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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근희 Feb 05. 2017

김제 거전리, 그 쓸쓸함과 고독

너른 평야에 끝없는 갈대와 철새, 뛰노는 고라니뿐이었다.

너른평야, 갈대, 적막함, 고독을 다시금 느끼고 싶어 찾았던 이곳


요 며칠 심하게 앓았다.

감기에 걸린 건지 몸이 나른하니 전조증상이 있더니 어느덧 안전한 이불 밖을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시름시름 앓아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간신히 오늘에서야 움직일만한 몸과 마음의 준비가 되어서 무얼 할까 고민하다 사진기를 들었다. 

한동안 사진을 찍지 못하고 사업을 한다며 일에만 매달려있어서 지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조금은 있었고 그러다 보니 글을 쓰는 것도 멀어지게 되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통해 사진기를 들고 떠나는 여행을 합리화하는 명분을 만들어보았다.  (feat. 역마살)


누군가 그랬다. 작가는 영감을 얻기 위해 글을 쓰는 거라고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 위해 사진을 찍어야 하는가 보다


장소는 김제 거전리, 새만금을 위해서 바닷물을 빼어버려 생긴 광활한 평야이다. 

아는 사람도 적고, 찾아가기도 쉽지 않고 정말 황량하고 광활한 장소라 나처럼 독특한 장소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찾아오기 힘든 장소라지만 8년 전에 한번 찾아와서 느꼈던 기억을 되살리고자 다시 한번 찾아가 본다.


모든게 광활한 가운데 나는 홀로 나무가 되어 서있다.



처음 거전리에 왔을 때는 한참 대학을 다니는 척하며 사진기를 들고 들과 산으로 떠돌던 때였다.

밤하늘의 쏟아질듯한 별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여기저기 헤매이다 아는 분의 조언으로 알게 된 거전리.

간신히 도착했을 때 받았던 인상, 거전리는 여러 곳을 다녔던 나에게도 독특한 장소였다.




 넓고, 광활하고, 적막하고, 고요하니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은 주변의 고요함으로부터 비롯한 거였는지 아니면 메마름을 채우기 위한 나의 발걸음에 기인하였는지 아직도 정확히 답을 내릴 순 없지만 그 가라앉은 침묵의 무게는 지평선 너머까지 손을 내밀어 나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 파문은 오랜 시간을 넘어서 다시금 하나의 울림으로 나를 흔든다.



갈대가 흐드러지게 묻어나는 풍경을 기대하고 도착하였는데 트랙터 하나와 상처뿐인 평야가 제일 먼저 맞이한다.  갈대는 누군가가 서둘러 치워버린 듯한 모습으로 무신경하게 갈려 바닥에 신음하고 있었다. 그 지난 상처들만 남은 대지는 그래서 더욱 적막하였였고 쓸쓸해 보였다.


오랜만에 온 길이라 그런지 그 너른 평야에서 길을 잃었다. 

무작정 지난날의 기억을 되짚어 달려 나갔는데 그 세월 동안 땅은 그렇게 은근히 변해있었다.  이 길인 듯하였는데 가다 보면 갈대들이 드리워 길을 감추고 고라니들은 자신들의 고요함을 깨버린 내 잘못을 꾸짖는 듯 이리저리 나를 맴돌며 뛰어다녔다.


그러던 참에 저 멀리 돌인 듯 보였던 형체들이 갑자기 나를 놀래켰다.  그것은 상처입은 자연이 늘 그러하듯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그것은 단번에 일어나 내가 바라보는 모든 세계를 아찔하게 가득 채워버렸다.


수많은 새들. 대지는 저 많은 생명에게 쉼터를 제공하고 있더라


시야뿐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세상을 가득 채워버리는 저들의 군무.

기대치 못한 관경을 기대치 못한 장소에서 목도하게 된 나는, 그 순간부터 홀린 듯 그 광활한 대지에 빠져들었다.  그들이 품어왔던 수많은 생명들 가운데서 나는 작은 하나의 생명이었고 숨결이었다.



그마저도 간신히, 수많은 생명, 그 생명만큼의 아름다움 속에서 나는 그저 하나의 경의를, 그 경의를 바라보며 감사하는 작은 존재였던 것이다.


하늘이 언제 저렇게 비좁았던가, 아니 저 많은 생명을 담기에는 충분하지만 내 세계에 넣기에는 부족하였다.


하늘이 언제 저렇게 비좁았는지, 아니 사실 하늘은 저 많은 생명을 오로지 담고 있었지만 그 하늘을 바라보는 나의 시야는 그들을 담기에 부족하였다.  작은 사무실에서 로즈메리 화분 2개와 다육이,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면서 그래도 이제 나는 누군가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으로 조금 변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비웃듯, 세상에는 아직도 저렇게나 많은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한걸음, 한 걸음씩 나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내가 앞으로 더 많이 품어야 할 생명들이 저렇게나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는 작은 존재에서 조금은 나은 존재로 변화하지 않았을까.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 서시, 윤동주

윤동주 시인의 말은 얼마나 겸허한 고백인지 비로소 난 깨달을 수 있었다.  저 많은 생명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 마음에 아로새길 수많은 생명과 죽음에 대한 고백.  그것은 무애 한 세상에서 한 사람으로서 말할 수 있는 자기고백이며 유일한 고백이라는 것.


대지가 키우고 하늘이 품는 저 수많은 생명들,  이 생명. 


하늘이 고향이지만 결국 닿아야 할 곳, 쉴 곳은 땅.

새는 그래서 하늘에서부터 내려와 땅에 머무는 하나의 몸짓을 통해 하늘과 땅이 이어짐을 증거함이 아닐까?

가지에, 나무에, 땅에 그렇게-  자신이 깃들 장소를 찾아 하늘을 맴돌며 그렇게 땅을 살펴본다. 




새들은 하늘저편으로 생명을 물고 날아와 땅에 심고 그 심겨진 나무를 보살피다 다시 생명을 물고 다른 땅으로 날아간다. 끝없는 순환. 그리고 사랑.




아름다움이 땅으로부터 하늘로 이어졌다 다시 이 땅의 지경으로 넘어온다. 그리고 내 눈, 생각과 마음에, 그리고 내 세상에 들어와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그 흔적은 다시금 나를 아프게 할 것이다.  나를 보게 만드는, 돌아보는 자기 보기. 그리고 다시금 이 곳을 찾게 될 것이라는 추억의 상처로.




그래서 나는, 저 전망대를 따라 다시금 이 곳에 돌아올 것이다.

마음이 메마르고 아플 때, 무애 한 세상에 외로움을 감당치 못할 때, 그리고 언젠가 그 외로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생길 때. 그 인생의 순간순간마다 거전리를 찾아올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그 풍경을 잊고 콘크리트와 시멘트로 부끄러움을 가리듯 저 아름다움을 덮어버리기 전까지는.




거전리, 너른 평야에 끝없는 갈대와 철새,
뛰노는 고라니 그리고 그 가운데 내가 있었다.




너머로 산길을 차고 비포장도로를 넘어 물건너 바다를 옆에끼고 반지를 찾아 떠나는 장대한 여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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