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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Dec 25. 2015

당신이 지금껏 본 옛이야기는 엉터리다

옛이야기 연구의 대가 김환희 선생님을 만나다 1

『옛이야기와 어린이책』을 공부 교재로 선정할 때만 해도, 이 책을 통한 작은 만남이 큰 인연으로 이어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 때만 해도 옛이야기책은 ‘아이들만 읽는 책’이라는 편견이 있었고, 문자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에게 그림과 글을 유기적으로 배치하여 읽기 편하도록 만든 ‘유아용 교재’라는 일반적인 생각만 있었다. 그랬기에 건호와 함께 이 책을 공부하기로 하며 정한 목표는 ‘문자에 익숙해지고 그림을 통해 책이란 사물에 친숙해진다’였을 정도로, 옛이야기책에 대한 인식은 낮았다. 

그런데 공부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그런 목표와는 상관없이 충격적인 것이었다. “지금까지 당신이 본 동화책은 동화책이 아니무니다.”라는 갸루상의 말과도 같은 것이었으니 말이다. 동화책을 보고서 동화책을 봤다고 말했을 뿐인데, 왜 내가 본 동화책은 동화책(동화책이라 표현하면 아이들만 보는 책처럼 느껴지므로 지금부턴 ‘옛이야기책’이라 하겠음)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일까?

같은 제목의 책일지라도 어떤 기본서적原典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내용이 천차만별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이야기책엔 여러 이본異本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럴 때 제대로 된 이야기인지, 아닌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 사람과의 만남을 '인연'이라 한다면, 책과의 만남은 '서연'이라 할 수 있다.




같은 뿌리다른 이야기   

  

이를 테면 이런 얘기와 같다고 보면 된다. 성경의 내용은 하나다. 그게 콘스탄티누스대제에 의해 정경화正經化(다양한 편들을 66권의 내용으로 확정한 사건)가 진행된 이후, 성경의 목차나 수록 문헌을 일치시켰다. 하지만 대한예수교장로회의 경우, 동일한 성경책을 보면서도 160여개로 교파가 나누어져 있다. 성경에 대한 해석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교파가 나눠진 것이다. 같은 내용의 성경을 보면서도 해석의 차이에 따라 얼마든지 내용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설화도 처음엔 하나의 이야기로 시작되었지만, 구연자의 사상, 청객의 호응에 따라 그 이야기는 엄청나게 달라졌다. 이런 걸 보고 작은 차이가 천리의 어긋남을 빚어낸다(毫釐之差 千里之繆)라고 하는 걸 거다. 그 뿐인가, 구전되던 내용이 글로 적혀져 고정되더라도 시대가 달라지면 내용에도 가감이 있게 마련이다. 밑에 있는 글은 조선시대의 구연자인 전기수傳奇叟가 어떤 식으로 사람들을 모아 구연을 하는지 알려주는 내용이다. 


          

전기수: 수는 동문 밖에 살았다. 언과패설(민담)을 구송하는데 「숙향전」·「소대성전」·「심청전」·「설인귀전」 등 전기이다.

傳奇叟: 叟居東門外. 口誦諺課稗說, 如「淑香」, 「蘇大成」, 「沈淸」, 「薛仁貴」等, 傳奇也.     


매월 초 첫째 날은 첫째 다리 밑에 앉고, 둘째 날은 둘째 다리 밑에 앉고, 셋째 날은 배오개에 앉고, 넷째 날은 교동 입구에 앉고, 다섯째 날은 대사동 입구에 앉고, 여섯째 날은 종루 앞에 앉는다. 

月初一日坐第一橋下, 二日坐第二橋下, 三日坐梨峴, 四日坐校洞口, 五日坐大寺洞口, 六日坐鍾樓前.      


위로 올라가 7일째부터는 그 길을 따라서 내려온다. 내려왔다 올라가고 올라갔다 다시 내려와 그 달을 마치면 다음 달도 또한 그렇게 한다. 

溯上旣自七日, 沿而下, 下而上. 上而又下, 終其月也, 改月亦如之.      


워낙 재미있게 읽는 까닭에 곁에서 구경하는 청중들이 빙 둘러싸고 있다.

而以善讀, 故傍觀, 妃圍.      


그는 읽다가 가장 긴요해서 매우 들을 만한 대목에 이르러서는 문득 읽기를 멈춘다. 그러면 청중은 하회(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다투어 돈을 던진다. 

夫至最喫緊可聽之句節, 忽默而無聲. 人欲聽其下回, 爭以錢投之. 


이것을 일컬어 요전법(돈벌이 하는 방법)이라 한다. 『추재기이』

曰此乃邀錢法 『秋齋紀異』          



▲ 조선시대엔 전기수가 많았다. 소설이나 민담을 외워 사람들을 모아 이야기해주던 직업이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라는 민담에선 호랑이가 사람 신체의 일부분을 먹는 장면이 들어있지만, 작가들은 그런 내용을 뺐다. 아이들이 그런 장면을 읽기엔 너무 잔인해서 비교육적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들은 자신의 생각에 따라 민담의 내용을 고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으로 작가들의 생각이나 현대 사회의 관점에 따라 개작改作을 하다 보니, 같은 제목의 옛이야기라도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 것이다. 아래의 비교표를 보면 어떻게 달라졌는지 면밀히 볼 수 있다.                                                        



▲ 분석- 이건호. 보충- 건빵



그렇다면 이쯤에서 다시 묻겠다. 지금껏 우리가 본 옛이야기책은 과연 제대로 된 내용을 담고 있는 옛이야기책이었나?               



▲ 이야기의 원형은 민담이나 설화집에 담겨 있다.




원전을 알아야 옛이야기가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옛이야기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원전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어떤 민담을 채택하여 이야기를 만들었으며, 과연 그 가치를 제대로 계승했는지 알아야 한다. 이건 분명히 전문가의 영역인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자라나는 세대에게 옛이야기책을 읽히는 이유는, 글에 친숙해지기를 바라는 마음과 동시에 긍정적인 가치관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잖은가. 그러려면 유명한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라 해서 내용도 검토하지 않고 무작정 아이들에게 읽히는 건 문제가 있다. 유명한 책이 아닌, 민담이 지닌 전통적인 가치를 제대로 계승한 책을 선별하여 읽히려는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그런 노력을 어떻게 할 것인가?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대는 그러한 노력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글을 읽다보면, 김환희 선생님의 삶에 관한 이야기와 그 분이 다년간 연구했던 옛이야기책 분석 이야기를 통해 옛이야기가 지닌 매력과 그 위험성을 동시에 알게 될 것이다. 천천히 읽으며 김환희 선생님은 어떤 분이신지, 현재 우리가 보는 옛이야기책의 한계와 가능성은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자. 



▲ 옛이야기의 대가를 만나러 가는 여정을 우리 함께 떠나보자.





목차     

     

Part 1. 프롤로그당신이 지금껏 본 옛이야기는 엉터리다

같은 뿌리, 다른 이야기

원전을 알아야 옛이야기가 보인다     


Part 2. 옛이야기의 가치

수많은 뿌리는 하나의 줄기로 자란다

예술인은 경계인이다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사람에 의한, 평범한 사람을 위한 민담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결핍을 채워주는 예술의 가치

예술이 지닌 가치를 보여준 명작, 『수호의 하얀말』

넓이는 깊이를 포괄한다

세계 문학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옛이야기     


Part 3. 옛이야기는 흐름 속에서 봐야 한다

세계에 두루 퍼져 있는 동일한 이야기의 비밀

이야기는 흐름이다

『선녀와 나무꾼』으로 본 흐름의 중요성

『흥부놀부』를 통해본 도깨비의 원래 모습

『흥부 놀부』를 통해 본 문화순결주의의 폐해     


Part 4. 에필로그이야기의 원형을 찾다가 나를 만나다

안 해도 될 이유는 지천에 널렸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않는다(不狂不及)

옛이야기엔 우리가 놓치고 살아온 단면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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