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교사라는 직업만큼 복장에서 자유로운 직업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한 여름에도 어김없이 꽉 끼는 셔츠를 입고 다니는 주변 친구들을 볼 때면 더욱 그렇다. 물론 생물학적 남성인 내가 느끼는 자유로움의 정도가 생물학적 여성이 느끼는 그것과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안다. 어찌 됐든 스스로를 꾸미고 치장하는 걸 즐기다 보니 지난 10년 동안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여럿 있었다.
2012년, 당시만 해도 투블럭 컷이 유행했다. 남고에 첫 발령을 받았기에 남학생들에게 강인한 인상을 주고 싶었다. 옆머리를 3mm 정도로, 하얗게 보일 정도로 밀고 출근했다. 당시로는 나름 파격적인 헤어 스타일이었다. 학교에서도 꽤나 화제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달여쯤 지났을까? 야간 자율학습 감독을 하고 있는 와중에 교감 선생님이 밖에서 손짓으로 나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말씀인즉슨 '교직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머리이니, 헤어 스타일을 바꿨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교직 사회에 어울리는 머리와 어울리지 않는 머리는 대체 무엇일까. 26살, 어린 교사의 만만한 이미지를 극복(?)하고 싶었기에 한 스타일인데, 대체 무엇이 문제인 걸까?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물론 헤어 스타일은 바꾸지 않았다.
2013년, 무더위가 극심하던 어느 날,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학교에 출근했다. 심하게 찢어진 청바지는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그 복장이 화제가 되었다. 그날, 학년 교무실에서 나오다 교장 선생님과 마주쳤다. 교장 선생님은 내 바지를 보시더니 혀를 끌끌 차시며, '김형성, 진짜 가지가지하네'라고 말씀하셨다. 가지가지라니. 하나의 '가지'가 찢어진 청바지라면 나머지 '가지'는 내 머리였을까? 기분이 나빴지만, 웃어넘겼다. 그리고 다음에도 보란 듯이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출근했다.
2014년, 마찬가지로 무더운 여름날. 이번엔 도저히 못 참겠다 싶어 반바지를 입고 출근했다. 반응이 무척 뜨거웠는데, 교직 생활을 하면서 반바지를 입은 남자 선생님은 처음 봤다는 선생님부터 나도 입고 다녀야 되겠다는 동료 남자 선생님까지, 정말 복장 하나로 이렇게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닫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에너지 절감을 위해 공무원들의 반바지 출근을 장려하고, 쿨비즈룩과 관련된 각종 뉴스가 쏟아져 나올 때였다. 그런데, 대체 뭐가 그렇게 놀라웠던 걸까?
꽤 많은 시간이 흘러 어느덧 2020년 2월이 되었다. 당시 운 좋게 핀란드와 덴마크에 해외 연수를 가게 되었는데, 부산에서 근무하는 20여 명의 선생님들과 함께 했다. 핀란드의 어느 관광지를 둘러보고 다시 숙소로 가던 길이었다. 당시 동행했던 장학사 한분께서 나에게 넌지시 '김형성 샘, 화장도 좀 하는 것 같은데, 그렇죠? 학교에서 다른 선생님들이 뭐라고 하진 않아요?'라고 물어보는 것이 아닌가. 내가 하는 화장이라곤 고작 bb크림을 바르는 정도였지만, 50대 중반의 여자 장학사님에게는 그 모습이 무척이나 생경했던 것이다. '장학사님, 요즘 bb 크림은 화장으로도 치지 않습니다. 유튜브에 남자 메이크업이라고 한번 쳐 보시겠어요?'라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 네... 뭐 이 정도는 다들 하는 걸요.'라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할 말을 하지 못한 게 후회가 된다.
2020년 8월, 고3 담임을 하며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던 어느 날이었다. 이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서든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별 고민을 하지 않고 미용실에 가서 3번의 탈색을 한 뒤, 애쉬 그레이로 염색을 했다. 그 다음날 출근하니 학생들은 물론이고, 학교 선생님들께서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셨다. 꽤 뜨거운 반응이 있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라니. 그 이후에 친한 선생님께 들은 바로는, 많은 선생님 사이에서 내 헤어 스타일이 한동안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였다고 한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묵혀둔 지난 기억을 떠올리게 된 건 2021년 8월 24일, 중앙일보에 게재된 정의당 국회의원 류호정의 뉴스 기사를 보았기 때문이다. 몇몇 언론은 원피스와 멜빵바지를 입고 국회에 출석한 류호정을 향해 'TPO에 어긋난다'며 문제를 제기했다고 한다. 과연 국회라는 시간과 공간, 회의라는 목적에 원피스는 부적절한 의상이었을까? 어떤 사람들은 류호정의 원피스가 '예의 없으며, 타인을 배려하지 않은 행위'라며 비난했다고 한다. 원피스는 언제부터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자기중심적인 의상이 된 것일까?
이런 뉴스 기사를 볼 때면 과도한 '무엇 다움'을 당위와 의무로 규정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교사다움은 과연 무엇일까? 착실하고 모범적인 외양은 교사다움의 조건일까? 그렇다면 착실하고 모범적인 외양은 무엇일까? 학교에서 학생이 해서는 안 될, 교칙으로 규정된 각종 복장 규정을 교사 또한 따르는 것일까? 투블럭, 찢어진 청바지, 반바지, 남자의 화장과 염색은 그야말로 교사답지 않은 '불량스러운 외양'이었을까? 결과적으로 학생들에게 몸소 모범을 보여야 할 교사가 학생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걸까?
한 개인의 의상이 일으키는 사회적 반응에서 우리 사회가 지닌 무거운 권위의식과 지나친 엄숙주의를 발견하게 된다. 품성과 자질이 아닌 외양으로 무엇다움을 규정하는 우리 사회의 손쉬운 판단을 마주하게 된다. 분명히 가볍게 내려놓아도 될 것들이, 깨져야 할 편견들이 있다. 가벼운 바깥 안에 쌓인 묵직한 내면이야말로 무엇다움을 만드는 그 무엇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