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지를 찾아야 하는데 어느 길로 가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네이버지도를 켜고 목적지를 입력했다. 친절하게 방향을 알려주는 지도를 따라서 목적지로 한 발 한 발 걸어갔다. 그나마 버스를 타고 와서 여기서부터 도착지는 30분 안에 갈 수 있다. 목적지는 높은 곳에 있기에 계속 오르막길로 올라가야 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오르막길과 양 옆으로 보이는 경사진 곳에 위치한 수많은 집과 차들을 보며
'겨울에 다니기 힘들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길을 걸었다.
드디어 오르막길 끝에 아스팔트 도로가 나왔다. 도로를 건너자 100 계단은 돼 보이는 또 다른 오르막길 계단이 나타났다. 그곳을 올라가야 한다.
'계단으로 절대 못 가!!!'
다행히 바로 옆에 엘리베이터가 있다.
'맛있는 커피를 마시려면 계단을 올라야 하지만 계단으로 가긴 무리야.'
난 누군가 타서 곧 닫히려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기 위해 뛰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평지길을 조금 걸으니 최종 목적지로 올라가는 입구가 나타났다.
'이제 시작이군. 여기부터 열심히 걸어야겠어. 맛있는 커피를 먹기 위해'
난 열심히 걸었다. 오르막길을 오르고 또 올랐다. 가는 길에 도로 공사하는 인부들이 보였다. 버스도 2번 지나갔다. 오르고 올라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목적지는 바로 <남산타워!!!>
도착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내가 상상한 도착 후 모습은 땀을 뻘뻘 흘리고 목이 말라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요즘 에어로빅을 하면서 체력이 좋아졌나 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걸어올걸 그랬나.'
하지만 또 그러라고 하면 자신이 없다. 또 남산은 이름만 산이지 언덕에 가깝다. 남산도서관에서 올라오는데 30분도 안 걸린다. 그렇게 어렵지 않다.
내 목표는 몸에 땀을 뻘뻘 흘리며 남산타워에서 시원하게 커피를 마시는 것이었다. 그런데 체력이 좋아진 것도 있고 절반은 버스를 타고 와서 그런가 땀도 거의 안 났다.
'실패!!!'
난 결국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마시지 못했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도 부끄럽다. 이 정도 노력해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라니. 히말라야는 못 가더라도도 한라산은 가면서 이런 글을 써야 하는 거 아닌가. 여기저기서 헛웃음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정말 히말라야 꼭대기에서 마시는 커피맛은 어떨까? 궁금해진다.
과학을 잘 모르는데 알고 보면 온도가 너무 낮아서 뜨거운 물이 나오자마자 얼수도 있을 것이고, 뜨거운 물을 담아 가는 물통이 압력이 높아짐에 따라 터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히말라야 꼭대기에선 커피를 마시지 못할 수도 있다. 글을 쓰다 보니 과학적으로 가능한지 궁금해진다.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출근한 남편은 나에게 카톡을 보냈다. 유튜브 쇼츠 영상인데 새해부터 보낸 걸 보면 그동안 나한테 하고 싶던 말을 참고 참다가 보낸듯하다. 남편은 말을 할 때 한참 고민하다 나중에 말하는 성격이다.
영상 제목은 <배우자의 충성심을 높이는 방법이 궁금합니다.>이다. 영상이 짧기도 해서 금방 봤다. 주된 내용은 남편이 아내한테 듣고 싶은 말에 대한 것이다. 보니 결국 자기한테 그렇게 해달라는 것이다.
바로 카톡으로 답장을 보냈다.
"내가 이런 삶을 살게 해 줘서 너무 고마워"
그러자 바로 답장이 왔다.
"직접 말로 해줘야지. 감동이 없잖아."
"알았어."
저녁에 퇴근하고 온 남편에게
"내가 이런 삶을 살게 해 줘서 너무 고마워"라고 기계처럼 말했다. 남편은
"됐어."
며칠 후 퇴근한 남편은 저녁식사를 준비하느라 정신없는 나에게 말했다.
"나도 사랑받고 싶어."
'이건 뭔 소리래.' 어처구니가 없는 나는
"아니. 나랑 하은이로 부족한 거야? 다른 여자 필요해?"라고 말했다. 남편은
"그게 아니라 난 내가 퇴근하고 오면 날 안아줬으면 좋겠어. 들어와도 잘 쳐다보지도 않고."
보통 남편이 올 시간에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이건 내가 남편을 사랑하기에 하는 행동이다. 퇴근하고 온 남편이 배 고플까 봐 저녁을 준비하는 것. 그런데 아이가 어려서 요리할 때마다 옆에 딱 붙어서 방해한다.
"엄마 놀아줘, 엄마 나도 요리하고 싶어, 엄마 안아줘" 등. 가끔 이럴땐 요리하기가 힘들 때도 많다. 그러다 보면 짜증이 나서 아이와 싸우고 있는데 남편이 꼭 이즈음 들어온다. 그땐 남편에게 인사라도 제대로 하기 힘들 때도 있다. 나름 나 역시 최선을 다하는데 남편은 다른 것을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 남편이 퇴근하고 들어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문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남편을 안아줬다.
"고생했어."
이렇게 남편을 안아주면 옆에서 보고 있던 하은이도 한마디 한다.
"아빠 나도 안아줘" 그러면서 팔을 쭉 내민다.
오늘 맛있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남산에 걸어오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다.
어쩌면 남편이 나에게 퇴근 후 안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하루종일 힘들게 일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바라는 게 아니었을까?'
힘들게 산 꼭대기에 올라갔는데 마실 물이나 음료가 없다면 얼마나 허탈할까?
그런 기분인 걸까? 누군가는 남편이 인정받고 싶어 하는 거라고 했다.
어쨌든 난 그날 이후 남편이 들어오면 충실하게 안아주고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있다.
남편은 꽤 만족스러운 눈치다. 최근엔 내 신발이 낡았다며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새 신발을 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