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4일(목)
평가회 시간은 교육원에 도착하자마자 시작하였다. 당연히 마음이 가벼웠다. 원래 어떤 일이든 마무리 지을 땐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법이다. 오죽하면 군대를 제대하고 나오면서도 ‘군생활 재밌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겠는가. 실제 군생활이 재밌었냐, 그렇지 않냐는 중요하지 않다. 언제나 끝자락에 서서 그 당시를 회상해보면, 그 시간을 지나온 자신이 대견해 보이며 그 시간들을 미화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 또한 카자흐스탄의 3주간의 여행을 미화하고 대충 얼버무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 계속될 것이기에, 솔직한 각자의 생각을 들을 필요가 있었다. 내가 평가회라는 딱딱한 용어를 쓰긴 했지만 냉정하게 시비를 가리자는 의미가 아니라, 각 학생의 느낌과 소감을 듣자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 감상을 남겨 놓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피곤하기도 했고 번거롭기도 했지만 이런 자릴 부득불 마련한 것이다. 그래도 분위기를 무겁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 음료와 과자를 마련했고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말을 맘껏 할 수 있도록 했다.
단재친구들은 이런 자리를 누구보다도 좋아한다. 평가를 받는 자리는 아니기 때문에 맘속에 담아놓은 말을 맘껏 할 수 있고, 거기엔 누구도 시비를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자리를 통해 확실히 알게 되는 건 누구나 말하기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교육현장에선 더욱 더 학생들이 자유롭게 말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단 확신이 든다.
그래서 짧게 한 시간 만에 끝내려 했는데, 말을 하다 보니, 금세 두 시간이 흘렀다. 어떤 의견에 대해서는 각자의 의견이 나누어지기도 했고 어떤 의견엔 합의라도 한 듯이 한 목소리를 냈다.
3주 동안 여러 곳을 옮겨 다녔고 새로운 만남이 계속되었다. 이에 대해 긍정하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부정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긍정하는 학생들은 환경이 바뀌는 만큼 다양한 경험을 하며, 다양한 만남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좋다는 거였고, 부정하는 학생들은 한 학생과 제대로 사귀지 못하며 장소를 옮길 때마다 적응해야 하기 때문에 싫다는 거였다.
내가 생각해봐도 두 가지 의견에 충분히 이해가 된다. 3주 동안 한 학생의 집에서 생활한다면, 친구 이상으로 친해질 수 있을 것이고, ‘또 하나의 가족’과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으며, 그 지역에 대해 한국만큼 친숙해질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친구와 잘 맞아야 되며, 그 집의 분위기와 잘 어울릴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만 된다면야 3주든, 6주든 전혀 힘들 것 없이 최대한 느끼며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개인적인 생각으론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이번 여행이 맘에 든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다양한 장소를 돌아보며 카자흐스탄이란 나라를 좀 더 잘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바로 그런 경험들이 이번 여행기의 자양분이기도 했다.
카자흐스탄에서 여행하려면 아직까지는 카작어만 해서는 불가능하다. 특히 알마티와 같은 도시에 살기 위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말을 들어보니, 시골에는 카작어만 할 줄 아는 나이 드신 분들이 많지만 도시에는 러시아어만 할 줄 아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카자흐스탄이 예전에 소비에트 연방국이었기에 러시아어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대통령은 독립 이후에 자국민 중심주의 정책을 펴며, 카작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우대하는 정책을 폈지만 아직까지도 카작어가 제대로 정착되진 않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상황이니 학생들도 “카작어를 공부하기보다 러시아어를 공부해야 하지 않아요.”라고 의견을 제시했던 것이다. 그런 의견이 충분히 타당하지만, 점차 카자흐스탄에서 카작어가 중요해지는 만큼 간단히 생각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단순한 실용적인 의미로 카작어보다 러시아어를 공부해야 한다는 말은 어폐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와 같은 논리라면 ‘러시아어를 공부하기보다 영어를 공부해야 하지 않아요’라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제기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카작어를 실용차원, 현실적인 요구차원에서 배울 생각을 하지 않았듯, 이 문제 또한 그와 같은 선상에서 생각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카작어는 우리에게 전혀 낯선 언어였고, 그래서 새로운 마음으로 배울 수 있던 언어였다. 그건 필요나 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끼어들 틈이 없는 ‘낯선 세계와의 조우’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 마음 그대로 낯선 세계를 탐험하듯 카작어를 공부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알틴 에멜 국립공원 여행에 대해선 이미 6월 29일에 쓴 여행기에서 의견을 밝혔으므로, 상술하지 않겠다. 단지 짧은 시간의 체험만을 위해 우리가 그곳에 간 것은 아니다. 여행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 중요하며, 그 과정의 모든 체험이 여행을 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홈스테이 하는 집의 상황, 학생의 성격, 그리고 특이사항을 자세히 조사하여 파트너를 정할 때 미리 단재학생에게 알려줘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어떤 마음에서 그런 말을 한 것인지 충분히 이해한다. 이상한 사람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는 불상사는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철저한 조사는 실제적으로 불가능하고 의미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게 각 학교의 이름을 걸고 추진하는 프로젝트이니만큼 문제가 있는 학생이나 그런 집을 선정하지 않을 거라는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신뢰가 없으면 아예 이런 프로젝트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작년에 카작 아이들이 한국에 올 때에도 그런 신뢰감으로 우리 학생들의 자세한 신상명세나 특이사항을 그쪽에 전달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더욱이 모든 것들이 다 밝혀져 있으면, 오히려 사람에 대한 편견이 생겨 관계를 왜곡시킬 우려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걸 비밀에 붙여놓고 진행하자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가장 기본적인 사항은 서로 교환하고 알려주되, 너무 디테일한 것까지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