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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사랑 그리고 하드보일드

책, <무기여 잘 있거라> 어니스트 헤밍웨이

by 너무강력해

누군가에게는 건조하고 딱딱한 문장이겠지만 나에게는 깔끔하고 가식 없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잔재주 넘치는 감정묘사 없는 냉정함, 하드보일드다. 케서린이 병원에서 죽는 소설의 마지막을 감상해 보자. '잠시 뒤 나는 병실 밖으로 나와 병원을 뒤로 한 채 비를 맞으며 호텔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당시 있었던 사실만을 나열했다. '비가 내 슬픈 마음을 아는지' 라거나 '애꿎은 비'라는 묘사 없이 헨리의 행동만 서술했음에도 그의 비참한 심정이 전해져 온다. 나는 하드보일드의 매력이란 이런 점이라 생각한다.


분단국가에서 태어나 여태껏 살아오면서 전쟁에 무감각해진 것도 사실이다. 위기 속에서 살아가다 보니 위기에 둔감해진 것이다. 대부분이 국민들이 그런데 요즘은 북한의 도발이 있어도 라면 사재기 이런 건 없다. 이와중에 작품을 읽으며 전쟁의 참상에 대해 떠올리게 되었다. 포탄이 떨어져 주인공 헨리와 부하들이 부상을 당하거나 죽는 장면, 총에 맞아 죽는 장면, 전쟁이 길어저 비이성적 행동을 하는 군인 무리들. 전쟁이란 얼마나 끔찍하고 비참한 것인가. 오늘날 지구상에도 무수한 전쟁들이 일어나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3년째 진행 중인데 부상당한 러시아 병사를 우크라이나 드론이 포착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 병사는 드론을 향해 담배 한 대만 피게 해달라는 신호를 보냈고 손이 떨려 불을 제대로 붙이지도 못했다. 이후 드론에서 포탄이 떨어진다. 정말 끔찍한 일이고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것 같다. 소수의 위정자들에 의해 전 세계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나만이 아닌 앞으로 많은 생이 남아 있는 젊은 세대, 어린 세대들은 어쩌란 말인가. 우리 모두 경계심을 가져야 하지만 이 세상은 더욱 극단으로만 치닫고 있다. 그래서 걱정이다.


삶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나 목표 없이 살아가는 미국 청년 헨리는 우연히 케서린이라는 영국 간호사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너무 갑작스러운 전개에 소설이라 그럴 수 있지만 뭐 현실에서도 청춘 남녀의 사랑은 그렇지 않은가. 금방 불타오르는. 헨리는 사랑을 믿지 않았는데 케서린을 만나 진정한 사랑에 대해 깨우치게 되고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케서린의 죽음으로 비극적으로 마무리된다.


전쟁에 대한 참상과 진정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하드보일드. 재미도 있고 나름 교훈도 있고 글도 술술 읽히고 그런데 무언가 아쉽다. 깊이가 없다일까. 전쟁의 비극도 사랑의 위대함도 들어가다만 느낌. 혀는 좋아하지만 속에서는 별로인 그런 음식 같다. 이런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작품을 폄하하다니. 내 문학적 소양을 더 길러야겠다 정도로 마무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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