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에 우리 시에서 손볼 곳은 죄다 갈아엎은 덕에 이런 후미진 곳에도 길이 새로 깔렸다. 반짝이가 들어간 새 벽돌이 가로등 불빛에 반짝반짝 빛난다. 우리는 이곳을 참 좋아한다. 왼편은 산, 오른편은 5층 정도의 낮은 아파트촌인 이 산책로를. 퇴근 시간 차가 조금만 빠져도 어둑해지는 도시의 가짜 산골. 머리를 들어 왼편을 바라보면 산등성이 위로 별이 보인다.
갑자기 오늘 한번 죽어볼까하고 동네에서 가장 매운 떡볶이집을 다녀오는 길이다. 혀와 식도는 계속 뜨겁고 코끝과 손은 시렵다. 그의 주머니에 오른손을 넣고 한 손만 따뜻하게 우리집으로 돌아가는 여정.
“저기 별 중에 얼마만큼이 인공위성일까”
내가 물었다.
“인공위성은 생각만큼 잘 보이지 않는대.”
그가 말했다.
“그럼 오늘은 별이 많나 봐. 내가 유일하게 아는 북두칠성이다!”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있구나.”
그가 내 손가락을 잡으며 말을 이어갔다.
“저기 국자 모양 끝부분의 별 두 개에 직선을 긋고 간격을 봐봐. 수직선상으로 그 거리의 다섯 배 되는 곳에 북극성이 있어. 초등학교 때 찾는 법 알려줬지.”
정말이다. 저거구나. 북극성이 보인다.
“북두칠성 반대편에는 M자 모양 카시오페아자리야. 겨울에 잘 보여.”
성웅이는 모든 장면을 사진 형태로 기억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거의 모든 것을 기억한다. 나? 북두칠성 별 두 개 거리의 몇 배 되는 곳에 북극성이 있는지 벌써 까먹었다. 세 배? 다섯 배?
“다른 별들도 많은데...이름이 없는 별들은 우리가 몰라주네...”
내가 말했다.
“그렇지 뭐.”
우리가 별이라면 성웅이는 이름난 별자리, 나는 이름 없는 별. 화이트해커 대회에서 입상을 하도 많이 해 대학생 때부터 별별 기업에서 입사제의가 들어왔다는 그의 화려한 커리어는 첫 직장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들어간 지 반 년만에 미국본사 입사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근데 안 간다고 단번에 거절을 했다. 왜냐고? 미국 음식이 느끼해서 자기한테 안 맞다나.
“미국이야 원하면 언제든 가면 되니까. 지금은 또 네가 있잖아.”
내 머릿속에 박힌 말은 ‘네가 있잖아’가 아니라 ‘원하면 언제든’이란 말이었다. 그의 사랑이 심장에 박힌 게 아니라 그의 능력이 급발진한 차마냥 치어 박았다. 나란 미미한 존재를. 자존감을.
어릴 때 일본에 살았단 이유로 자연스레 주어진 일본어 능력으로 먹고 사는 나다. 푼돈의 번역일로 생활비를 번다. 그가 그랬던 것처럼 무슨 번역상을 타본 적도 없다. 몇몇 국내파 번역가들보다 번역 센스도 모자란 것 같다. 살다 왔다는 그 좋은 조건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사는 걸까.
“나는 저 별자리같은 네가 부러워.”
나도 모르게 실언이 튀어나왔다. 이런 구질구질한 마음은 한번도 내색 안 했던 나였다. 난생 처음 본 북극성의 힘일지도 모른다. 밤하늘의 중심을 잡고 있는 네 모습에 무너져버려서.
“너는 너야. 남들이 아는 그런 이름이 뭐가 필요해.”
“무려 미국에서 스카웃 당하는 네가 뭘 알아.”
“나는 그런 거 안 중요해... 나는 나 따위는 비교도 안되는 그런 큰 회사에서 날 부르는 것보다 너랑 갖는 관계가 더 중요해...”
아...너는 널 책임질 준비가 다 됐으니까. 아니 설령 핵전쟁이 나서 문명이 제로가 되더라도 너 살 길 하나는 마련할 애니까. 항상 먹고 살 길을 마련할 머리와 능력이 있으니까 사랑도 보이는 거야. 나는 내가 너무 불안해... 미세먼지가 조금만 껴도 묻혀져 버릴, 이름없고 희미한 별이야. 나를 대체할 번역가는 너무나도 많아.
“나는 너랑 있으면 내가 너무 초라해 견딜 수 없어.”
뽀글이 후리스 소매로 닦이지도 않는 눈물을 훔쳤다. 바닥에 쪼그리고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의 머리 위로 보이는 북극성이 아까보다 선명하게 빛난다.
오늘은 데이트를 한다고 퇴근시간에 맞춰 아직 새 건물 냄새가 폴폴 나는, 그가 다니는 회사 신사옥에 처음 방문했다. 이 비싼 땅에 지은 큰 건물 1층 로비를 왜 이렇게 광활하게 비워놓는 거야. 너무너무 고급진 스타벅스가 들어와 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전 안 입던 흰 셔츠를 입은 그가 무심하게 스피드게이트를 통과하는 게 슬로우모션처럼 보일 때 느꼈다. 지금 이 위화감을.
이런 최첨단 게이트가 주르륵 있는 국내출판사 따위는 없다. 무슨 보안이 필요하다고. 내게 주어진 것이라고는 10만원 짜리 집 책상, 아메리카노 입장권으로 사는 까페 테이블, 도서관. 너는 책상마저도 나보다 좋은 걸 쓰겠네. 앉았다 일어섰다 할 수 있는 그런. 설마 트레드밀도 있는 건...
“모나야, 나는 일본어 하나도 못해. 나는 네가 참 멋있어. 나 언어 감각이 없잖아. 개인의 능력은 다 각자 다른 거야.”
성웅이는 영어도 잘 한다. 심지어 영어로 잠꼬대 하는 걸 들은 적도 있다. 필요가 없으니까 안 배운 거면서. 뭔 개소리야. 미국 입사 제의 거절 1연타, 신사옥 2연타, 언어감각 없다는 드립 3연타...
“성웅아, 오늘은 너는 그냥 너네집 가서 자... 나 오늘 너무 이상하게 굴어서 미안해.”
당연한 수순이었다. 능력도 없는 내가 사랑마저 잃었다. 이만치 초라해진 채로 더 이상 만남을 이어갈 수 없었다.
너와 자주 걷던 별빛 산책로를 혼자 걷는다. 보도블럭은 무슨 반짝이를 넣은 건지 시간이 꽤 지난 아직도 빛을 잃지 않았다. 밤하늘의 별을 보면 네 생각이 위험치로 폭주해 아래만 보고 걷는다.
다른 사람과 비교만 하는 나의 비틀거림은 끝이 없는 듯 했었다. 그래, 내 인생 가장 빛나는 남자를 차버리고서 주정뱅이가 안 된 게 어디야. 나도 많이 바뀌었다. 오늘 마실 맥주는 금빛 별 로고가 새겨진 ‘에스트레야 담’. 나의 별은 그 어떤 형태로도 나를 찾아온다.
아무리 지우려 해도 매일 밤 밀려오는 너의 기억에 언젠가부터 너를 지우기를 포기했다. 그러고 나서야 온전히 받아들인 것 같다. 초라한 나를, 네 기억을 안고 살아야만 하는 운명을.
제목:별을 보지 않고 별을 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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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은 거의 다 제목은 뒤에 두고 보는 소설인데 종이책이 아니라 어쩔 수 없네요. 굿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