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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등대지기 Sep 10. 2024

[職四] 새 삶을 위한 리셋

직장인의 사계(가을) - 새 봄을 맞기 위해 들판을 비우듯

    드디어 내일입니다. 제가 작년부터 추진해 왔던 '명상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12일간을 속세와 단절된 명상센터에서 수련하기로 결심한 건 작년 여름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책을 보면서 혼자 명상을 하다 보니 궁금한 것도 많고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영 불안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렇게 돌고 돌아 '위빳사나 명상'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을 때 하셨다는 명상이라는 점이 저를 매료시켰던 것 같습니다. 찬찬히 본인을 둘러보며 결국 변하지 않는 건 없다는 지고의 진리를 깨닫는 명상이라고 하니 더욱 마음이 동했습니다. 


    그렇게 작년 연말에 명상코스를 신청을 했습니다. 


    추첨의 형태로 신청자를 받기에 다소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도 선정이 되어서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명상을 가기 한 달 전쯤에 큰 아이의 졸업식과 명상일정이 겹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보통은 2월경 졸업을 하니 당연히 그런 줄 았았는데 학사일정을 확인해 보니 12월 말이더군요.


     순간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습니다. 정말 분노와 실망이 담긴 발끝에서부터 끌려 올라온 한 마디가 툭 하고는 튀어나왔습니다. 


    명상 코스 다녀오라는 큰 아이의 허락을 받았지만 끝내 갈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아들내미 초등학교 졸업식도 안 가면서 명상을 가는 아버지는 저라도 별로더라구요. 그렇게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첫 번째 제 명상프로젝트는 실패하였습니다. 


    사실 저의 작년 한 해는 너무 힘들었습니다. 심적으로 힘들다 보니 과식과 과음이 습관이 되어 몸도 많이 망가졌습니다. 체중도 늘고 복부에 넉넉한 지방층도 둘러놓게 되었습니다. 음식은 먹다 보면 더 달라고 아우성치고 술도 마시다 보면 늘어서 어지간한 양으로는 성이 차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대치하고 싸우며 지내다 보니 마음은 늘 너덜너덜했습니다. 


    혼자 외로이 조직을 정리하고 사람도 보내야 하는 그야말로 칼춤을 한 바탕 춰야 했기에 일을 하면서도 늘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힘들다는 핑계로 짜증도 늘고 화도 늘었습니다. 확실히 안 좋은 일을 하면 사람의 정신이 안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숫자 위주로 일을 하다 보니 사람이 숫자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5명은 5억으로 생각하기 시작했고 저 건너편에 앉아있는 김대리도 1억으로 생각했습니다. 조직을 합리화하는 그 과정에서 제 손에 피를 너무 많이 묻혔고 제 마음은 온갖 상처 투성이었습니다. 


    걷다가 갑자기 눈물이 흐르기도 하고, 분노가 일어 잠을 설치기도 하였으며, 주변 사람들에게는 늘 날카로운 상태였습니다. 


    가족들에게도 언성을 높이고 화를 내는 일들이 잦은 건 당연한 결과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온몸에 피칠갑을 하고 살다 보니 멈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자기기도 한 번씩 리셋을 해줘야 잘 돌아가듯 제 마음도 한 번은 리셋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내일 리셋을 하러 떠납니다. 


    12일간 집을 비워야 하고, 입소하면 휴대폰도 책도 노트도 없이 그저 하루종일 명상으로만 이루어진 생활을 해야 합니다. 묵언 수행인지라 입도 굳게 다물고 있어야 하구요. 과연 제가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제가 성장하는데 꼭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하니 의지가 샘솟습니다.


    이제 저는 잠시 다 내려놓고 비우러 떠납니다. 위대한 멈춤, 새 삶을 위한 리셋이라 생각하며 발길을 옮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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