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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Sep 28. 2016

민들레 읽기 모임엔 따뜻함이 있다

2015 여름 민들레 1박2일 모임 1 (15.08.20~21)

겨울에 했던 1박2일 모임은 무려 3년 만에 찾아간 것임에도, 늘 연락하며 지내오던 사람들이 모인 것처럼 포근했고, 정겨웠다. 밤 8시부터 새벽 4시까지 한바탕 이어진 수다 삼매경은 흘러가는 시간을 아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흘러가는 시간이 이토록 아깝게 느껴진 건,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아마도 겨울 모임에 이어 자연스럽게 여름 모임까지 참여하게 된 데엔 겨울모임의 여운이 길게 남아서 였으리라. 말과 말이 섞이기도 하고 부딪히기도 하며 시간을 메워간다. 그렇지만 여기엔 ‘말을 조리 있게 해야 한다’거나, ‘말을 많이 해야 한다’는 부담 같은 것을 느낄 필요는 없다. 그저 어떤 말들이 흘러 다니며 그게 어떤 감상을 자아내는지, 그리고 그 말엔 어떤 정감이 담겨 있는지 느끼기만 하면 된다. 그러니 마음을 편안히 하고 그 흐름에 몸을 맡기면 된다.                



▲ 겨울 모임은 이야기의 여운, 만남의 그리움을 남겼다.




말을 잘 못해도아는 게 없어도 그대 그대로 오시오 

    

물론 2012년에 민들레 읽기 모임에 처음 참여할 때만 해도 부담감이 컸던 게 사실이다. 말이 많이 하거나 잘 하지 못하는 성격 탓에, 무언가를 말해야 하는 모임이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더욱이 예전부터 봐와서 친한 관계도 아니고 무언가 공감대도 있는 사이도 아니니, 그런 부담은 더욱 가중됐다. 그래서 그 당시엔 어떻게든 쥐어짜듯 말을 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하지만 그 후로 3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나름 편해진 사이가 되면서 그런 부담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곳은 나의 지식을 뽐내는 자리도 아니고, 무언가 있어 보여야 하는 자리도 아닌 그저 날 것 그대로, 어설픈 그대로의 나를 보여줘도 전혀 흠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 2012년 모임 때만 해도 어색하고 뭔가 그럴 듯하게 말해야 할 것만 같은 부담감이 있었다.




민들레 읽기모임에 오면 제삼자가 말하는 순간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 덧붙여 2012년부터 책과 강연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사사를 받고 있는 우치다 타츠루內田樹(1950~) 선생의 말이 부담감을 내려놓는데 일조했다. 그럼 우치다 쌤의 말을 들어보자.           



이야기를 마지막까지 이끈 것은 대화에 참여한 두 당사자 중 그 어느 쪽도 아니고 그렇다고 ‘합작’도 아닙니다.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진심으로 바라보고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대화를 하고 있을 때 거기서 말을 하고 있는 것은 둘 중 누구도 아닌 그 누군가입니다. 

진정한 대화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제삼자인 것입니다. 대화할 때 제삼자가 말하기 시작하는 순간이 바로 대화가 가장 뜨거울 때입니다. 말할 생각도 없던 이야기들이 끝없이 분출되는 듯한, 내 것이 아닌 것 같으면서도 처음부터 형태를 갖춘 ‘내 생각’ 같은 미묘한 맛을 풍기는 말이 그 순간에는 넘쳐 나옵니다. 그런 말이 불쑥불쑥 튀어나올 때 우리는 ‘자신이 정말로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우치다 타츠루 저, 박동섭 역, 민들레 출판사, 『스승은 있다』, pp58~59     


     

이 글을 처음 읽었을 땐, ‘이게 말이여, 막걸리여’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건 조주趙州(778~897) 선사의 ‘차 한 잔 마시다 가시오’라는 얼토당토 않는 선문답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으니 말이다. 지금까지는 말하고 싶은 게 있기에 대화가 된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니 민들레 모임에 참석할 때도 ‘뭔가 할 말이 있어야 돼’라는 부담감을 가졌던 거고, 어떻게든 이야기 소재를 찾으려 노력했던 거다. 



▲ 비공식 제자지만, 우치다쌤의 당연함을 전복시키는 말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우치다 쌤은 “이야기를 마지막까지 이끈 것은 대화에 참여한 두 당사자 중 그 어느 쪽도 아니고 그렇다고 ‘합작’도 아닙니다.”라고 명확히 밝히며, “진정한 대화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제삼자인 것입니다.”라고 선언한다. 그 말은 설령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나누었다 할지라도, 어느 순간부터는 나도 너도 아닌 제삼자가 되어 말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너무도 알쏭달쏭한 말이라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예전에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예전에 친구와 밤을 새면서 ‘인생이 뭔지?’, ‘우주는 뭔지?’, ‘기독교란 뭔지?’에 대해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친구의 생각을 반박하기 위해 여러 자료를 찾고 열심히 공부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준비해온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흘러가더라. 정말로 그 순간 우리의 대화는 당신의 밤보다 뜨거웠을 정도였다. 아마도 우치다쌤이 말하는 ‘제삼자가 말한다’는 것은 이걸 말하는 게 아닐까. 



▲  그 친구와 작년 여름에도 밤새도록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흑천에서 수없이 떠오른 별들을 보며 제삼자의 시간을 보내다.



그렇다면 민들레 모임에서도 내 생각이 먼저 앞서서 주장하고 관철하려 할 게 아니라, 제삼자가 말하게만 하면 된다. 그럴 때 열띤 대화의 장이 펼쳐질 테니 말이다. 그런 생각으로 민들레 모임에 참여하게 되니, 마음은 한결 편해졌고 대화의 열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겨울 모임에 이어 여름 모임까지 참여할 수 있었다.                



▲ 참새가 어찌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랴.




따스한 사람들이 나눈 수다 속으로

     

2015년의 여름은 유난히도 덥고 엄청 습했다. 하지만 그렇게 맹렬하던 더위도 지금은 한풀 꺾여 아침저녁으론 풀벌레 소리가 들리며 이불도 없이 그냥 자면 좀 춥다고 느껴질 정도다. 『노자老子』의 ‘회오리바람은 아침 내내 불지 못하며, 소나기는 종일토록 내리지 않는다(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라는 말처럼 맹렬한 것일수록 오래 지속되기는 어렵다. 한 때의 열정, 한 순간의 생각 있는 삶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누구나 일상의 단조로움을 깨뜨리고 싶은 욕망이 있기에 한 때의 치기로, 한 때의 정열로, 한 때의 반항으로 ‘~인 척’하는 건 쉬우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느냐다. 



▲ 작년 여름에 참가한 교사 신뢰 서클을 하던 중에 소나기가 내렸는데 채 20분을 넘기지 못하고 그쳤다.



매주 수요일마다 진행된 『민들레』 읽기모임은 어찌 보면 그 중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이곳을 찾아오기까지 개인의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겠지만, 어찌 되었든 ‘일반적인 흐름’을 벗어나 ‘나만의 흐름’을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 발걸음을 옮기게 만든 주요 요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것이든 시간이 지나면 무색해지고, 그 열정은 한풀 꺾이게 마련이다. 흔히 하는 말처럼 ‘그 땐 그랬지’ 정도의 무용담武勇談이 되어버리고 ‘그렇게 아등바등해봤자, 세상은 바뀌지 않아’라는 무용론無用論으로 흐른다. 이럴 때 한풀 꺾이지 않도록 그때의 마음을 소중히 간직하고 ‘나만의 흐름’을 만들 필요가 있다. 



▲ [민들레]가 계기를 마련해줬는데, 이젠 그걸 이어가는 것은 각자의 노력에 달렸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진행된 ‘1박2일 모임’은 모르긴 몰라도 ‘초심을 지키려는 애씀’이지 않았을까. 격월간지『민들레』가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기회를 줬지만, 각자 하는 일도 다르고 서로의 생활이 있다 보니 그걸 지속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렇게 모이고 함께 밤을 새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유는 내면에 ‘따뜻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건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회오리바람’이나 ‘소나기’와 같이 한 순간의 맹렬한 ‘끓어오름’이 아니라, 사색의 깊이가 더해지고 서로를 존중하는 데서 우러난 ‘따스해짐’이라 해야 맞다. 

과연 이 모임엔 어떤 따스함이 있는지, 그리고 그런 따스함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지 이 후기를 통해 지금부터 하나하나 알아보도록 하자(여담이지만, 이 기록은 어찌 되었든 나의 관점에서 재해석된 내용이기 때문에 사실의 왜곡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그 분위기와 정감을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모임에 참여하는 게 최고~)



▲ 모임 속으로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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