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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an 06. 2019

나아감과 멈춤의 조화에 대해

2013년 7월 4일(목)

오늘은 알마티에 가는 날이다. 알마티를 떠나서 탈디쿠르간과 우슈토베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한 지 벌써 2주가 흘렀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는 것

     

다시 알마티의 교육원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마치 한국에 돌아가는 것 같이 기분마저 든다. 그만큼 어느새 알마티 한국교육원은 우리에게 ‘홈타운’ 같은 곳이 되었다는 얘기인 것이다. 1주일간 머물렀을 뿐인데도 정이 듬뿍 들어 언제 돌아가도 우릴 반겨줄 거란 기대가 있기 때문이겠지. 더욱이 교육원엔 여전히 교육생들이 있다. 우리가 교육원에 있을 때 교육원생들과 단재학교 여학생들이 엄청 친해졌다. 밤마다 모여 수다도 떨고 놀기도 하며 지냈기 때문이다. 그 학생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 더 빨리 알마티로 돌아가고 싶을 밖에. 특히 연중이는 그 학생들을 볼 생각에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기까지 했다.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9시에 출발할 예정이었기에 느긋하게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짐을 챙겨 내려왔다. 교통편으로 교회에서 3대의 택시를 불러줬고 그걸 타고 가면 된다. 이미 가격흥정은 끝났기에 차에 나눠서 타고 출발했다. 

알마티로 가는 길은 친숙한 모습 그대로였다. 비포장도로는 여전히 공사 중이었으며, 중간에 들른 휴게소도 그 모습 그대로였다. 캄차카이 호수를 지나 카지노들이 즐비한 유흥지구를 거쳐 알마티 외곽에 도착했다. 서서히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곧 있으면 카자흐스탄의 가장 번화한 도시인 알마티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 아침을 맛있게 먹고 이제 출발한다. 드디어 알마티로 가고 곧 있음 한국으로 돌아간다.




역동적인 균형감각

     

익숙한 풍경에 온 시선을 뺐기고 있을 때, 문뜩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자동차는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필연적으로 ‘속도경쟁’이 될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하면 짧은 시간 안에 최고 속력에 도달하느냐가 자동차 기술 발전의 바로미터로 인식되는 까닭이다. 하지만 여기에 더 중요한 조건이 숨어 있다. 속도를 제어할만한 기술이 없으면 아무리 빨리 최고 속력에 도달한다 할지라도, 사용할 수 없다. 즉, 속도를 안정적이면서 정교하게 감속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속도경쟁의 기본 전제라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정리해야 옳다. “나아감은 제대로 멈춰 서기 위해서만 필요하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꼭 자동차에 한정되어서만 통용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람이 사는 것도 이와 같으니 말이다. 무언가를 하려 하는 것도 중요한 덕목이지만, 그것을 제대로 마무리할 수 있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서 ‘끊고 맺음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제대로 정리하지 않으면서도 일을 벌이는 사람은 앞으로만 질주하는 자동차처럼 무서운 사람이며, 일을 벌이지 못하면서 정리만 하려는 사람은 브레이크만 달린 자동차처럼 무기력한 사람이다. 나아가야만 멈추는 게 의미가 있고, 멈출 줄 알아야 나아가는 게 뜻깊다. 그래서 우린 무서운 사람도 무기력한 사람도 아닌, 나아감과 멈춤의 역동적인 균형감각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한다.                 



▲ 오랜만에 보는 캅차카이 호수. 여전히 바다 같은 위용이 보기 좋다.




잘 멈추기


학생들과 3주간 생활했다. 홈스테이를 들어갈 때 외엔 줄곧 같이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도무지 자신이 해놓은 것을 치우거나 정리할 줄 모른다. 자신의 짐을 챙기는 데에만 모든 신경을 집중할 뿐, 자신이 어질러 놓은 것, 마셨던 컵 치우기, 과지를 먹고 흘린 봉지 줍기 등 가장 기본적인 청소와 정리가 되지 않는다. 

언젠가 한 아이는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며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버려야 청소부들도 할 일이 있고 생활할 수 있잖아요.”라고 태연하게 말했었다. 아마 대부분의 아이들도 이런 비슷한 마음이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어질러 놓은 것을 치울 사람은 따로 있고, 그걸 통해 그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찾는 게 아닐까’하는 마음 말이다. 

우리 사회는 ‘하는 것’만을 중시하지 ‘멈추는 것’을 중시하진 않는다. 무언가를 벌여, 새로운 것이나 기존의 합의된 것들을 따라 하는 것엔 박수치며 환영하지만 어떤 일을 그만둘 땐, 그게 제대로 멈추는 것인지 전혀 따지지 않고 비난하거나 실망하기에 바쁘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박수칠 때 떠나라’라는 말처럼 제 때 멈출 수 있는 용기이며 제대로 정리할 수 있는 꼼꼼함이다. 그럴 때 ‘하는 것’에도 그만한 의미가 부여되기 때문이다. 

그처럼 우리도 무언가를 제대로 끝내고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정리가 되어야만 하는 일이 그만큼 정당해지고 의미가 있으니 말이다. 그림을 그리겠다며 온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지라도 그걸 치우고 깨끗이 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괜찮다. 실패가 뻔할지라도 그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강인함이 있다면 괜찮다. 그럴 때 난장판이든 실패는 한 걸음 자신을 키우는 자양분이 되기 때문이다. 



▲ 다시 알마티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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