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납니다. 수업에서, 학급 생활에서 아이들 시간을 천천히 살펴봅니다. 3월 선생님과 아이들, 그리고 아이들 사이에서 새로운 만남으로 신기함을 느끼고, 그 시간이 차츰 지나면 적응도 어느 정도 이루어집니다. 매일 만나는 아이들 얼굴을 가만히 떠올려봅니다. 아침에 아이를 만났을 때, 그 아이는 왜 그렇게 힘이 없었을까? 쉬는 시간 돌아다니는 그 아이는 왜 그렇게 싱글벙글 웃음이 떠나지 않았을까? 아이의 존재를, 아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선생님은 환대하면서 기쁨으로 받아들였는가를 생각해봅니다.
교사는 아이들을 위해 존재합니다. 아이들이 서로 불편한 점이 생겼을 때, 교사는 아이들을 먼저 돕습니다. 아이들이 잘 해내는가, 못하였는가 확인하고 점검하는 일도 필요하지만, 그 범위를 넘어서서 아이들에게 사랑 광선을 보냅니다. 그래야 아이들의 마음이 따뜻해지고, 그 마음으로 해야 할 공부를 편안히 해낼 수 있음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끔씩 아이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립니다. 왜 선생님이 갑자기 야단을 치실까? 억울하기도 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아이들의 마음은 복잡해져만 가지요. 내가 잠깐 친구와 이야기한 것뿐인데 그것이 그렇게 우리 모두의 공부에 방해가 되는 것인가? 선생님은 왜 유독 나에게만 그러시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으로 다음 공부가 잘 되지도 않고, 책을 펼치기도 싫은 마음이에요. 아이들 마음이 굳어져갑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설명해주시는 내용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는 옆 친구들과는 다르게 선생님 말씀이 이해도 되지 않고, 괜히 물어봤다가는 이것도 모르냐면 핀잔을 듣는 것도 부끄럽습니다. 수업 시간에 질문하지 않는 것, 이해되지 않아도 조용히 가만히 있는 것이 어쩌면 꽤 오랫동안 더 편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있는 그 교실이, 그 수업이 진짜 자신을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환대받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밀려나는 느낌. 내가 선택한 상황도 아닌 이 공간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겠고. 답답한 마음에 다음 공부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악순환이 매일 벌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이쯤 되면 질문이 나옵니다. "학생들은 과연 수업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는가요?" 학생에게 바라는 모습은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을 잘 듣고, 조용히 있는 거 아니냐고 되물을 수도 있어요.
아이들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공부에 대해, 무엇을 하는지, 40분이라는 시간 동안 어떤 순서로 공부하는지 이공부가 어떤 도움이 되는지 알고 있을까요?
순간적으로 생각을 떠올리고, 자기 경험을 떠올리며 기록을 해나가는지 물어봅니다. 왜 이 질문을 떠올려보아야 할까요?
바로, 수업의 주인공은 "학생"이기 때문입니다.
수업의 주인공인 학생은 교실 수업의 공간과 맥락에서 자신의 할 일을 확인하며, 진행해갈 수 있어야 합니다.
학생이 수업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더 이상 이해하기 어렵고, 질문조차도 두려운 수업 내용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생각에 연결된 자신의 생각을 물어 무엇인가 탐색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아이들 스스로의 힘을 토대로 진짜 알아야 할 것에 다가가야 합니다.
다시 질문을 떠올려봅니다. 수업에서 주인공은 누가 되어야 하며, 수업에서 질문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편안한 표정으로 교사는 학생들을 응시합니다. 아이들도 이 관찰을 알고 있습니다. 이 시선이 불편하지 않고, 기대됩니다. 학생들의 성장을 위해 선생님의 친절한 안내가 선물처럼 주어질 것을요. 학생 스스로의 경험이 소중하게 여겨지는 교실 수업을 바라봅니다. 아이들과의 거리를 좁힙니다.
수업의 주인공인 아이들을 돕기 위한 시선을 내내 보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