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정 Sep 26. 2024

4살 딸아이의 연애

36개월 아이 이야기

36개월이 된 딸아이는 어린이집을 좋아하며 연장반에도 잘 다닌다.

"하은이 어떻게 키우셨어요?"

요즘 일을 하게 되면서 연장반에 맡기고 있는데 아이가 적응을 잘한다며 선생님이 이런 질문을 하셨다.

사실 하은이는 내가 어떻게 키웠다기보다는 고맙게도 날 때부터 많이 안 울고 어린이집 적응을 잘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 몸 여기저기 누군가 할퀸듯한 자국이 이마, 발목, 팔 등 여기저기 보였다. 놀란 나는

"하은아. 이거 누가 그랬어?"라고 물었다.

아이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는 조그만 목소리로

"몰라" 그런다.

더욱 조바심이 난 나는

"이거 누가 그런지 몰라? 친구가 할퀸 거 같은데 누가 그랬어?"라며 다그쳐 물었다.

한참 말을 안 하고 있던 아이가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준후가 그랬어."

"준후가? 진짜?"

"응"

"준후가 왜 그랬는데? 놀다가?"

"응. 노는데 막 쫓아와서 그랬어."

"그럼 '하지 마' 그래야지. 다음부터는 도망가"

"응. 도망갔는데 막 따라와서 그랬어"

"진짜? 선생님한테 말씀드렸어?"

"아니"

"왜 말씀 안 드렸어?"

아이는 대답을 안 했다.

준후 엄마는 사교적이고 성격이 참 좋은 사람이다. 어린이집 하원 시간에 만난 준후 엄마가 놀러 오라고 해서 준후네 집에 놀러 간 적도 있다. 집에 가보니 넓은 거실이 키즈카페에서 보지도 못한 장난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집에 키즈카페를 꾸미셨네요"

"네. 아이 돌즈음 키즈카페 갔는데 수족구에 걸려서 집에 만들었어요."

준후 엄마는 처음 보는 신기한 장난감 용도를 물어보면 친절히 대답해 주었다. 저녁 시간이 되자 남편이 집에 늦게 온다며 하은이 저녁까지 차려줬다.

"전 하은이 키우다 보면 화가 날 때가 많아요. 저번에는 옷 안 입고 고집 피워서 막 소리 지르고 그랬어요." 그러자

"저는 아이한테 화를 내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준후 엄마. 화를 내지 않고 키우는 게 쉽지 않은데 그런 육아를 하는 분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준후가 할퀴었다는 게 사실 믿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에게

"준후가 왜 그런 거 같아?"라고 물어보니 아이 대답이 아리송하다.

"내가 좋아서 그럴 수도 있고"

"???"


어쨌든 아이 몸이 여기저기 할퀴어 있으니 선생님에게 전화를 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은

"준후가 그럴 아이가 아니에요. 어머니도 육아를 잘하시고요. 그리고 하은이도 누가 할퀴면 바로 저한테 와서 바로 이야기를 하는 아이랍니다."

선생님은 아무래도 믿지 않으시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아이를 보호해야 하니

"선생님. 그럼 준후랑 놀 때 유심히 봐주시겠어요? 그리고 준후랑 좀 분리시켜 주세요. 하은이는 여자아이고 준후보다 키도 작아서 걱정이 돼서요."

"네. 어머니 알겠습니다. 저희가 잘 볼게요"

나도 화가 많이 나서 선생님한테 전화를 드렸지만 선생님과 통화 후 곰곰이 생각해 보니 36개월 아이 말을 100% 다 믿을 수도 없단 생각에 이르렀다.

선생님께 부탁을 드린 후 어린이집 알림장 사진에 하은이와 준후가 같이 있는 사진이 없었다. 아쿠아리움 현장학습 사진에는 아인이와 손을 잡고 다니고 있었다. 선생님이 부탁을 들어주시고 있단 생각에 마음이 안심됐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하은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는데 뜬금없이 아이가 말했다.

"난 준후가 좋아."

'준후가 좋다고? 이게 무슨 말이지?'

순간 아이 말에 약간 혼란스러웠다.

"하은이는 준후가 좋아?"

그러자 아이는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응."

사실 나도 준후나 준후 엄마를 좋아했기에 선생님에게 준후와 분리를 부탁한 게 잘한 일인가 싶기도 했던 터였다.

"준후가 요즘에는 할퀴지 않아?"

"응"

그러고 보니 요즘은 하은이 몸에서 상처를 보지 못했다.

"오늘 준후랑 놀았어?"

"응"

"준후랑 뭐 하면서 놀았어?"

"준후랑 손잡고 도서관에 갔어"

"손잡고? 준후랑 손잡고 다녀?"

"응"

"손은 누가 잡아? 네가 아님 준후가?"

"내가 잡아"

"도서관에서 뭐 했어?"

"책 읽어줬어."

"준후가?"

"아니. 내가 준후한테 읽어줬어"

이럴 수가. 난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둘이 잘 지내는데 내가 괜히 떼 놓은 건가?' 싶기도 했다.

"하은이 그럼 저번 아쿠아리움 갔을 때 아인이랑 손 잡고 다녔잖아. 그때도 준후랑 손잡고 다니고 싶었어?"

"응. 난 준후랑 손잡고 싶었는데 선생님이 아인이랑 다니라고 했어"

'그랬구나. 하은이는 준후를 좋아하고 있었구나.'

그래도 다행히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억지로 떼놓지는 않은 듯했다.


20대 초반 어린이집에서 일한 적이 있는 여동생에게 말하니

"언니. 아이들 말 너무 믿지 말고. 그리고 이런 일로 너무 전화하고 그러면 선생님들도 힘들어. 그냥 심각한 일 아니면 그냥 넘어가."라고 한다.

하긴 이제 36개월 아이인데 내가 너무 아이 말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아이의 친구 관계까지 개입한 듯하다. 앞으로는 조금 마음을 내려놓아야겠다





이전 27화 나의 육아는 긍정훈육 전과 후로 나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