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 도피 혹은 경직
여자애 다리가 그게 뭐냐?
언젠가 수업 중에 교복 치마 밑 내 다리를 본 남선생이 눈썹을 찡그리며 핀잔을 준 적이 있다. 당시 내 두 무릎엔 까졌다 불룩 튀어나온 채 아문 흉터가 여러 개였기에 꼰대 선생의 반응이 상처가 되진 않았다. 다만 놀랐던 건 다른 애들 몸엔 그리 흉터가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선생의 핀잔을 듣고 내 몸에 있는 흉터를 세어 봤다. 양 무릎엔 여러 번 피부가 까졌던 흔적들이, 발등 하나와 다리 일부에는 화상으로 피부가 벗겨져 다른 피부보다 흰 부분이, 의외로 얼굴에는 턱을 포함해 무려 흉이 네 군데나 있었다.
내 몸에 흉터가 많은 데는 이유가 있다. 어릴 때 한 왈가닥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운동 신경이 좋은 편도 아닌데 조심성마저 없었고 행동에 거침이 없었다. 다쳤다고 몸을 사리지도 않았다. 넘어져 다쳐도 약을 바를 생각보다, 먼지를 툭툭 털어내고 다시 일어나 앞으로 달리던 아이였다.
흉터로 남은 기억들
흉터에는 나름 사연이 있다. 바다를 구경하다 낭떠러지로 밀쳐진 다섯 살 아이가 너무 울었는지, 이마를 서툴게 꿰맨 의사 선생님의 솜씨는 해리포터의 번개 흉터처럼 이마 정중앙에 남았다. 엄마랑 외할머니는 동네 아이가 밀어놓고 그 집에서 모른 척을 했다며 몇 번이고 억울해했다. 그때마다 나는 왜 내 이마 흉터는 해리처럼 예쁘지 않을까 생각했다.
엄마가 대표인 봉사 단체의 야유회 날, 담벼락에 올라가 올림픽에서 본 장대 뛰기 선수를 따라 하다 라면 끓는 물을 엎어 두 다리에 화상을 입었다. 놀란 민박집 아주머니가 허겁지겁 감자를 갈아 오셔서 두 발등을 덮어주셨는데, 오히려 그게 흉이 진 원인이 되었다. 어수선한 응급 상황에서도 간 감자를 덮은 내 두 발등을 보고 의료진들이 한 소리 했던 기억이 난다. 덕분에 화상을 입었을 땐 꼭 흐르는 찬물로 응급처치를 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리고 그 야유회는 나로 인해 첫 번째 야유회로 쫑이 났다.
나머지 자잘한 흉터들은 미끄럼틀을 거꾸로 탔거나 생각 없이 달리다 넘어진 탓이다. 집으로 난 좁은 골목길엔 흙길을 어설프게 시멘트로 덮어 시멘트길 가운데에 툭 튀어나온 돌부리가 있었는데 주의해서 걷지 않으면 발이 걸리곤 했다. 가끔 골목길 옆 수풀에서 뱀을 봐 도망칠 때도 있었고, 어두운 밤에 생각 없이 달리다 걸려 넘어졌을 것이다.
다행인 건 그 모든 흉터들이 시간이 지나고 내가 성장하며 점점 그 색이 옅어져 갔단 점이다. 이제는 아문 흉터들처럼 그 모양새가 꽤나 예쁜 기억들은 아니지만 그 모든 일들이 흉터로 남아 어른이 돼서도 흉이 진 피부를 볼 때마다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트라우마 = 뇌에 새겨진 ‘감정의 흉터’
트라우마 또한 마찬가지다. 사고로 생긴 물리적 흉터는 점점 옅어져 간다. 하지만 뇌의 해마에 새겨진 감정은 트리거가 눌릴 때마다 신체화 증상을 일으킨다. 뇌에 새겨진 ‘감정의 흉터’가 순간적으로 나를 과거로 데려가 불안과 공포를 야기한다.
트라우마 치료 상담을 진행하며 외부의 스트레스에 대한 뇌의 신경계 작용을 배웠다. 짧게 핵심만 밝히자면 내 신경계는 트라우마로 인해 ‘원초적 생존 본능’이 강해진 상태다. 매 순간 생존에 대한 위협이 되는 외부 자극을 민감하게 느낀다. 마치 주위를 경계하는 초식동물 같은 상태다.
일반적 사람의 뇌는 외부자극이 편도체, 해마를 거쳐 전두엽에 다다르는 뇌의 신경계 작용을 거친다. 하지만 트라우마를 겪은 뇌는 외부 자극이 발생하면 바로 편도체에서 뇌에 신호를 보내 즉각적인 신체 반응을 일으킨다. 외부 위협에 빠르게 대처하기 위함이다. 이 과정에서 신체는 투쟁, 도피, 혹은 경직으로 대처한다.
투쟁, 도피 혹은 경직
위기가 발생했을 때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사람이 있고, 그 위기의 순간을 벗어나기 위해 도망치는 사람이 있다. 브라질에서 내가 강도에 맞서 싸운 것은 위기 상황에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 것과 마찬가지다. 여럿에게 밟혀 구타를 당하는 순간에도 내 몸이 아픈 걸 느끼지 못했다. 이는 ‘투쟁’이라 볼 수 있다.
반면 산에서 곰을 만나면 죽은 척을 하라고 들었다. 나는 이 조언이 곰이 멍청하길 바라는 단순히 위험 상황에서 운에 의존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실제로 이때 인간의 신체는 마치 죽은 것처럼 피의 흐름이 느려진다고 한다. 이것이 ‘경직’이다.
바람이 불거나, 우산이나 풍선을 볼 때 불안감이 차오르고 몸이 굳어버리는 내 신체화 증상은 바로 경직의 반응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왜 몸이 경직되는가? 이는 과거 트라우마가 발발한 사건 때 경험한 무력감과 공포심이 편도체에 입력돼, 지금도 뇌가 미처 인식하기도 전에 순간적으로 몸이 먼저 반응하기 때문이란다. 뇌에 새겨진 감정의 흉터가 여전히 아물지 못한 채 움찔움찔 거리는 셈이다.
수년의 시간이 흘러도 뇌가 과거의 감정을 기억하고 반응한다는 게 놀라우면서도, 내 몸의 신경계가 고장 났다는 말은 충격적이었다. 병원을 나오며 나는 억울함에 한바탕 눈물을 쏟아냈다. 그 후로도 내 몸과 감정을 돌볼 수 있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