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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북이와 달팽이 Jan 25. 2020

#13. 초등학교 1학년, 부모도 1학년

엄마의 불안함 채워나가기


정원이의 초등학교 입학. 별 일 아니겠지 생각했지만 만만치 않았다.

늘 터전에서 하루 종일 뛰어노는 게 일이었던 아이가 규칙이라는 것을 배우고

40분 동안 책상에 앉아서 지겨운 공부를 해야 한다.

또 오전 수업이 끝나 친구들 절반 이상이 부모와 함께 집에 가는 상황에서

우리 아이는 돌봄 교실로 가서 남은 시간을 다시 보내고 그것도 모자라 학원을 다니며 시간을 보내야 한다.


대한민국의 육아 여건이 좋지 않다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제 몸집만 한 가방을 메고 학교로 가서 이곳저곳 스스로 찾아다녀야 하는 딸아이의 모습이 안쓰럽기 그지없다.

담임선생님 말씀은 잘 듣고 있는지, 학교 친구들에게 따돌림은 당하지 않는지,

돌봄과 방과 후 수업은 잘 찾아다니는지, 화장실은 잘 가고 있는지 모든 게 궁금하다.


부모도 긴장이 되어서 그런지 오히려 아이보다 더 호들갑을 떤다.

엄마는 퇴근 후 아이에게 상기된 목소리로 “정원아 정원아! 오늘 하루는 어땠어? 이야기 좀 해줘~~ 엄마 궁금해~” 하고 연신 이야기를 하고

아빠는 아이의 점심시간마다 학교 주변을 서성이며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고 얼굴을 보고 온다.  

아이를 걱정하는 건지 부모가 적응이 안되어 스스로 염려하는 건지 구분하기 어렵다.


달팽이 : 초등학교 1학년은 학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하루 일과를 논리적으로 정리해서 말하는 능력은 부족하죠.

그런 아이 앞에서 부모가... 어린이집 다닐 때는 하지 않던 과민반응을 보이면 아이는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부모의 관심으로 받아들이고 기뻐할까요? 아니면 오히려 부모의 불안감을 느끼고 “내가 힘든 곳을 다니는구나” 하는 불안감을 갖게 될까요?

거북이 :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할 거 같아요. 부모의 불안감은 아이의 생활을 보지 못함에서 시작돼요.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부모가 오랜 시간 익숙하게 보내온 곳이라 이 시간쯤은 대충 어떤 것을 하고 아이가 언제 힘들어하고 하는 등의 모습을 알잖아요.

하지만 초등학교는 달라요.

그 불안감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그렇다고 아이처럼 그 불안감을 애써 다른 감정으로 채우려고 하는 것은 진정한 답은 아닐 거 같아요.


오늘 “두근두근 학교 가는 길”이라는 영상을 봤어요.

그곳에서 초등학교 1학년의 생활을 카메라를 통해 정확히 알려주었고 이를 통해서 대충 학교에서의 삶을 이해할 수 있었죠.

그리고 정원이를 데리고 오는 길에 “오늘 학교 어땠어?”라는 질문 대신 이렇게 말을 꺼냈죠.


“정원아~ 아빠가 오늘 너 생활이 궁금해서 영상을 찾아봤어. 그랬더니 참 재밌는 걸 배우더라.

앉으면서 번호 하기, 앞으로 나란히 해서 줄 맞추기, 학교 구경하기 이런 거… 너도 그래?”


정원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배시시 웃어요.

그리고는 바쁜 하루를 정리하듯 학교에서의 일을 슬슬 재잘거리더라고요.

“응. 우리 그런 거 배웠어. 그리고 오늘은 종이 접기랑 그림 그리기도 했어. 또 친구들이 모르는 거는 선생님한테 계속 물어보는 거야. 나도 뭐 찾다가 도저히 못 찾겠으면 선생님한테 이거 찾아주세요 이렇게 말해. 또 나 화장실을 아예 안 가거든. 오줌도 안 해. 그래서 지금 배가 배 통통이가 됐는데 좋은 게 뭔지 알아? 나 지금 배 아파~ 똥 싸고 올게~”

그리고선 화장실로 가더라고요.

달팽이 : 여보 이야기 듣고 보니 ‘아차! 이런 거구나’ 란 생각이 들어요. 그동안 내가 아이를 보러 학교에 찾아가고, 학교 마치면 꼬치꼬치 캐묻던 이야기들이 어찌 보면...

내가 아이의 변화된 삶을 진짜 이해하려고 한 것보다는 나의 불안감을 채우려고 했던 거네요.

아이의 삶을 진짜 이해하려는 노력은 좀 부족했던 것 같아요...

내 불안함을 느꼈는지... 아이도 그제야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되짚으며 부모에게 어떤 이야기를 할지 골라서 말하더라고요.

아이의 삶에 대해 극히 불안해하지 말고... 아이의 일상에 대해 더 많이 소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

처음이라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지만...

내 불안감을 표현하지 않고 아이를 믿고 대화하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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