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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an 17. 2016

태백산맥 문학관을 둘러보면, 태백산맥은 현실이 된다

2010년 소설 『태백산맥』 기행기 3

문학관 전면 벽에 쓰인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라는 조정래 씨의 글귀가 눈길을 끈다. 그에게 있어 문학이 어떤 것인지 이 한 마디 말로 잘 알 수 있다. 누군가에게 문학은 여가이거나 돈벌이 수단일 테다. 하지만 조정래 씨는 거기서 더 한 걸음 나아가 어떤 사명감까지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런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정치 세력의 회유와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마무리 지을 수 있었던 거겠지. 태백산맥엔 이적성 시비가 잇달았다. 그래서 『아리랑』ㆍ『한강』을 쓸 때 집필하는 시간보다 검찰에서 증언하는 시간이 더 많을 정도였다고 한다.                



▲ 세 편의 장편 소설이 모두 이적성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태백산맥의 이적성 시비와 고뇌의 시간  

   

그런 이적성 시비는 작가 개인에게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었다. 그의 가족 전체에게 고스란히 피해가 가고 심지어는 태백산맥을 소장한 일반 사람들까지 ‘이적물 소지자’로 국가보안법에 걸릴 위험이 있었던 거다. 남한에선 ‘빨갱이’란 낙인이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렇게 한번 낙인이 찍히면 우리 사회에서 ‘인간답게’ 살아가긴 힘드니까. 그런 혼란한 시대상에 작가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세 편의 대하소설을 엮어내고 결국 2005년엔 이적성 시비에서마저 벗어나게 된 것이다. 당연한 결과였지만 그 때 울컥했던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벽에 써져 있는 작가의 말은 그동안의 그런 회환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말이었던 셈이다. 자기 확신이 담겨 있는 말이었던 셈이다.                



▲ 2005년이 되어서야 이적성 시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태백산맥 문학관의 숨겨진 건축미

     

들어가는 입구엔 건물을 설계한 이유가 써져 있다. 그 글을 통해 내가 처음에 했던 ‘휘황찬란하여 소설의 수수함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평이 허황된 비판인 줄을 알 수 있었다.

그 건물에 건축가의 생각이 그대로 담겨 있더라. 확정된 공간이 아닌 늘 변해가는 공간으로 설계한 것이며, 멀리서 봤을 때 비석이 솟은 듯 보여 이념 때문에 죽어간 민중을 늘 깊이 새기는 공간이 되도록 했다는 것이다.       



▲ 사자를 추모하기 위한 공간으로 건축을 디자인하다.



         

문학관에서 본 10권의 소설을 쓸 수 있는 비결 

    

들어가서 1층을 둘러봤다. 거기엔 조정래 씨가 태백산맥을 쓸 때 사용했던 필기구들, 답사할 때 입었던 옷과 신발 등 작가와 관련된 물품과 4년 동안 취재하고 준비해온 과정을 보여주는 기록물들, 집필 과정을 보여주는 기록물, 이적성 시비와 그 판결 내용을 담은 신문 자료들, 태백산맥 원고 뭉치들이 있었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난 그냥 읽어 내려가는 것이지만 작가는 그 한 줄, 한 사건을 위해 발로 뛰어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손으로 기록했다는 것을 새삼 알 수 있었다. 지리산에서 내려다본 경치를 묘사한 부분, 중도 들판의 배경을 묘사한 부분은 직접 체험하지 않고서는 그렇게 생생하게 기록할 수 없다. 그것 외에도 빨치산들의 비트 조성법이랄지 투쟁 사업의 전개 등은 객관적인 자료를 참고하지 않고선 불가능하다. 바로 그 모든 기록들이 증언과 관찰을 통해 가능했다는 것이다.



▲ 상상 속에서 그냥 글이 써지는 건 아니다. 면밀히 조사하고, 자료를 구해야만 한다.



수많은 등장인물을 우리도 기억하기 힘든데 작가라고 해서 그게 쉽겠는가. 그래서 일일이 관계도를 그려 넣으며 정리한 부분에 이르러선 할 말을 잊었다. 지금껏 이런 소설은 천재성에 의해서 뚝딱 쓰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과 반대되는 현실을 본 것이니까. 치밀하게 준비했고 꺾이지 않는 열정으로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짜내어 10권의 소설을 완성했을 뿐이었다. 바로 그런 정신과 치밀성만 있다면 이 세상에서 못 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싶었다. 지금껏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뜨렸던 내 자신이 창피하게 느껴졌다.

벌교를 탐방할 땐 비가 내리지 않더니 문학관에 들어와 둘러보고 있는데 밖에서 비가 내리더라. 운이 좋게도 타이밍이 잘 맞았다. 관람을 끝내고 나오는 길엔 다행히 비도 그쳐 있었다.                



▲ 인물들과의 관계도를 정리한 것이다. 작가도 이런 관계도가 없으면 글을 쓸 수가 없다는 걸 처음 알았다.




벌교엔 태백산맥이 살아 숨쉰다

     

소설 속의 인물들을 벌교에서 직접 만나볼 수 있었다. 하대치 형님이랑 술 한잔하며 구수한 사투리에서 풍겨오는 인간미와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소신을 느낄 수 있었고 염상구의 거들먹거리는 모습을 시장통에서 봤으며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서민영 선생님의 부드러운 듯 날카로운 눈매도 볼 수 있었다. 작은 동네였지만 그 곳은 어느 곳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커보였고 사람들도 왠지 다르게 느껴졌다.

돌아갈 시간이 되어 다시 순천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는 어김없이 나카시마 방죽 위를 달려 지나간다. 수많은 민초들의 애환이 나의 가슴 속에 파고든다. 차창 밖으론 그들의 눈물인양, 나의 눈물인양 빗방울이 내리고 있었다.



▲ 책을 보면서 참으로 많은 걸 알게 됐고, 그렇기에 잊어선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목차     


1. 왜 벌교로 향해 가는가?

도보여행 그리고 1년 후

벌교에 가기까지

전라선을 따라 가며 일본이 남긴 아픔을 곱씹다

순천, 편안한 분위기가 나던 도시

벌교의 첫 인상     


2. 벌교와 태백산맥 문학관에서 소설은 현실이 된다

태백산맥의 인물들이 활약한 벌교역과 시장

벌교에서 태백산맥의 발자취를 따라 가다

실재하는 염상구의 무대, 청년단 사무실을 발견하다

벌교를 볼 수 있던, 김사용 영감의 고택

일제의 그늘이 담긴, 소화다리

소화네 집과 정하섭의 집을 보다     


3. 문학관을 둘러보면, 소설은 현실이 된다

태백산맥의 이적성 시비와 고뇌의 시간

태백산맥 문학관의 숨겨진 건축미

문학관에서 본 10권의 소설을 쓸 수 있는 비결

벌교엔 『태백산맥』이 살아 숨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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