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의 계절

by 김시월

겨울옷을 정리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선풍기를 틀고 있다. 좁은 원룸에 코트를 접어놓은 곳이 없어 아직 옷장을 열면 겨울 코트가 보인다. 샤워를 하고 나와 옷장을 열면 겨울 코트와 눈이 마주친다. 저걸 어떻게 입고 다녀? 당연히 지금 입고 다닐 것도 아니면서 머리속으로 땀을 흘려가며 겨울 코트를 입고 있는 나를 상상한다.


귀찮고 또 귀찮아서 에어컨 청소를 미루다보니 6월 말이 됐다. 남들은 부지런히 4, 5월에 에어컨 청소를 미리 해뒀는데, 난 아직 에어컨 리모컨조차 만져보지 않았다. 미리 에어컨 청소를 해놓은 사람들은 지금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잠을 자고 있겠지? 게으른 나는 창문을 활짝 여는 것도 모자라 선풍기를 강풍으로 틀어본다. 선풍기가 아니었다면 난 아마 밖에서 자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에어컨 청소 후기를 찾아보는데 업체마다 가격이 다르다. 에어컨 종류와 평수에 따라 다르다고 하는데, 평수는 왜 물어보는 걸까? 평수가 적으면 싸고, 넓으면 비싼데 어차피 에어컨만 청소하면 상관없지 않을까? 나홀로 대답 없을 휴대폰에 대고 물어본다. 근데 휴대폰이 대답해주면 좀 무서울 것 같다.


난 더위와 추위 모두 잘 타는 편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더위를 더 많이 탄다. 그런데 티를 내진 않는다. 사람들은 더우면 덥다고 하는데, 나는 그냥 더위를 받아들이는 편이다. 어떻게 받아들이냐면.. 굳이 손으로 바람을 일으키지 않고, 땀이 흐르면 흐르는 대로 둔다. 닦아도 어차피 또 흐를 친구들. 그냥 흐르도록 두자. 나도 걸어가는데 누가 앞길을 막으면 흐름이 깨지고 기분 나쁘다. 땀이 나쁜 의도로 그러는 건 아니겠지.


추위를 덜 타는 건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남들은 풍성한 패딩을 입고 다닐 때, 나는 외투 없이 그냥 교복 그대로 입고 다녔다. 패딩을 살 형편이 아니라서 추위에 강해진 걸까? 그렇다면 고맙다. 역시 사람은 강하게 자라야 한다. 그게 도움이 돼서 지금까지도 정말 추운 거 아니면 패딩을 입지 않는다. 패딩을 입으면 사람이 좀 둔해보인다. 내가. 내가 둔해보인다는 말이다.


이왕이면 추위만큼 더위도 덜 타면 좋겠다. 땀이 유독 많이 흐르는 건 몸에 열이 많은 이유도 있다. 인생을 열심히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서 그런가 항상 불타오르는 듯한 내 몸. 이젠 좀 식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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