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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Nov 23. 2015

장자 같던 사람들을 만나다

『송곳』 북콘서트 - 북콘서트 후기

2015년 5월 19일 화요일에 창비사에서 『송곳』을 3권으로 완결 지으며 북콘서트가 열렸다. 최규석 작가에 대해서는 『지금은 없는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되었고, 『대한민국 원주민』을 통해 독특하면서도 남다른 세계관에 빠졌으며, 『송곳』을 보며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고 있었던 터라, 고민하고 자실 것도 없이 신청을 하게 되었다.                




배부른 돼지가 되는 방법   

  

북콘서트가 시작하기 전에 잠깐 적어놨던 소감을 함께 보며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기로 하자.           



오늘은 『송곳』 작가 최규석씨와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초대글을 봤을 때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찌 되었든 막상 홍대까지 오려고만 하면 귀차니즘이 발동하곤 한다. 먼 곳을 떠나듯 가기 싫은 마음이 파도를 치니 말이다. 그런 아슬아슬한 유혹을 뿌리치고 이곳에 왔다.

『송곳』을 볼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지며, ‘배부른 돼지’로 사는 나를 되돌아보게 되곤 했는데, 이곳에서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그와 같은 뜨거움을 느낄 수 있을까?   


        

강동에서 마포로 가는 길은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다. 더욱이 시간 내어서 찾아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막상 학교가 끝나고 집에 와서 쉬고 있노라면, 그냥 그대로 눌러 있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쉬고 싶은 마음이야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단지 잠시 쉬고 싶다는 정도의 생각이 아니라 ‘그냥 이대로’를 외치며 무한정 편하게 있고 싶은 마음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억지스럽게도 ‘눌러 있고 싶다’라는 단어를 쓴 것이다. 위의 소감에서도 썼다시피 난 이걸 ‘배부른 돼지’라고 표현한 것이다.

현실에 안주하고 싶고, 어느 순간엔 ‘지금 이대로만’이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마련이다. 그 때 하는 행위란 무언가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려 하기보다, 세상이 원하고, 세상이 규정 지어놓은 틀 안에서 살려 한다. 그렇게 누구나 ‘꼰대’가 되어 가는 것이고, 삶의 충만한 기쁨을 잃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배고픈 건빵’이 되길 희망하지만, 현실적인 유혹들은 수시로 나를 감싸고돌며 ‘무에 그리 애쓰냐?’고 나무라기도 한다(뜨거운 사람들의 이야기보기).                



▲ 어떤 삶에 대한 열정이라 하면 난 백기완 선생님을 떠오른다.




배부른 돼지에 대한 장자의 가르침  

   

그런데 ‘배부른 돼지’가 왜 되어선 안 될까? 아래에 인용한 글을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어느 임금이 장자를 초빙하려 하자, 장자는 사신에게 “당신은 희생물로 쓰이는 소를 본 적이 있습니까? 비단옷을 입고 좋은 풀과 좋은 콩을 먹습니다. 그러다 이내 태묘에 들어갈 때에 이르러 외로운 송아지가 되려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장자』「열어구」

或聘於莊子. 莊子應其使曰“子見夫犧牛乎? 衣以文繡, 食以芻菽, 及其牽而入於大廟, 雖欲爲孤犢, 其可得乎!”  『莊子』「列禦寇」


          

왕은 장자를 자문위원으로 초빙하기 위해 사신을 보냈다. 장자가 활동하던 당시는 중국이 소국으로 갈기갈기 나뉘어져 이권다툼을 하였으며, 국익을 위해서라면 사람 목숨도 파리 목숨으로 여기던 시대였다. 그래서 그 당시 유학자들은 힘으로 정치를 하려하는 패도정치覇道政治가 아닌 진심으로 정치를 하려하는 인도정치仁道政治를 주장했던 것이다(맹자). 그런 사상을 지녔으니 인도를 행하려는 왕에게 나아가 정치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패도를 행하려는 왕에게 나아가 정치하는 것은 극도로 꺼렸다.

하지만 장자는 그런 유학자들과 아예 다른 견해를 표출한다. 결국 그 당시의 정치는 백성을 궁핍하게 하며 정치세력의 기득권만을 위한 것이기에 그런 부도덕한 곳엔 일절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을 등용하겠다는 왕의 의도를 알아챘던 것이다. 그건 어디까지나 이미지 정치의 일환이었을 뿐, 장자의 말을 정치에 반영하고자 하는 노력은 아니라는 거다.

그래서 장자는 사신의 권유를 거절하며 이런 상황을 ‘희생 제물이 되어 끌려가는 소’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소에게 좋은 음식을 주는 건, 진정 소를 위해 그런 게 아니다. 결국 소를 살찌워 윤기 좔좔 흐르게 만들어 뭔가 그럴 듯해 보이는 제물로 쓰기 위해서다. 이 비유를 통해 ‘희생제물=나 자신’이라는 걸 완곡한 어조로 사신에게 알렸다.                



▲ 장자의 외침과 이들의 피켓 글귀가 맞닿아 있다.





장자와 같던 사람들을 만나다 

    

‘배부른 돼지’가 된다는 건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결국 자신을 살찌우고 행동을 굼뜨게 만들어 모든 가능성을 완벽하게 거세하는 것이다. 그럴 때 누구를 원망하며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배부른 돼지가 되느니 배고픈 건빵이 낫다’고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북콘서트장에서 그런 생각을 굳힐 수 있었고, 어떤 뜨거움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북콘서트를 마치고 나온다. 변영주 감독의 질문처럼 ‘500일’의 사투는 자신을 피폐하게 할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 그리고 이 사회에 대해 환멸을 느끼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버틸 수 있었던 것, 그럼에도 사람들을 믿고 함께 갈 수 있었던 것, 그럼에도 이렇게 사람들 앞에 나와 다시 웃으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에선 어떤 삶의 한복판을 지난 사람의 열기가 느껴졌다.

더욱이 지금 우리 사회는 ‘노조=빨갱이’로 생각하고, ‘노조활동=회사를 파괴하는 일’로 받아들이며, ‘노조가 하는 일=남의 재산을 정당한 노동 없이 꿀꺽하는 일’이라 생각하는 사회다. 그런 사회에서 500여일간을 싸운 사람들이나, 그걸 다시 만화로 그려 많은 사람들에게 감흥을 주고 있는 사람들이나 대단하긴 매한가지다.

역시 최규석의 작품으로 볼 때와, 직접 만났을 때의 이미지가 비슷했다. ‘뚝심 있다’라는 표현보다 ‘생각 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고, 그건 그의 작품에서 가감 없이 잘 드러난다.

하종강 선생은 이 콘서트를 통해 처음 알게 된 사람이다. 하지만 이 분은 ‘노동에 대해 알고 싶거든 이 분을 찾으라’라고 할 수 있는 분이다. 구고신이란 캐릭터에 가장 많이 반영된 이미지인 셈이다. 지금 성공회대에서 노동학개론과 같은 강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 시간이 된다면 꼭 배우고 싶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우린 평생 노동을 하며 살지만, 노동이 뭔지 모른다?’는 아이러니가 갑자기 생각난다.

김경옥 위원장의 인상 자체는 참으로 부드러웠고 중년 남성의 멋이 느껴졌다. 500일의 사투를 몸으로 감내하기엔 여리여리한 인상이었기에 ‘정말 그랬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누구든 투사가 되려는 사람은 없다, 상황과 사회가 투사를 만들 뿐’이라는 것을 그 분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변영주 감독이야말로 분위기에 가장 잘 어울린다. 내공이 있는 분이기도 하고, 그 무대에서 기가 눌리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판을 뒤흔드는 질문을 하여 답변자의 진지함을 해체시켜 버렸다. 어찌 보면 ‘잰체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진실에서 먼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변영주 감독은 그런 것들을 무너뜨리고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니, 청객 입장에선 그들만의 격식 있는 대화를 훔쳐보는 불쾌감이 아니라, 그들의 대화에 함께 껴서 아줌마 수다를 듣는 듯한 편한 기분이 들었다. 역시 믿고 들을 수 있는 변영주 감독님이다. 사족을 달자면,『화차』 이후로 영화가 나오지 않았기에, 그녀의 차기작은 정말 기대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2시간 여의 시간이 끝나고 돌아왔다. 홍대까지 찾아갈 때만 해도 갈까, 말까를 고민하긴 했지만 ‘송곳’의 탄생 비화부터 실제 파업 현장의 이야기를 들으니, 관념이 현실로 가까이 다가온 느낌이다. 현실의 치열함, 그걸 배우고 간다.



 ▲ 5월의 어느 날에 있었던 북 콘서트. 아무쪼록 [송곳]이란 작품이 잘 완결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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