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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an 06. 2019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2013년 7월 5일(금)

목요일 저녁에 열기 가득했던 평가회를 마치고 카자흐스탄에서의 마지막 밤이니만큼 잘 사람은 자고 놀 사람은 놀 수 있도록 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설마 이렇게 말한다고 아이들이 밤을 새겠어?’하는 의구심이 있었다. 공통된 주제나 서로의 의견이 상충되는 얘깃거리가 없으면 밤을 새며 이야기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마피아’ 같은 게임을 하며 밤새 놀 수도 있지만, 게임은 많은 사람이 함께 해야 재밌는데 피곤해하는 아이들도 있어서 장시간동안 게임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적당히 얘기하다가 2~3시쯤 모두 자겠거니 하는 생각을 하며 내 방으로 들어갔다.                




세상에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다니

     

방엔 큰 창문이 있고 그 창문으론 ‘아바이Абай 도로’를 내다 볼 수 있다. 2주 만에 보는 광경이었지만, 늘 보아오던 광경처럼 친숙하게 느껴졌다. 알마티 도로에서는 과속을 하는 차량을 쉽게 볼 수 있다. 유목민이었던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말을 타고 달리던 습관대로 자동차를 몰기 때문이란다. 새벽이 가까워지면서 차 통행량이 줄었기 때문인지 과속하는 차량의 굉음은 더 심하게 들렸다. 하지만 이 또한 마지막 경험이다. 침대에 누워 자동차 소리와 간혹 들리는 아이들의 이야기 소리를 들으며 서서히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아침 7시 정도 되었나 보다. 당연히 평소와 같이 아무 생각 없이 화장실에 가려고 방문을 열던 찰나,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을 보고야 말았다. 비몽사몽非夢似夢이었기 때문에 ‘이건 꿈이겠지’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과연 어떤 광경이었기에 이렇게 오버를 하냐고? 그건 다름 아닌, 학생 네 명(이향, 주원, 규혁, 혜린)이서 밤을 꼬박 새고 이야기를 나누는 광경이었다. 그 광경이야말로 카자흐스탄의 이국적인 모습만큼이나 이색적인 광경으로 비쳐졌다.                



▲ 교육원에서 보이는 아바이도로.




이야기할 내용은 과정 속에 만들어진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밤새도록 이야기를 할 사람이 있었고, 누구 하나 그 얘기를 ‘쓸데없다’거나 ‘지루하다’고 하지 않았다는 게 중요하다. 그건 이야기를 함께 나눌 사람이 모일 때 이야기의 소재가 끊임없이 생성된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보통은 ‘서로 이야기할 것이 있어서 만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우린 누군가를 만나려 할 때, ‘이야기할 게 있어. 그러니 만나자’라고 만남을 제안하는 걸 거다. 하지만 실제 그런 식으로 사람을 만났을지라도 막상 현장에서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들은 준비해간 이야기가 아닐 확률이 높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이야기는 사람과의 마주침이란 미세한 어긋남을 통해 변주되고 생성되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실제론 ‘만나자, 그러면 이야기할 것이 생겨날 거야.’라고 만남을 제안하는 걸 거다.           



당신이 이야기한 것은 ‘당신이 이야기하려고 준비한 것’도 아니고 ‘듣는 사람이 듣고 싶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라 당신이 “이 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게 아닐까”란 상상으로 만든 이야기인 것입니다. 기묘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야기를 마지막까지 이끈 것은 대화에 참여한 두 당사자 중 그 어느 쪽도 아니고 그렇다고 ‘합작’도 아닙니다.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진심으로 바라보고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대화를 하고 있을 때 거기서 말을 하고 있는 것은 둘 중 누구도 아닌 그 누군가입니다. 

진정한 대화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제삼자인 것입니다. 대화할 때 제삼자가 말하기 시작하는 순간이 바로 대화가 가장 뜨거울 때입니다말할 생각도 없던 이야기들이 끝없이 분출되는 듯한내 것이 아닌 것 같으면서도 처음부터 형태를 갖춘 내 생각’ 같은 미묘한 맛을 풍기는 말이 그 순간에는 넘쳐 나옵니다. 그런 말이 불쑥불쑥 튀어나올 때 우리는 ‘자신이 정말로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강조-필자)

- 우치다 타츠루, 『스승은 있다』, 민들레 출판사, pp58~59    


      

이 날 아이들도 처음엔 어떤 공통의 주제로 이야기를 했겠지만, 점차 네 명이서 빚어내는 만남의 장에서 우러나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때론 ‘우리가 왜 이런 이야기까지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만한 이야기도 했을 것이다. 그게 바로 만남이 만들어내는 순간의 힘이고 우치다 타츠루 선생의 말마따나 ‘제삼자가 말하기 시작하는 순간’인 것이다.                



▲ 우치다타츠루쌤의 이야기는 일반적인 생각을 많이 무너뜨린다. 그래서 귀 기울여 듣게 된다.




마주침을 통해 이야기가삶이 생성된다

     

나 또한 2006년에 그와 같은 경험을 했었다. 그 전이야 워낙 정해진 대로, 작은 변화도 싫어하며 살던 때라 그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없었지만 2006년은 달랐다. 

처음엔 친구와 종교 이야기를 하기 위해 만났었는데 만남이 잦아지면 잦아질수록 우리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면으로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 우주에 대한 이야기, 진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 등 그 전에는 전혀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들을 그 친구와는 스스럼없이 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그런 이야기를 할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그 친구와의 마주침으로 생각도 해보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이다. 지금도 확신하고 있지만, 그 때의 이야기는 더 너른 세상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 친구와는 지금도 가끔 현실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건 회피가 아닌, 현실에 치이며 살지 않고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고자 하는 적극성이 담긴 마음인 것이다. 

이처럼 네 명의 아이들도 이날 밤새도록 ‘제삼자가 말하기 시작하는 순간’을 느꼈을 것이다. 아마도 어둔 하늘이 서서히 밝아오는 광경을 보며 깜짝 놀라지 않았을까.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아침을 맞이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 함께 둘러 앉아 밥 먹을 때도 이야기를 참 많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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