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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May 31. 2018

희망, 한 가득을 선물 받다

18년 5월 30일 임용 라이프 1

리쌍의 오래된 노래 중에 ‘우리 지금 만나♬ 당장 만나♪’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노래가 있다. 그 노래가 나왔을 때 처절한 내용임에 비해 흥겨워 엄청 자주 들었고, 오죽했으면 2010년에 마지막 임용을 준비하면서 만든 자료집의 이름에 이 노래 제목으로 쓸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 노래에 푹 빠져 있던 때에 난 사람은 선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누구나 알다시피 선은 어떤 것도 아니다. 그저 점과 점을 연결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어떤 지향점도, 어떤 사건도, 어떤 변화도 있지 않다. 하지만 선과 선이 마주치면 접점이 생기고, 거기에 또 다른 선까지 마주치면 삼각형이 되어 완전히 형질이 변화하게 된다. 그걸 도약이라 할 수 있고, 나라는 인간이 가진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계기로 들어서는 가능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이유에서 한 사람과 다른 한 사람의 인연은 단순한 수학 공식과 같이 ‘1+1=2’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떤 존재와 마주쳤냐에 따라 ‘1+1=∞’인 경우도 있지만, ‘1+1=-x’가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 이 노래 정말 좋다. 흥겹고도 절절한 마음이 담겨 있는 수작이라 많이 들었다.




어긋남은 축복이다 

    

일찍이 에피쿠로소는 이런 이야기를 클리나멘을 통해  한 적이 있다. 그는 지구라는 어마무시한 생명체의 활동공간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에 수직으로만 떨어지던 한 원자가 약간 사선으로 엇나가 떨어지게 되었기 때문이라 보았다. 사선으로 엇나가던 원자는 바로 옆에서 직선으로 떨어지던 원자와 마주쳐 커지고 다시 그 옆의 원자와 연쇄적으로 마주치고 마주쳐서 하나의 큰 덩어리, 즉 지구가 탄생했다고 본 것이다. 작디작은 원자 하나가 기존 법칙을 위배하고 약간 엇나갔을 뿐인데, 그게 지구 탄생의 결정적 계기였으며, 우연이 얼마나 거대한 힘을 내장하고 있는 지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건 좀 더 쉽게 말하면, 리쌍이 말한 ‘당장 만나’가 빗어낸 참극이며, 그때 내가 어떻게 변할지, 그리고 어떤 새로운 것들이 생성될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사람이 선인 이상, 선과 선은 마주쳐야 하고, 마주쳐서 면으로, 그리고 또 다른 선과 마주쳐 다각형으로, 그러다 결국엔 원으로 형질을 끊임없이 변화해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말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이란 존재는 나를 헝클어버릴 수 있는 저주가 아니라, 예전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나로 만들어가고 그렇게 이끌어줄 수 있는 축복이란 사실이다. 그러니 엇나가고 마주치고, 계획을 수시로 무너뜨려 우연의 세계를 한 없이 가볍게 내딛으면 되는 것이다.

재밌게도 5월이 거의 끝나가는 30일에 전혀 다른 두 개의 선과 마주쳤다. 지금부턴 그 두 개의 선이 나와 어떻게 마주쳤고 그게 어떤 변화들을 낳았는지 그 이야기를 풀어보도록 하겠다.                



▲ 교수님 연구실에 방문하여 필요한 자료를 받아왔다. 5월은 나에게 뭉클한 한 달이었다.




넘어진 그 자리에서만 일어설 수 있다

     

막상 다시 한문공부를 하겠다고 호기롭게 맘을 먹고 6년 정도 살았던 서울이란 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운 희망을 꿈꾸며 고향 전주에 터를 잡았다. 하지만 한문공부란 게 생각만큼 쉽지가 않더라. 더욱이 6년 정도 공부를 아예 놨던 터라 한문은 수학의 기호만큼이나 외계어로 보였고, 임고반의 자리는 면벽수행을 하는 공간만큼이나 갑갑하게만 느껴졌다.

이럴 때 누군가에게 가서 “힘들 줄은 알았지만 막상 해보니 상상 이상이던데요. 제가 만용이었던 걸까요?”라고 물으면, 임용을 다년간 공부했던 사람이라면 십중팔구 “누구는 뭐 공부가 잘 되어서 하나요. 해야 하니까 하죠. 그러니 꾹 참고 해보세요.”라고 말할 것이다. 맞다, 다시 하겠다는 선택도 내가 했고, 결국 적응하는 문제도 나에게 달려 있으니, 이 과정을 넘어가는 것도 내가 해야 하고, 이 과정을 통해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도 내가 해야만 한다.

하지만 누군가 ‘넘어진 그 자리에서만 일어설 수 있다’라고 했듯이 내가 실패했던 바로 이 자리, 뼈저리게 아픔을 간직한 이 자리에서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때마침 새로 오신 교수님이 산문과 한시 스터디를 진행하고 있었고 우연하게 그 사실을 알게 되어 참석하게 됐다. 오랜만에 수업을 들으니, 그리고 바로 그 다음 달에 발표까지 준비하게 되니 오래도록 잊고 있던 한문의 세계를 유영하는 재미, 깊이 연구할 때 찾아오는 흥분, 사람들과 열띠게 토론할 수 있는 희열을 맛볼 수 있다. 그래 바로 이게 한문 공부를 하는 맛이고, 모르는 걸 알게 될 때에 가슴 시려오는 맛이었다.                



▲ 모처럼 발표준비를 했다. 그 과정을 통해 한문 공부를 하는 재미를 다시금 느끼게 됐다. 위의 사진은 첫  발표 자료다.




엇나감이 만든 고마운 인연

     

발표준비를 위해 자료를 찾다 보니 원문파일이 없는 게 무척이나 아쉽더라. 공부 자료를 만들려면 어떻게든 여러 자료들을 참고하고 종횡무진 누비며 이해해야만 좀 더 원 자료가 쉽게 이해가 됐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때 생각난 사람이 바로 고전번역원에 있는 후배였다. 나야 2010년 이후로 한문은 놨지만, 그 녀석은 그 후로도 더욱 발분하여 여러 번역작업에도 참여했고 꾸준히 공부를 해왔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 기간 동안 이미 나와는 넘사벽인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아주 간절하면서도, 아주 간곡한 목소리로 SOS를 외쳤던 것이다. 이럴 때 연락할 수 있는, 편하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전문가가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가(나 왜 이리 인복이 좋은 거냐^^).

바로 이 녀석과의 인연이 에피쿠로소가 말한 클리나멘에 속한다. 처음 알게 됐을 때 이 녀석은 재학생으로 이제 막 알을 깨고 나와 세상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호기심 어린 시선을 지닌 병아리 같은 존재였고, 나는 삼수생으로 임용을 준비하는 그렇고 그런 존재였다. 무엇 때문에 인사만 나누다가 말문을 트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그 얘기를 통해 처음으로 대안학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2011년에 내가 대안학교에 취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다가 2010년에 함께 스터디를 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선과 선이 마주쳐 접점이 생겼다. 거기엔 이 녀석과 친한 아이들 2명과 05학번 후배까지 총 5명이서 함께 스터디를 꾸렸다. 겨우 한 학기 정도밖에 같이 하지 않았지만, 그 시간 동안에 편안하게 하고 싶던 것을 모두 다 해봤던 것 같다.

그래도 그런 인연이 있었기에 나는 대안학교에 취직하면서 서울에 올라오게 됐고, 그 녀석은 서울에 있는 고전번역원에서 전문번역 과정을 이수하게 됨으로 자연히 서울에 올라오게 되어 10년 이후 끊겼던 관계가 14년부터 다시 시작되어 1년에 한 번씩 만나며 서로의 근황을 묻는 편한 관계가 되었다. 그리고 그건 2017년 12월에 이사를 했다며 집들이까지 초대할 수 있을 정도로 이어졌다.

이쯤에서 생각해봐도 이와 같은 인연은 놀랍기만 하다. 2008년에 처음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만 해도, 그리고 2010년에 스터디를 같이 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 긴 시간 동안 편안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인연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그건 그 녀석도 마찬가지일 거다. 그건 그만큼 엇나감의 축복, 우연이란 축복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 작년 12월 17일에 새롭게 이사한 집으로 아이들을 초대했다. 다들 2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데  냉큼 와주니 고맙더라.




5월은 행복이었네

     

그 녀석은 계속 한문을 공부해왔던 전문가답게 여러 중요한 얘기들을 스스럼없이 해줬으며,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자료들을 보내주겠다고 흔쾌히 답해줬다. 어찌 보면 귀찮은 부탁, 과한 부탁일 수도 있는데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아주 쿨하게 받아들여줬다.

그러면서 갑자기 책을 보내줄 테니 주소를 알려달라고 한다. 성백효 선생님의 사서 번역본이 새롭게 출판되어 나왔기에 그걸 보내주겠다는 것이다. 나야 이미 예전에 나온 번역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새롭게 살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솔직히 어떤 식으로 편집이 됐는지, 그리고 어떤 내용들이 더 첨가가 됐는지 보고 싶기는 했었다. 더욱이 최근엔 맹자를 한 편씩 올리고 있으니, 새로운 번역서를 참고할 수 있다면 번역이 더 나아질 건 뻔할 뻔자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 녀석이 먼저 내 마음을 꿰뚫어보기라도 했다는 듯이 보내주겠다고 한 것이니, 깜짝 놀란 것도 깜짝 놀란 거지만 정말로 행복해 절로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극도로 행복한 순간에 사람은 이성을 잃고 바보처럼 실실 웃는다던데, 그때 내 모습이 정말 그랬고 정말 오랜만에 ‘살아 있어 행복하다’는 느낌을 들었다(접때 한어대사전과 사고전서를 받았을 때도 이와 같은 충만감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면 요새 이래저래 정말 행복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런 상황이니 어찌 장난을 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래서 “오늘부터 누나로 모시겠습니다~ 충성~”이란 너스레를 떨었던 거다. 도올 선생님은 ‘대인은 반드시 유머가 있다’라고 말했는데, 그 말에 백 번 동의하기에 그처럼 반응한 거다.



▲ 생각도 못했는데 책을 보내준다고 하니, 그것도 전공과 관련된 책을 보내준다고 하니 절로 좋다. 완전 조으다.



이러한 내용이 바로 저번 주 수요일인 23일에 나눈 얘기다. 책이 언제 올지 기다리고 있으니, 한문은 더욱 재밌어졌고 나날은 더욱 축복처럼 느껴졌다. 신흠이 쓴 『야언野言』 중에 ‘문을 닫고 마음 맞는 책을 보는 것과 문을 닫고 마음 맞는 친구를 맞이하는 것과 문을 나가 좋아하는 정경을 찾는 것이 바로 인간세상의 세 가지 즐거움이다(閉門閱會心書, 開門迎會心客, 出門尋會心境, 此乃人間三樂.)’라는 구절을 공부하며 교수님은 “‘書’, ‘客’, ‘境’ 대신에 지금 자기에게 의미 있는 것을 넣어 봐도 좋을 것 같아요. 그 중 재밌는 대답 중엔 ‘문을 열고 무척 기다려온 택배를 맞이하는 것開門迎會心宅配’이란 것도 있었어요.”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걸 공부하던 순간엔 별로 공감이 되지 않았다. 하긴 요즘엔 물건을 사면서도 시들시들해져서 백배가 오길 손꼽아 기다린 적이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녀석이 보내준다던 책을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 있으니, 위에서 말한 ‘문을 열고 무척 기다려온 택배를 맞이하는 것’이 엄청 공감되더라.

그렇게 한 주가 흐르고 마침내 그토록 아기다리고 고기다리던 선물이 나의 손에 들어왔다. 이 행복을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택배를 받고 뜯어보는 그 순간까지도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요즘 책을 사보면서 느껴본 적 없는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두근거림이었다. 포장을 다 뜯는 순간, 드디어 새로운 사서 번역본이 눈에 들어왔고 정말로 고맙고도 또 고맙다는 마음이 한가득 들었다. 이렇게까지 마음을 써줘서 고마웠고, 손수 포장하고 보내야 하는 번거로움에도 애써주니 고맙게 느껴졌다.

이제 이것으로 한문이란 바다를 재밌고 신나게 건널 수 있는 든든한 자료집으로 쓰도록 할 것이다. 이렇게 마음 써준 그 진심을 고스란히 받아 어떤 학문적인 성장을 이루어낼 수 있을지 지켜봐줬으면 좋겠고 너 또한 연구실에서 공부와 씨름하고 있을 텐데 바람도 쐬고 반가운 친구도 만나며 신나게 공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슴 뭉클하고 희망찬 5월을 만들어줘서 고맙다! 6월도 재미지게 살아보자.



▲ 고마운, 그리고 공부가  무척 하고 싶게 만드는 자료집이 도착했다. 책을 받으며 이렇게 행복한 적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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