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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북이와 달팽이 Jan 25. 2020

#14. 우리 아빠는 과학선생님

아이의 기 살려주기

과학의 달을 맞이하여 1일 과학교사 지원을 받는단다.

무턱대고 지원했다. 이제 점점 그날이 다가오자 압박감이 몰려온다.

괜히 지원했나 후회도 해보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마술과 과학을 섞어 전체적인 컨셉을 만들었다. 
늦은 시간까지 준비하며 연습에 연습을 더했다. 
직장에서 상급자를 두고 하는 프레젠테이션도 이것보다 떨리진 않았다.

최근 정원이는 학교생활에서 적응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늘 자기 위주의 삶을 살아왔고 자기 주도적인 성향이 강해서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마찰들이 많았고 비슷한 유형의 아이들과는 특히 더 많이 부딪친다.  

그런 아이에게 1학년 학교생활은 참 힘든 부분이었다.

늘 중립적인 선생님은 아이에게 교육적인 조언을 해 주시다 보니...

정원이는 늘 자기편이 고팠다.


그런 아이에게 부모가 1일 교사를 하면...
좀 더 아이에게 힘을 불어넣어 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 친구들에게 마술을 보여주며 장미꽃 선물도 주고, 친구들에게 애정을 표현하면

아이 어깨가 으쓱해할 것 같았다.

좀 유치하고, 치사해 보이긴 해도...

가뜩이나 예민한 아이가 좀 더 친구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학교 마치고 아이들을 집에 초대하거나,

낮 시간에 다른 부모들과 어울리며 아이에게 사교의 기회를 만들어 줄 수 없는 우리로서는

어찌 보면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단에 서서 제일 처음 나를 소개할 때,, 
나를 "선생님"이라고 말할까 "아저씨"라고 할까? "정원이 아빠"라고 할까 고민하다가
나는 "정원이 아빠"를 선택했다. 지극히 내 아이를 위한 선택이었다.


어떤 이는 이런 것이 내 아이만 생각하는 이기적 감정이라고 치부할 수 있다. 
그리고 나 역시도 수업 중에 내 아이에게 애정을 표하는 것이 좀 유치함을 느꼈다. 
그러나 그 순간의 감정을 분석해보면, 
중립적인 관점에서 교사를 하려는 그 의지는 어쩌면 
'나'를 위한 고집이 아닐까 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나'는 멋진 사람이고 편애하지 않고 '올바른 선생님'이다 라는 평을 받고 싶은 느낌?

나 혼자 윤리의식에 사로잡혀 딸의 감정을 무시한 채 혼자 도도한 척 "선생님"하며 중립적인 모습을 취하는 것보다

차라리 "유치한 나" 혹은 "지 자식밖에 모르는 놈"이라는 평가를 받더라도

내 아이가 아직 가치판단이 서지 않는 상황이라면 더 힘을 줄 수 있는 선택이 더 나은 판단이지 않을까?

우리가 식당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를 혼낼 때, 진짜 아이에게 공중도덕을 가르치기 위해 혼내는 것과 
아이를 저렇게 키웠다고 비난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아이를 혼내는 것을 구분할 필요가 있는 것처럼,,
아이의 교사로 활동하는 것에서도 이런 감정의 구분이 필요하며 그 속에서 나름대로 판단하여 선택하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의미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 이후 정원이에게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났다.

“우리 아빠는 과학선생님”이라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이따금 주말에 약속을 잡아 친구를 초대하기도 한다.


과학수업을 새벽까지 준비하고, 아이 앞에서 하는 수업이 그 어떤 순간보다 긴장되었다.
참 힘든 준비기간이었음은 분명하지만,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참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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