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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등대지기 Aug 21. 2024

[職四] 오늘은 어린이날!

직장인의 사계 - 여름(윗분이 안 계시는 무두일을 맞으며)

    오늘은 무두일입니다. 無頭日. 한자 그대로 머리가 없는 날, 즉 윗분이 안 계시는 날입니다. 직장인에게 무두일은 '어린이날'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만큼 설레고 좋다는 뜻이겠지요. 어디선가 봤던 문구가 문득 떠오르네요. '가장 좋은 상사는 없는 상사이다.' 그렇습니다. 누군가의 통제가 사라지는 순간 직장인들은 잠시 해방의 느낌을 받습니다. 회사에서 열심히 배운다고 생각 하는 저도 이상하게 '어린이날'만 되면 기분이 좋습니다. 마음도 좀 편안하고 긴장이 다소 풀어지면서 평온한 상태를 유지합니다. 


    무두일의 추억


    무두일을 대했던 옛 선배들의 모습을 잠시 옮겨 봅니다. 


A대리 : 막내야! 뭐 먹고 싶은 거 없냐? 꼰대 아주 그놈의 국밥타령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오늘은 국밥에서 가장 먼 메뉴로 준비해 봐라. (점심 메뉴 지긋지긋해 아주 그냥!)


B과장 : 나는 점심에 약속 있다. 안 들어올 거니까 그리 알고. (낮술 예정이다. 술은 역시 해가 있을 때 마셔야 제 맛이지~)


C차장 : 나도 외근 예정이니 그리들 아시오. (오랜만에 사우나도 가고 하루 쉬어야겠다.)


    이렇듯 각자 원대한 꿈을 품고 어린이날을 맞이합니다. 팀의 막내급들은 모두 떠나 버린 한산한 사무실에서 나름의 휴가를 즐깁니다. 그간 못했던 인터넷 쇼핑도 좀 하고 오랜 시간 동기들과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합니다. 


    요즘 제가 무두일을 맞이하는 자세


    여전히 저는 무두일이 좋습니다. 특히나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일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저이기에 더욱이나 내게 뭐라 할 사람이 없는 시간은 소중합니다. 그렇다고 낮술이나 하고 땡땡이치며 보내기에는 제 시간이 너무 아깝습니다. 그래서 요즘의 저는 무두일을 아래의 활동들로 채워 저만의 시간으로 승화시킵니다. 


1. 주변 정리의 시간

     일 하다 보면 책상이나 서랍에 온갖 것들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평생 꺼내 볼 일 없는 서류들이 즐비합니다. 컴퓨터에도 여기저기 난잡한 파일들이 널려 있습니다. 정신 집중해서 2~3시간이면 다이어트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주변 정리만 끝내도 머리가 맑아집니다. 


2. 집중 업무의 시간

    30분씩 쪼개서 5번 일하면 150분입니다. 한 번에 150분을 일 해도 똑같이 150분입니다만 그 질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30분씩 쪼개서 했던 일들은 연속성이 떨어져 뭔가 엉성하게 엮인 느낌이라면 연속된 150분의 밀도 있는 시간은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에 충분한 시간입니다. 단순 업무가 아닌, 프로젝트성 업무에 밀도 있게 시간을 쓰면 훨씬 효과가 큽니다. 


3. '나' 연구의 시간

    일만 하며 보내기엔 무두일이 너무 아깝지요. 그러니 일을 잘하기 위한, 궁극적으로 삶을 좀 더 잘 살기 위한 활동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방해받을 일이 적은 무두일에 자기 탐색의 시간을 갖는 걸 좋아합니다. 다음과 같은 질문들로 그 탐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답변하는 시간은 각자 상황에 맞게 조절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다소 엉뚱하더라도 늘 해보고 싶었던 일이 있는지?

죽기 전에 꼭 이뤄야 할 성취가 있는지?

나의 Bucket List 만들기!

내 묘비명 써 보기!

나는 어떤 사람으로 남은 이들에게 기억되기를 바라는가?

내 삶의 기도문 만들어 보기!


    '인생의 질문'류의 책들이 많이 있더라구요. 아니면 웹검색을 통해서도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중 맘에 닿는 질문을 이따금씩 메모장에 갈무리해두면 언제고 무두일이 찾아왔을 때 활용할 수 있을 거예요. 


    일과 다소 거리는 있을 수 있겠지만 제 마음이 바로 서야 일이 잘 될 터이니 회사 입장에서도 영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저는 3번 항목에 제 소중한 무두일을 투자해 보려 합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저 뒤로 밀어 놓은 제 꿈을 다시금 끄집어내서 쓰다듬고 보듬어주는 그런 하루를 보내 보려 합니다. 오늘 하루, 언제고 여러분을 습격할 무두일의 공허함에 모두들 미리 대비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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