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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이목 Oct 28. 2024

따뜻한 로즈메리 향(1)

소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녹림 교회 담임 목사 임요셉의 외침에 예배당이 강하게 진동했다. 이에 깜짝 놀란 몇몇 신도의 어깨가 들썩였다. 주님께 직접 말씀을 전해 들은 열세 번째 제자라도 된 것처럼 신도석 곳곳에서 “아멘” 소리가 튀어나왔다.

 에녹의 행동은 이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빼곡히 모인 인파 사이로 에녹은 홀로 수조 속에 들어앉은 양 귓가가 먹먹했다. 요셉의 설교는 “전능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으로 끝을 맺을 때까지 에녹의 귓가만 왕왕 맴돌 뿐 어떠한 깨달음도 전하지 못했다.


 예배가 끝난 후 에녹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에도 에녹만이 그러했다.

 잔잔한 찬송가 멜로디를 배경 삼아 요셉은 속삭이듯 기도를 이어갔고, 신도들은 저마다의 바람을 담아 “주여”, “주여”하며 중얼거렸다.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앉은 신도들 사이로 불쑥 튀어 오른 에녹은 돌연변이처럼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에녹은 예배당의 문을 박차고 나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같은 장의자에 나란히 앉았던 신례와 형곤이 에녹의 기척에 잠시 눈을 떴지만 깜짝할 새라 미처 따라 나가지 못했다.

 대신 에녹의 차를 가로막은 건 남우였다.

 예배당 가장 앞줄에 자리했던 남우가 그보다 네댓 줄은 뒤에 앉았던 제 부재를 어떻게 알고 따라 나온 건지 에녹은 의문이었지만 잠시뿐이었다. 구태여 물을 여유도 없을 만큼 에녹의 머릿속은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중이었다.


 “에녹아. 왜 이렇게 급히 돌아가려는 거야. 우리 며칠 만에 봤는데...... 대화를 좀 해야 하지 않겠어?”


 남우의 침착한 설득에도 에녹은 묵묵부답이었다. 마음이 동하기는커녕 계획에 제동이 걸리자 도리어 찾아온 짜증이 에녹의 머리에 열을 가했다.

 그러나 남우는 차창을 통해서만 에녹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었기에 정확한 감정을 짚어내기 어려웠다. 곧게 뻗은 눈썹이 신중해 보이기도, 화가 나 보이기도 했다.

 시선은 자꾸만 저를 비껴가는 것이.......


 “설마 나를 피하는 거야? 에녹아...... 아니지?”

 “.......”

 “혹시 그런 거라면 더더욱 대화를 해야지! 이런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그때 마침 예배당의 문이 열리며 신도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해 남우는 목소리를 죽여야 했다.

 남우가 주의를 빼앗긴 틈을 타 에녹은 그의 옆으로 아슬하게 차를 몰아 빠져나왔다. 차는 넓은 도로를 20분 정도 달리다 이내 샛길로 들어섰다. 후미진 길가에 주차를 마친 에녹은 그곳이 목적지가 아니었는지 이후로도 10여 분을 더 걸었다. 마치 제가 어디로 가는지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의 행동이었다.

 구불구불한 골목을 지나 에녹이 멈춰 선 곳은 하늘색 입간판 뒤로 같은 계열의 페인트가 칠해진 건물 앞이었다.


 cafe rainstorm(카페 레인스톰)


 고아한 필기체로 쓰인 회갈색의 상호를 읊조리며 에녹은 이곳이 약속 장소임을 재차 확인했다.

 전면 유리 벽 너머 낯익은 뒷모습이 보였다. 애써 가라앉혔던 심장이 다시 미친 듯 두방망이질했다. 심호흡을 크게 두 번 하고 나서야 에녹은 카페로 들어설 수 있었다.


 “어서 오세요.”


 에녹을 친절하게 맞이한 직원은 곧장 시선을 먼저 온 손님에게로 돌리더니 두 사람을 번갈아 보기 시작했다. 일행인지 확인하려는 듯한 행동에 에녹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을 대신했다.

 4인용 테이블과 2인용 테이블이 각각 두 개씩 배치된 작은 공간에서 에녹은 약속 상대를 따라 가장 구석진 자리로 향했다.

 분명 직원의 인사말을 들었을 텐데도 고개 하나 까딱하지 않던 해수는 에녹이 바로 옆까지 다가간 후에야 시선을 들었다.


 에녹은 제 심장이 더욱 빠르게 질주하기 시작한 것을 전신으로 느꼈다. 다행히 그 동요가 낯빛으로까지 번지기 전에 갈무리하고 차분한 몸짓으로 맞은편에 앉았다.

 주해수도 저와 같을까. 해수의 얼굴 근육에서 미세한 동요라도 찾아볼까 했지만 15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에녹은 여전히 그녀의 심중을 알아내기 힘들었다. 담담하고 새카만 눈동자와 선이 곧은 어깨, 마디가 불거진 긴 손가락도 변함없었다.

 굳이 다른 점을 꼽자면 어깨를 스치던 중단발의 머리칼이 쇄골을 넘어섰다는 것뿐이었다. 겨우 한 뼘도 안 되는 변화. 이 때문에 에녹은 두 사람 사이의 시간이 바로 어제 일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저도 모르는 새 에녹은 과거의 파도로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었다.

 이 또한 해수도 같을까. 자꾸만 저를 채근하는 의문이 해수의 무감한 태도에 부딪혀 튕겨 나왔다. 조여드는 자존심을 행여나 들킬까봐 에녹은 더 이상의 침묵을 허락할 수 없어 입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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