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건빵 May 08. 2018

움직여야 명예든 비방이든 따라오게 된다

18년 5월 8일 임용 라이프

2018년 3월 15일에 임고반에 입성했고 오늘은 5월 8일이니 어느덧 두 달 정도의 시간이 지난 셈이다. 두 달 사이에 참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기에 오늘은 그 변화과정을 기록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혀보도록 하겠다.         



▲ 임고반에 입성하던 날 하늘에선 축하의 비가 내렸다.



       

헤맸고 심적 부담으로 맘만 무겁던 3 

    

한 달째가 되었던 4월 17엔 “그러니 막상 다시 공부를 하겠다고 앉아 있으니 좀이 쑤시고, 임용을 관둔 이후 한문문장을 진득하게 본 일이 없으니 이해되지 않는 것투성이로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마냥 좋을 줄 알았는데, 역시나 현실의 중압감, 미래의 불투명함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가 않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뭐 이 글엔 ‘한문문장’을 운운했지만 실제로 그간 일을 하면서 책 한권을 제대로 읽을 정도로 집중해본 적이 없다. 무에 그리 마음이 바빴던지 해야 할 일이 많다고만 생각했지, 무엇 하나 제대로 시작도 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몸가짐은 그대로 나의 한 달을 휩쓸었다. 앉아 있는 것도 익숙지 않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으니 말이다. 

우선 경서를 읽으며 기본부터 해나가자는 생각은 있었지만 그것조차 맘껏 집중하며 하질 못했다. 가까스로 한 달 만에 『논어』를 끝내긴 했지만 그건 ‘한 번 눈으로 대충 읽어봤지’라는 자위였을 뿐, 알고서 읽었다는 충만감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엔 ‘앉아 있는 게 곤욕스럽다’는 생각까지 들더라. 해야 하니까 하고 있는 거지, 정말 하고 싶어서, 이 시간이 미친 듯이 좋아서 한다는, 처음의 마음은 성난 바람 앞의 벚꽃처럼 순식간에 떨어져 내렸다.                



 ▲ 3월 21일엔 갑자기 눈이 와서 설국이 되었다. 눈이 와서 맘이 심란, 공부가 안 되서 심란^^




움직여야 무엇이든 벌어진다

     

하지만 사람이란 져버린 벚꽃 속에서도 심미적인 세계의 영감을 얻기도 하고 삼라만상의 이치를 깨치기도 한다. 그 대표주자가 아우슈비츠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의미요법’을 발견한 빅터 프랭클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한유는 「학생을 나오게 해서 해명하다進學解」라는 글에서 ‘움직이면 비방이 따랐지만, 명예 또한 따랐다(動而得謗, 名亦隨之)’라는 말을 남겼다. 여기서 핵심은 ‘움직여야만’에 있다. 무엇이든 결과가 뻔할 지라도 시작해보아야만 실패든 성공이든, 행복이든 불행이든 느낄 수 있고 그건 홀로 오는 게 아닌, 늘 쌍으로 찾아온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환상은 사라지고 지루한 그 현실만 무겁도록 짓누르는 순간이야말로 새로움의 계기인지도 모른다. 연암의 「큰 누님 정부인 박씨에게 드린 묘지명伯姉贈貞夫人朴氏墓誌銘」에서 나오는 ‘而’처럼 말이다. ‘말이을이’는 단순한 접속사가 아니다. 박희병 교수는 그의 책에서 이 글자의 의미를 명료하게 밝힌 적이 있다. 아래에 인용한 구절을 같이 읽어보자.           



차안과 피안 사이에는 연속과 단절, 고조와 전환, 인식의 비상과 미학적 고양이 존재한다. 아무 뜻도 갖지 않는 이 한 글자가 이 모든 것을 매개하고, 이 모든 것을 실현시키고 있다.

-『연암을 읽다』, 박희병, 돌베개, 2006, 25~26쪽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그래서 한문에선 단순히 ‘접속사’라고 불리며 실질적인 의미를 가지지 않은 글자라는 뜻으로 ‘허사虛辭’라고 불리는 이 글자를 놓치는 순간, 누이 묘지명을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없다. 바로 이 한 글자에 번뜩이는 기치를 볼 수 있어야만 이 글의 가치가 살아 숨 쉬고 나에게도 의미를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나에게도 3월은 깊은 절망, 깊은 한숨, 고뇌에 찬 시련이었으며, 그건 ‘움직’이려는 시도였고, 4월을 준비하기 위한 시기였던 것이다.                



▲ 예전 중도에 봄이 내렸다. 예전엔 이곳에서 공부를 했었는데, 내린 봄을 따라 정말 오랜만에 이곳에  오다.




한문이 꿀처럼 달콤한 순간

     

그 계기는 새롭게 부임한 두 분의 교수들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과 스터디를 진행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다. 매주 수요일 저녁에 열리는 스터디는, 일반 강의와는 다른 매우 알싸한 충격을 안겨줬다. 하긴 뭐 나처럼 학교를 졸업한 지 10년이 훌쩍 지난 이에겐 이런 식의 수업 자체가 재밌는 경험이며 신나는 시간이긴 하니 말이다. 

김하라 교수에겐 한문산문이 지닌 내용의 함축성과 전개방식의 탁월함을, 김형술 교수에겐 그토록 어렵고 난삽하게만 보이던 한시의 핍진逼眞하면서도 생각의 정수를 담는 치밀함을 맛볼 수 있었다. 그건 마치 『죽은 시인의 사회』란 영화에 나오는 ‘시가 꿀처럼 흘러나왔던 거였어. 영혼이 흘러나왔고 여자들은 황홀했고 신들이 창조되었지.’라는 대사처럼 한시 또한 그럴 수 있다는 걸 알게 했고 꽉 차 오르는 환상세계에 대한 이미지가 넘실거린다는 사실을 알게 했다. 

실상 내가 서 있는 이 곳이 꿈속인지, 현실인지, 과거의 망령인지, 오래된 미래인지는 중요하지가 않다. 꿈일지라도 춤출 수 있으면 그만이고 지극한 현실일지라도 한 번 울어재끼면 그만이니 말이다. 그 스터디에서 처음으로 눈치도 보지 않고 맘껏 울어재꼈고, 스텝이 꼬일지라도 몸치란 자의식이 짓누를지라도 맘껏 흔들어재꼈다. 그렇게 환희에 찬 그 순간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공부하는 재미, 한문을 알아가는 기쁨은 실로 오랜만에 느껴본다.                



 ▲ 스터디에 참석할 수 있다는 게 좋다. 새로운 교수님 두 분 덕에 생기를 찾을 수 있었다. 




예전에 한문 공부했던 것들은 꿈처럼 사라졌다

     

하지만 퇴색될지라도, 나중에 보면 헛웃음만 나올지라도 그 순간의 감흥을 남겨두고 싶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역시나 한글파일로 만들어 놓는 일이다. 지금까지 임용공부를 하면서는 ‘책 볼 시간도 부족한데 문서작업까지 하면 배보다 배꼽인 거겠지’란 생각 때문에 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땐 문서작업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어쨌든 계속 원문을 보며 공부한 것이니 내 머리 속 어딘가에 고이 모셔져 있어, 필요할 때면 짠하고 나타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머지않아 그게 ‘근자감’이며 대충 공부해온 나 자신에 대한 ‘비겁한 변명’일 뿐이란 걸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임용공부를 그만두고 단재학교에 근무하게 되면서 정말 많은 글을 쓰게 됐는데, 글을 쓰다보면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와 딱 맞는 한문문장이 얼핏 생각나 인용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하지만 막상 그 이미지를 그리며 인용하려 했던 문장을 찾아보면 이미지만 흐릿하게 떠오를 뿐, 제대로 된 내용이나 제목은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그건 곧 문장을 보고 해석하고 이해하며 공부했다고 자신했는데, 그저 한자만을 따라가며 해석하기에 급급했을 뿐,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반증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렇게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하니, 한문을 공부했던 뭇 순간들이 헛헛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런 아쉬움이 늘 있었기에 이번에 다시 공부하게 됐을 땐, 그런 부분들에 유의하며 공부해보잔 생각을 했었고, 이 스터디가 부싯돌이 되어 그런 생각들에 ‘시작의 불꽃’을 환하게 피워냈던 것이다.                



▲ 이런 이유로 만들어진  문서다. 여기서부터 나의 한문 공부도 새롭게 시작됐다. 




공부한 내용을 문서로 정리해두기로 하다

     

여기까지 생각은 확장됐는데 디테일한 부분에 들어와선 망설여지는 게 있었다. 역시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나 보다. 악마는 여러 속삭임으로 나를 계속 흔들어댔다. ‘어떤 식으로 문서화할 거냐?’, ‘어떤 레이아웃으로 만들 거냐?’라는 형식적인 부분에서부터 ‘이걸 나만의 자료집으로 갖고 있을 것인가? 그게 아니면 블로그에 공개할 것인가?’하는 실제적인 부분까지 말이다. 솔직히 내실을 기한다면 이런 것들은 어떻게 해도 그만이다. 그게 어떻게 편집되든, 공개여부가 어떠하든 뭔 상관이란 말인가? 더욱이 한문 실력이 개뿔도 없는 상황에서 그런 것만 신경 쓰면 자칫 외화내빈外華內貧이 될 가능성도 있으니, 주의하고 또 주의해야만 한다. 

하지만 며칠 간 고민하다가 결국 레이아웃이나 편집에 대한 방향은 어느 정도 대략적인 게 잡혔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학교에 취직해서 여러 편의 글을 써오다 보니 편집에 대한 방향들은 끊임없이 고민해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서작업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그 다음으로 공개 여부에 대해선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외화내빈이 될까봐, 쓸데없는 곳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길까봐 걱정이 된 탓이다.                



▲ 4월 23일  사진, 이제  임고반이 매우 익숙하고 친숙해졌다. 장난기 가득한 표정이 아주 조으다.




함께 보며 함께 다듬어가는 것  

   

하지만 그 또한 하나의 계기로 맘이 정해졌다. 그건 뭐니 뭐니 해도 『맹자』였다. 사서四書 중 가장 넘기 힘든 험준한 산맥 같은 책이다. 『논어』야 짧은 대화집이거나 명언집 정도로 해석본을 봐가며 해석이 되는 정도로 만족하며 넘기면 그뿐이지만, 『맹자』는 현장성이 담긴 치열한 논리가 일품인 대화집으로 대화의 흐름, 논리의 전개, 각자 생각의 차이를 명확히 알아야만 이해가 되니 말이다. 더욱이 어려운 글자도 어찌나 많고, 『시경詩經』이나 『서경書經』과 같은 인용문도 어찌나 많은지 읽어나가기가 버겁기만 했다. 그러니 도무지 손이 잘 가지 않고 눈으로 볼 땐 어느 정도 해석이 되는 것 같은데, 다시 축자식으로 해석해보면 막히기 일쑤더라. 어찌 보면 지금까지 나의 해석들이 죄다 이 모양이었을 테다. 피상적으로만 알고 대충 해석하며 알고 있다고 자만하는 패턴 말이다. 

그래서 그에 대한 점검도 받고 내 밑바닥을 드러내고자 『맹자』의 해석은 공개하기로 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부끄러움이나 이럴까 저럴까 쟤는 마음이 아닌,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인정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이 트이고 나니, 다른 문장들도 공개해야겠단 생각이 뒤따랐다. 지금은 이 정도임을 공표하고 여기서부터 차근차근 쌓아가도 괜찮다고 생각하기에.               



▲ 이런 생각들을  거치며 [맹자]를 비롯한 다른 원문들도 공개하고 같이 보기로 했다. 




움직여봐 그것만으로도 된 거야 

    

이런 이유 때문에 4월은 무지 뜨거웠다. 예전엔 봐야 하니까 봐야만 했던 책들이 이젠 즐거운 만남이 장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때론 “지금 한유 형님 만나러 가야 해서 얼른 가봐야겠어.”라거나 “아까 맹자와 얘기하다가 중간에 끊어서 빨리 다시 얘기해야해.”라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할 정도다. 그래서 5월엔 이 기류를 이어받아 하나하나 만들어갈 것이다. 

그 첫 번째 도전과제는 지금부터 보는 문장들에 감상이란 항목을 덧붙여 나의 소감을 담아보려 한다. 학술적인 부분에서의 작품의 의미, 주장의 합리성 따위를 따지는 평가가 아닌, 그저 그 글이 나에게 들어와 어떤 이야기로 읽혔는지, 그리고 어떤 흔들림을 안겨줬는지 그 느낌을 담아볼 생각이다. 그건 곧 그 글들을 학문적인 입장에서가 아닌, 그저 책을 보듯 편안하게 읽겠다는 각오이기도 하다. 5월엔 또 어떠한 계기들이 나를 뒤흔들어 놓을지 사뭇 기대된다. 움직여야만 한다. 그래야 나가든 우회하든 변화가 따른다. 그게 바로 공부하는 맛이다. 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 전주대학교에  핀 철쭉. 아리땁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마트폰이 바꾼 임고반 풍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