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등대지기 Apr 03. 2024

[職四] 회사에 조금 일찍 온다는 건

직장인의 사계 - 봄 (조금 일찍 씨를 뿌리는)

  저는 보통 회사에 7시 30분경에 도착합니다. 출근 시간은 9시인데 말이죠.




  원래 8시경 도착했었는데 조금 더 일찍 와 봤더니 훨씬 쾌적한 기분이 들고 마음이 더 편하기에 습관을 조정했습니다. 9시에 공식적인 업무가 시작되니 저는 대략 1시간 이상 조근을 하는 셈이지요. 그런데 저는 이 시간에 바로 업무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물론 급한 업무가 있는 예외적인 상황도 있지만 보통의 루틴은 차를 한 잔 마시면서 생각을 이렇게 글로 옮겨 놓습니다. 지금 하지 않으면 없어질 현재의 감정과 향기를 그대로 글에 담아 보고자 노력합니다. 제 이 비루한 기록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굳은 믿음으로 한 자 한 자 적어 갑니다. 대략 30분여 끄적이고 나면 뭔가 비워낸 느낌에 홀가분합니다. 오랜 변비에서 탈출한 것과 같은 상쾌함도 느껴집니다. 


  다음 코스는 독서입니다. 일상적인 생활루틴을 따른 날이라면 집에서 이미 새벽독서를 1시간 정도 했을 것이고, 회사로 이동하는 지하철에서도 틈틈이 30분 정도는 독서를 했을 것입니다. 집에서의 독서는 공부에 가깝게, 펜을 들고 줄을 긋고 노트에 옮겨 적는 적극적인 독서 활동이고 제 자신을 위한 투자 시간입니다. 한동안 재테크나 자기계발서를 탐독하다 요즘엔 정신건강을 위한 책들을 주로 보고 있습니다. 요즘은 반양심경에 마음을 두고 열심히 정진하고 있네요. 지하철 이동시의 독서는 조금은 가벼운 에세이 혹은 소설 등으로 진행합니다. 2번이나 갈아타야 되는 환경 탓도 있고 주변의 소음 등도 있어 온전히 집중하기 어렵기에 다른 이들의 삶이나 생각을 들여다보며 '아 그렇구나'라고 공감하는 정도로 합니다. 그리고 하루의 세 번째 독서인 회사에서의 독서도 새벽독서와 비슷한 적극적 독서이기는 하지만 책의 내용이 다릅니다. 회사생활에 접목할 수 있는 경영, 경제, 조직문화 등과 관련된 책을 읽고 현재의 조직에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은 없는지 탐색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단지 지식을 늘려 아는 체하는 공부보다는 작은 거라도 현실에 접목하고 도전해 보는 스타일인지라 회사에서의 실험을 위한 소중한 재료들을 수집하는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피터 드러커나, 톰 피터스, 잭 웰치 등의 경영 관련 고전들을 통해 경영철학이나 조직관리에 대한 부분을 주로 학습하고 있습니다. 


  글 쓰고 학습까지 마치면 이제 정식 근무시간까지 30분 여가 남습니다. 이제 하루하루를 추적하는 Daily Tracker(하루에 제가 계획한 일들을 얼마나 실행했는지 추적하는 저의 불렛저널의 한 페이지입니다) 작성을 시작으로 진짜 하루를 스타트합니다. 어제 마무리 못한 일,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 꼭 잊지 않는 것이 난잡한 서류 정리입니다. 중간 관리자가 되다 보니 관리해야 할 정보의 양이 많아졌습니다. 이런저런 문서들로 책상 주변이 난잡하네요. 매일 치우지 않으면 나중에는 일이 되어 제 시간을 빼앗을 것이 분명하기에 아침에 갈아 없애는 편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하루를 디자인하고 나면 10분 여가 남습니다. 그럼 여유롭게 공식적인 하루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회사에 빨리 나오는 것을 누구에게나 권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제 루틴을 소개드리는 것이고 저는 이 소중한 저만의 시간을 통해 어제보다 조금은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고 있기에 의미가 있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잠이 소중하신 분들은 더 주무셔도 되고, 가족과의 아침식사가 중요하신 분들은 천천히 드시고 정시에 맞춰 출근하셔도 무방합니다. 


  그런데 직장에서 뭔가 뜻을 이루고자 하시면, 뭔가를 배워 가시려면 적어도 30분 정도는 일찍 오셔서 미리 업무를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은 권장할만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 정도는 소위 말하는 직장매너이기 때문입니다. 가끔 생각이 깨인 후배들은 회사에서 돈 받은 시간만큼만 일 하면 되지 뭐 하러 빨리 출근하느냐며, 손해 아니냐고 얘기하기도 하더군요. 이렇게 까지 얘기하는 분들에게 제가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다만 직장에서의 삶이 그리 순탄치는 않아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분들을 평가하는 저와 같은 팀장에게는 절대 좋게만 보이지는 않거든요. 같은 후배들이라도 태도가 다른 친구들이 있습니다. 어설픈 아부를 하라는 말이 아니라 일을 대하는 태도를 세련되게 가꾸라는 이야기입니다. 그중의 기본이 조금 일찍 나와서 내 소중한 하루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제 업무가 시작되었습니다. 9시가 되었는데 헐레벌떡 뛰어오는 친구들이 보이네요. 가끔이야 그럴 수 있지만 매일 그렇게 오는 친구들이 반가울 리 만무합니다. 제가 꼰대라구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단지 예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뛰어와서 커피를 타러 또 나가고 10분 여가 지나서야 컴퓨터의 전원을 켜고 로그인을 하고 있네요. 그 상태로 언제쯤 업무모드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제가 모시는 임원분들을 뵈면 늘 일찍 오시는 편입니다. 임원이니 그런 게 아니라 그렇게 일찍 준비하셨기에 임원이 되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 임원이 되기 위한 자질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인 일에 대한 예의는 필수적으로들 탑재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나는 임원을 안 할 거니 상관없다는 분들은 대부분은 현 직장에서 오래 다니시기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노선을 확실히 하셔야 됩니다. 어중간하게 살면 언제고 갈 곳 없이 쫓겨납니다. 회사는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기에 한 사람 몫 이상을 하면 위로 올려서 쓸 것이고, 그 몫을 하지 못하면 급여 제공을 멈추겠지요. 조용히 급여만 챙기겠다는 생각은 나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기 때문에도 안 좋겠지만, 조용히 급여를 챙기기가 참으로 어렵기 때문에 권할 만한 방법은 아닙니다. 그래서 최근 트렌드라고 하는 조용한 퇴사에 대해서 저는 본인의 시간을 낭비한다는 관점에서 좋게 보지 않습니다. 


  우리 김대리가 9시에 딱 맞춰 뛰어 옵니다. 만년 대리인지라 진급을 시키고 싶지만 올해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인사고과도 고과이지만 정성적인 부분도 무시하지 못하는데 늘 한 끗발이라고는 하지만 진급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일견 수긍이 갑니다. 


  저는 제 루틴이 좋아서,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울려 퍼지는 제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와 오래된 책의 향기가 좋아서 회사에 일찍 옵니다. 이미 뇌를 충분히 예열해 두었기에 자연스레 오전 업무 집중도는 높아집니다. 대부분의 회의를 오후에 잡아 놓는 편이기에 하루를 충실히 쓰는 편입니다. 저녁 자리가 없으면 일찍 잠자리에 들어 새벽루틴을 준비합니다. 이런 단순한 삶이 주는 따뜻함에 늘 감사하며 오늘도 시작해 봅니다. 남들보다 일찍 말이지요. 

작가의 이전글 [職變] 대리 나부랭이는 입이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