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벚꽃

by 구구

세상의 모든 멋은 다 가진 것 같은 밤, 빈 가게마다 인심 좋게 켜놓은 조명은 네모난 상자 속 각기 각색의 유복한 공간을 자랑하고, 어른들의 마음을 유일하게 녹일 수 있는 벚꽃이 가로등에 하얗고 분홍한 빛을 발하는 그런 우주.


희라가 좋아하는 동네, 한 두 달에 한 번은 꼭 찾는 곳. 그녀가 이 동네를 얼마나 좋아하냐면, 평소 같으면 차도에서 눈에 띄는 존재는 물 건너온 외제차밖에 없을 터인데도, 마을버스조차도 이 도로를 스치면 그저 멋있다. 편의점을 간다고, 담배 한 대 쳐 핀다고 쓰레빠를 질질 끌고 나온 평범한 아저씨도 어딘가에서 한 따까리 할 위인처럼 보인다….


희라가 평생 살아보지 못한 주택단지라?, 그 집들 호가가 다들 50억은 우습다는 듯이 훌쩍 넘어서?, 게다가 더 재수 없게 산도 있고 조그마한 개울도 흐르는, 배산임수까지 갖춰서 어느 조선인이 시간을 뛰어 넘어와서 봐도 명당이라고 할 입지라서?



세 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열다섯 번째 정도로 방문한 날일 것이다. 희라는 이곳에 올 때마다 집에서 가족들과 저녁을 먹고 20분 정도 차를 몰아 ‘세렌디피티’라는 카페를 찾는 루틴을 철저히 지킨다. 그런데 오늘은 이 루틴에 미세한 균열이 있었다. 갑자기 초콜릿을 먹고 싶어 생전 안 찾던 편의점을 들른 것이다.


“춥다. 봄이면 좀 더 따뜻하면 안 되나?”


희라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얇은 바람막이를 입은 상체에 맞는 검붉은 봄바람을 느끼며 팔짱을 끼고선 종종걸음으로 편의점을 나왔다. 바로 앞에 있는 이자카야에선 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가게 문을 잠근다.


‘왜 장사를 할 시간에 닫아?’


그녀는 술집마저도 본분을 잊고 주인의 아름다운 여가를 우선하는 곳이라고 이곳의 이미지를 덧칠했다. 핸드폰 시계를 보려던 희라는 계산을 한답시고 핸드폰을 두고 온 것을 깨달았다. 가게에서 핸드폰을 갖고 나오니 아까 그 아저씨가 편의점 바로 앞에 세워진 빨간 SUV의 차 문을 열고 있다. 그리고 둘의 눈이 마주치며 그 아저씨의 이름이 생긴다. 그의 이름은 수영. 그는 그냥 아저씨가 아니라 그녀가 자그마치 처음 사귀었던 남자였다.


“박수영.”

희라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나온 말, 박수영의 눈이 커졌다. 수영도 그녀를 알아봤다. 희라다. 수영도 다행히 희라를 기억했다.


“오희라…. 야아, 오랜만이다. 어떻게 여기서...”

“오빠 아까 저기서 가게 문 닫는 거 봤어.”

“아 진짜?”

“어, 아까는 멀리 있어서 누군지 제대로 못 봤지.”

“어, 오늘 몸이 안 좋아서 그냥 일찍 닫았어. 손님도 없었고.”

“술집 하고 싶다더니 진짜 술집 열었네?”


박수영은 대학생의 특권인 술 처먹기를 가장 잘 누린 사람이었다. 대학 앞은 물론, 클럽, 편의점, 공원, 길바닥 등 인간이 엉덩이를 깔고 있는 모든 곳에서 술을 마셨다. 여건이 안될 때 쓰는 모텔 카드도 필요가 없었다. 그는 그런 날이 필요할 때마다 으리으리한 그의 오피스텔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그렇게 됐네... 근데 너 하나도 안 변했어.”

희라는 지금 자신의 꼴이 어떤지 잠깐 생각해봤다. 한껏 꾸미진 않았지만 누추하지도 않다. 그럼 됐지. 바람막이는 오늘 텍을 땐 새 옷이고 운동화도 신발수집가인 박수영이 알아볼 만한 인기모델이다. 그의 가르침으로 인해 한낱 운동화에도 나름의 세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됐었지.


“몇 년 만이야 우리?”

수영이 자신의 왼손에 낀 반지를 의식하며 되는대로 말을 던졌다.


“17년?”


“아니지, 아니지. 발렌타인 17년산도 아니고. 그 정도까진 아니지.”

늦었다. 아까 괜히 머리를 쓸어 넘겨서.. 봤다. 100퍼 봤다.

“그럼?”


“우리 강수 선배 결혼식에서 잠깐 봤으니까 13년 정도?”

“그래도 졸라 오랜만인데?”


희라가 형식적인 말이 오가는, 이 어색한 만남에 놓인 발렌타인에 물을 좀 탔다. 희라는 술을 못하니까. 졸라 얼음을 집어넣었다.

“졸라? 야아 우리 희라 아직도 졸라 쓰는 거 졸라 좋아하는구나.”

수영은 그제야 어릴 적 미소를 꺼내오며 장난기 있게 말했다. 이것 봐라...잘 되려나.


“너는 이제 안 쓰나 봐?”

“이야...오빠한테 너가 뭐니...”

수영이 웃으며 희라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는 듯 그녀에게 손을 뻗다가 어색하게 내렸다.


‘똑같네.’


희라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희라는 수영이 참 좋았다. 그래서 꽉 막힌 구석이 종종 보였던 그의 마초성도 다 귀여워라 했었다. 그리고 그 추억을 상기시키는 그의 습관을 보니 반가웠다.


“근데 근처 살아?”

수영이 물었다.


“아니, XX동, 여기는 카페 오려고 가끔 와.”

“오빠는?”

“나 저기 가게에서 걸어서 5분, 강 건너가 우리 집.”

“이제 뭐하게?”

“까페 가게. 여긴 그러려고 오는 데라.”

“할 거 있어? 바빠?”

“아니 뭐, 안 바빠.”

“그럼 우리 가게에서 한잔하고 가.”

“좋은 술 줄 거야?”

“야 이놈이, 술맛도 모르는 꼬맹이한테 비싼 술 주기에는 술이 너무 아깝다. 너 아직도 술 안 먹지?”

“나야 뭐, 여전히 안 먹지.”

“그래, 너는 영원히 국산 맥주나 먹어라.”

“근데 술집까지 차렸는데 술배가 안 나왔다?”

“나 20kg 뺀 거야. 와이프가 하도 뭐라 해서.”


수영이 가게의 조명을 켜며 말했다.


‘와이프’.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어른의 세계는 항상 이렇지, 부질없는 희망이란 항상 헛되게 끝을 맺는 삶, 희라가 몰래 한숨을 쉬며 수영의 가게로 들어섰다. 새카만 대리석 벽, 갈색 의자, 옥색 테이블의 조화가 꽤나 멋있다.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앉았다. 아무도 없는, 밤의 공간에서.

“원래 취향이 아니네? 예전에 선술집 감성이셨잖아.”

“와이프네가 인테리어쪽...”

수영은 말을 하다가 아차 싶었다. 어쩌다 보니 또 와이프란 말을 언급했다.


“결혼은 언제 했어?”

“1년 됐어.”

“애는?”

“아직. 뭐 벌써 애를 갖냐. 신혼이라면 신혼인데”


수영이 웃으며 말했다.

‘신혼은 무슨,’ 희라는 그 웃음이 진짜 웃는 게 아니라 간파했다. 그의 진짜 웃음과 가짜 웃음 정도는 구별할 시간을 쌓고서 헤어졌던 사람이었다.


“너는 결혼했어?”

“나는 안 했어.”

“아, 그래서 XX동, 아직 그 집에서 부모님이랑 같이 사는구나.”

“그렇지. 오빠는 왜 여기 살아?”

“와이프 본가가 이 동네야. 여기가 좋대.”


희라는 갑자기 잊혔던 일화가 떠올랐다. 수영이네가 부자라고 그의 친구가 흘렸던 이야기가. 대구에서 제일 좋은 동네에 산다고 했다. 방학 때 놀러 갔더니 아빠 차를 끌고 나왔는데 너무 좋아서 놀랐단다. 반전이 다음 날 끌고 나온 법인차는 한국에 정식수입도 안 된 차라 지네 무리에서 한동안 수영이네 차 얘기만 했다고 떠들었다. 수영의 아빠는 무슨 가방 공장을 하는 사업가라고 했다. 수영은 학교에 다니며 알바도 안 하면서 항상 술 처먹을 돈이 있었고 비싼 신발을 사 모았고 미국으로 어학연수도 갔었다. 그래, 그래서 그 부자 부친이 여기다 집을 해줄 수 있었겠구나.


“무슨 일 해?”

“아직도 그 증권사에서 일해.”

“힘들 텐데 아직도 일하고 대단하네.”

“창구에서 허드렛일 하지 뭐. 오빠도 일하잖아.”

“나는 쉬며 쉬며 하잖아. 지금도 힘들다고 문 닫았고.”


우연찮게도 같은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두 남녀는 인간 상대의 고충을 서로 나눴다. 그냥 밑도 끝도 없이 소리를 질러서 이기려는 진상보다 자기가 절대적으로 옳아서 유식한 자신이 미천한 우리에게 가르치려 드는 새끼들이 제일 미친 놈들이라는 것도 합의를 봤다.


“그래서 한번은 여기 가게 앞에 있는 내 차 빼고 저기 그 편의점 앞으로 차 옮겨 줬대도. 내가 그후로 내 가게 앞에 차를 안 대요.”


어떤 진상이 주차자리로 시비를 털어서, 오늘 몸이 안 좋으셔서, 내가 갑자기 초콜렛을 먹고 싶어서, 하필 물건을 또 놓고 나와서 이렇게 우리가 만났다. 왜? 희라는 의미를 찾고 싶었다.


“XX유원지 요새 간 적 있어?

수영이 물었다.


“음, 한 3년 전에? 우리도 갔었잖아.”

“응, 거기에 돌고래상 있는 거... 알지?”

“있지.”

“가서 봤어?”

“아직 있던데?”

“나는 저번 주말에 갔거든. 진짜 아직도 있더라. 거기서 너 사진도 찍고 똑같이 생겼다고 돌고래라고 내가 한동안 놀리고 그랬는데.”

“응, 굉장히 못생긴 돌고래였지 아마?”

“너 못생겼잖아.”

“뭔 헛소리야. 너가 다 늙어빠졌지. 나는 예나 지금이나 이쁘지.”

“아니.. 그건...술 먹으면 원래 여자는 다 이뻐보여.”

수영이 딸꾹질을 했다.


“물 좀 마셔야겠다.”


수영은 때마침 딸꾹질이 잘 나왔다고 생각했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자.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옆에 가서 앉자. 수영이 새 맥주를 희라의 유리잔에 채워줬다.

“남자친구는.. 있어?”

수영이 잔을 쥔 희라의 손을 톡톡 건드리며 물었다.

“왜? 없으면?”

희라의 밥맛 없는 말투에 수영의 술맛이 떨어졌다. ‘왜 이렇게 나온대?’


“아니 너도 물어봤잖아. 나는 못 물어보냐?”

“나 안 물어봤는데?”

“아, 오빠한테 안 지려고.. 여전하네. 어쨌든 난 와이프 있다고 말했잖아.”

“그게 뭐가 중요해.”

그래, 너도 누구 옆에 누가 있고, 없고, 그런 거. 지금은. 안 중요하지? 수영이 다시금 도약했다.


“하아...우리 그때 좋았는데..”


수영이 뚫어져라 희라를 바라봤다. 2초, 5초, 10초... 무언의 시간은 수영의 예상보다 너무 길게 흘러만 갔다.


“그래서?”

희라가 날카롭게 물었다.


“너는 안 좋았어?”

“내가 먼저 따라다닌 거 기억 안 나?”

희라는 술자리를 싫어하는 타입이었다. 하지만 수영이 온다는 자리에는 꼭 참여했고 혹시라도 술과 상관이 없는 놀 거리 이야기가 나오면 재밌겠다고, 같이 놀러 가자며 친해지고 싶은 티를 내곤 했다.


“그랬었나?”

“응.”

“우리 맨날 놀러 다녔잖아. 술집도 원정까지 다니면서 많이 가고.”

“네가 워낙 술을 좋아하니까.”

“근데 니가 나 찼잖아.”

“그지.”

“왜 그랬어? 나는 헤어지고도 친구들한테 좋은 애라고 칭찬했던 여자친구 너밖에 없었어.”


희라는 참다 참다가 던졌던 이별 카드를 날렸던 날을 아직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구라를 쳤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많은 사람이 지나던 코엑스 광장 앞에서, 서로 죽일 듯이 쳐다보며 쏘아대던 드라마 한 편을 잊을 수가 없지.

여자가 말하는 이별의 이유, 너무 거지 같은 그 진실을 말하는 순간 곤두박질치는 자존감은 영원히 비상할 수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모르는 게 좋을 거다. 잘못은 니가 다 했는데...네 가려운 속을 긁어준다고 내가 비참해질 순 없지. 희라는 데자부를 느끼기 시작했다.


“아 뭘 그런 걸 물어. 기억도 안 나.”

“나 갑자기 마주치니까 어땠어?”

수영이 희라의 어깨를 쓸며 말했다.


“놀랐지 뭐. 대학 사람 밖에서 마주친 거 처음이었어.”

“그게 다였어?”

“나 화장실 좀.”

희라가 과장된 몸짓으로 일어나 자리를 피했다. 변기에 앉아 힘없이 술기운을 뺐다. 손을 씻으며 약간 상기된 얼굴을 바라봤다. 내가 태어나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아직도 고작 이 정도다. 얘랑 결혼했으면 이렇게 아름다운 동네에서 살 수 있었겠지만 이만치 허망한 마음으로 살아갔겠지. 내 최고의 사랑의 결과가...

“야, 나도 소주 좀 먹을게.”

희라가 대학 이후 처음 소주를 마셨다. 쓰다. 그때나 지금이나 쓰다.

“워...갑자기 왜 그래? 술도 못 마시면서 갑자기 왜 달려?”

수영의 마음이 초조해졌다. 그래서 소주 글라스를 잡은 희라의 손을 저지했다.

“뭘 떠봐 씨발.”

희라가 참다 참다 말했다.

“씨바알?”

수영이 언성을 높였다.

“너랑 불륜하라고 말을 하던가, 오늘 같이 자자고 하던가. 뭐 그렇게 물어. 왜 과거 빨면서 지금 니 감정은 숨겨.”

“와아...여자애가 못하는 말이 없어. 나는 이제 이 가게도 접고 아빠 일 물려받으러 대구 가야 하는데... 이제 진짜 볼 일 없어서 진짜 아쉬워서 우리 옛날얘기 물은 건데.”

“아아...그럼 그냥 오늘 한번 자도 되는 건지 물은 거네.”

희라의 말에 수영의 심장이 덜컹했다. 너무 꼬집혀서 딱 걸렸다.

“아 씨...뭐라는 거야, 왜? 주게? 오늘 한 번 줄래? 줘도 안 받아.”

수영이 자리에서 거칠게 일어나며 언성을 높혔다. 사실 수영은 강산이 한 번 바뀌기 전, 그 시절로 자연스레 돌아가 그때나 마셨던 싸구려 소주의 여운을 안고 시원하게 싸고 싶었다.


희라는 이 ‘준다’는 말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그래서 그런 말은 쓰지 말라고 교육했다. 그 이후로 수영은 사귀는 내내 한 번도 이 말을 쓰지 않았다.

희라는 그 어릴 적, 수영에게 생전 처음으로 큰마음을 내고 주었다. 하지만 수영의 가슴엔 그런 모양의 마음을 끼워 맞출만한 자리가 없었다.

“간다.”

희라가 빠뜨린 물건은 없는지 스캔을 하고선 자리를 떴다.


“희라야,”

수영이 희라의 등을 보며 자리에서 외쳤다. 그는 떨쳐지지 않는 민망함에 그녀를 차마 쫓아갈 수가 없었다.

희라는, 자신의 이름은 좋아하는 남자가 불러줄 때 진정한 의미와 울림을 갖는다는 신념을 잃지 않고 있었다. 이 신념을 갖게 해준 첫 남자가 수영이었다. 그들이 사랑했을 때, 수영이 ‘희라야’라고 부르면 희라의 가슴과 입술이 떨리곤 했다. 수영의 목에서 나온 공기가 그의 혀와 이와 입술을 거쳐 허스키한 향을 내며 꽃잎이 떨어지는 것보다 느린 여운으로 희라의 귀에 감기곤 했다.

희라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하루에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수영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꾹 참으며 ‘응?’이라고 대수롭지 않은 척 대답을 하곤 했다. 이 사실을 수영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올해도 봄날은 진다. 마대 자루에 들어갈 잔해를 남긴 채로.


제목: 봄날의 벚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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