해 일을 했습니다. 높은 성에 사는 나를 인정해달라고 사람들에게 소리치기도 했고요. 사람들의 침묵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높은 성에 사는 나는 감정에 대해서 철저하게 침묵했습니다.
공부가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느낌이 어때요?"
한마디 말도 못 하고, 웅크렸습니다. 눈은 흔들렸고, 두 다리를 덜덜 떨렸습니다. 나는 나의 몸의 상태를 희미하게 느꼈습니다. 내가 가련하게 느껴졌습니다. 나는 내 생각을 전하는 대신, 지금 여기에서 느낌을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느끼면서 시작된 나의 앎은 애도의 시간 동안, 나를 충분히 세심하게 들여다보도록 했습니다.
어떤 조건도 없이 나의 존재와 감정은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진정으로 충분히 나를 느끼게 된 날!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혼자 참 고생이 많았다고 말이죠.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었지요. 친구, 부모님, 남편, 아이들... 하지만 나에게는 나의 시간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나에게 제대로 집중하는 시간 말이에요.
방관자로 사느라, 괜찮은 척 사느라 내가 참 고생이 많았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눈치도 많이 보았던 것 같습니다.
침묵했고, 나의 일임에도 제대로 나서지 못했습니다. 대범한 척했고, 좋은 척을 했지요.
공부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나의 경험을 차분하게 언어로 꺼내고 있나요?
나의 언어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있나요?
나는 비로소 정말로 기쁨을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나의 존재를 충분히 느끼고 있습니다.
완전하지 않지만, 일어나지 않을 일은 없습니다.
나는 나의 침묵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꽤 괜찮은 기쁨이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