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건빵 Jan 31. 2017

‘광기의 언덕’ 연기군에 가다

2009년 국토종단 23 -  4월 29일(수)

중장초등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은 아마도 ‘낯선 사람이지만 그래도 친근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그러니 갑작스런 인연임에도 최선을 다해서 챙겨주려 했기 때문이다.                



▲ 아이들을 만나고 나니 힘이 솟는다. 그래서 더 힘차게 걸어서 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아이들에게서 본 희망의 메시지 

    

그러고 보면 저번 황산교회에서 만났던 중학생 아이나, 이번 중장초에서 만난 중학생 아이들이나 그런 점에서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에 대해 경계심이 없다. 그래서 처음 보는 사람일지라도 최대한 잘 해주려 하며,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을 해주려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삶의 경험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오히려 사람에 대한 호의는 사라지고 경계심은 높아만 간다. 그래서 어른들이 어린이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낯선 사람이 사탕을 주면 따라가지 말아라”라는 말이다. 그건 경계심을 한껏 북돋는 말이자, 지극히 현실을 반영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을 멀리해야 하고, 사람이 사람을 한없이 의심해야만 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게 사람들에 대해 획을 긋게 하고 경계심만을 잔뜩 세우게 하는 세상이 올바른 세상인지는 의문이 든다. 이럴 때 흔히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이미 그렇게 사람이 가장 무서운 세상이 되었는데, 혼자만 아니라한들 혼자만 당하는 거야’라고 말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생각, 그리고 사람은 근본적으로 이타심도 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버리진 않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2015년에 떠났던 자전거 여행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초반에 달리던 길은 자전거 여행자가 많은 길이 아니었다. 그런 곳에서 같은 여행자를 만나면 어찌나 반갑던지서로 인사도 건네고 덕담도 자연스레 건넬 수 있었다. 그런데 여주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아무도 반가워하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방해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더라. 오히려 사람이 사람을 적으로 여기게 만드는 건 사람의 본성이기보다, 도시문화의 여파임을 알 수 있었다.)               



▲ 중장초에서 만난 해맑은 사총사 덕에 행복했다. 지금은 폐교된 학교와 다들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아이들.




처음으로 터널을 지나다

     

오늘은 처음으로 터널을 지난다. 이름은 ‘갑사터널’이고 500m쯤 되는 짧은 터널이다. 한비야씨는 터널을 지날 때마다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고 이야기했었기에, 도보여행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 날을 학수고대해왔었다. 

우선 터널 안은 추웠다. 밖이 더웠던 것과 대조적이다. 그리고 꽉 막힌 곳이라 차들이 달리는 소리가 엄청 크게 들린다. 공명 되다보니 큰 트럭이 지나갈 땐 기차가 지나가는듯한 굉음이 나는 것이다. 그 소리에 온 신경이 곤두선다. 그나마 터널이 길지 않아 다행이라고나 할까. 만약 몇 Km쯤 되었다면 그 터널을 지나다 미쳐버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길게 뻗은 터널의 긴 관뿐이다. 위치 감각도 없고 소리는 온 신경을 자극한다. 답답하고 미쳐버릴 것만 같은 분위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처음으로 경험해본 터널 속 도보여행은 전혀 대비도 하지 않고 그저 온몸으로 모든 것을 감내해야만 하는 ‘악몽’으로만 남았다.                



▲ 터널을 걸어서 지나보긴 처음이다.




연기군 남면은 광기의 언덕 

    

지방도 691번을 지나 대전과 연기가 나눠지는 길엔 금강이 흐르고 있더라. 그 절경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답답함과 짜증이 일시에 걷힌 듯한 행복이 느껴지더라. 자연이 주는 아늑함은 그 어느 것에도 비할 게 없다. 더욱이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더 큰 위로가 된다. 사람은 자연을 떠나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니 말이다. 그 곳에서 금강을 보며 걸으니 시원하고 좋더라. 하지만 그런 기쁨은 아주 잠시였다. 연기군 남면에 들어서자마자 여기저기 공사가 한창이었기 때문이다.



▲ 금강의 운치. 이런 운치라면 어디든 걷고 싶다.



연기에 정부의 제2종합청사가 들어선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주변부까지 공사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당연히 중심부만 공사하는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전주도 지금 대대적으로 서부신시가지를 개발 중이다. 2000년에 대학에 입학할 땐 한적한 시골길 마냥 이차선 도로에 드넓은 농지들만 가득한 곳이, 지금은 대대적인 공사로 여기저기 파헤쳐져 있고 하나하나씩 건물이 올라가고 있다. 그때 ‘개발한다는 건 넓은 지역을 아예 뒤집어엎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막상 이곳의 공사현장을 보니, 서부신시가지 개발은 어린이 장난에 불과했던 것이다. 한 지역 전체를 완전히 밀어버리고, 자연히 형성된 마을을 완전히 없애버리고 백지 위에 그림을 그리듯 도시 하나를 세우고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은 기초 공사 중이어서 여기저기 파헤쳐 놓은 것 투성이었다. 



▲ 2009년 서부신시가지의 모습. 



그걸 보고 있으니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에서 오로쿠 할멈이 말한 “광기의 언덕”이 바로 이런 모습이구나 싶더라. 그 황량함과 무섭도록 인공적인 모습, 그리고 여기저기 흙먼지 풀풀 날리는 이곳을 최대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쉬고 싶었지만 무작정 걸었던 것이다. 그곳에 오래 있다가는 내 정신이 휙 돌아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 좌-[폼포코너구리 대작전]의 광기의 언덕, 우-연기군의 광기의 언덕




행정도시 건설로 한 마을이 초토화되다

     

한참을 걷다보니 저 멀리 교회가 눈에 띈다. 저기까지만 가면 드디어 쉴 수 있겠거니 하는 마음에 열심히 걸었다. 그런데 근처에 가보니, 이게 웬 걸? 마을 전체가 초토화된 것이 아닌가? 겉만 멀쩡할 뿐 속은 다 뜯겨진 상태였다. 전쟁을 겪은 마을을 보는듯한 씁쓸한 광경이다. 국가기관의 이전으로 한 마을은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이곳을 기반으로 살던 원주민들은 졸지에 실향민이 되어 버렸다. 

마을엔 마을 사람들의 희노애락이 담겨져 있었을 것이다. 그 곳은 생활기반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조상들의 얼이 어린 곳이고 마을 공동체의 따스함이 깃든 곳이다. 그건 단순히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자본은 그런 감성적인 것을 다 무시하고 토지가격이란 표준적인 잣대로 모든 걸 매수했을 것이다.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는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의 단면이다. 하긴 사람의 가치마저 돈으로 환산되는 세상이니, 더 말해서 무엇하랴? 



▲ 저 멀리 마을이 보인다. 저기가 바로 연기군 남면이다. 저긴 괜찮을까?



수도권으로만 몰린 행정기관들을 분산 배치해야 한다는 생각엔 찬성한다. 그리고 그게 이곳으로 와야 한다는 것에도 찬성한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서 마을이 거짓말처럼 사라진 모습을 보고 있으니 여러 생각이 들더라. 폐허의 황량함 때문인가, 아니면 내 마음의 어떤 측면이 이곳에 이입되었기 때문인가. 어찌 되었든 이곳에 있다간 더 힘들어질 것만 같다. 그러니 빨리 이곳을 벗어나자. 여기서 얼마를 더 가야 사람이 사는 동네에 닿을 수 있을까? 지금은 허허벌판이지만 머지않아 최신식 건물들이 즐비한 도시로 완벽히 리모델링되어 있겠지. 그때가 되면 새로운 소비도시로 변모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예전 연기군의 모습은 사진으로나 볼 수 있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 좌- 예전 남면의 모습 / 우-2015년 남면의 모습. 완전히 헐렸고 완전히 변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누는 기쁨을 누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