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첫 방송 녹화일이 잡히다.

첫 방송 2주 전

by 하정

수요일 오후 3시 반. 우리는 용산 fm 사무실에서 오래간만에 만났다. 수료를 하고 한 달 만이다. 20대, 30대, 40대, 50대 여자 한 명씩 네모난 테이블 한 면씩 차지하고 앉아 방송을 어떻게 할지 의논이 시작됐다.


국장님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셨다.

"셋이 방송하는 건 어렵지 않은데 문제는 주제를 어떻게 연결하냐예요. 각자 하려는 주제가 다르잖아요. 반려견, 육아, 문화정보인데 이걸 하나의 방송으로 묶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내가 답했다.

"옴니버스식으로 구성하면 어떨까요? 1부는 반려견 이야기, 2부는 육아, 3부는 공연정보 어때요?"

"그렇게 하기엔 너무 무리가 있어요."

"그런데 꼭 주제가 연결돼야 하나요? 기존에 하던 방식을 꼭 고수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저희가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건 어떤지요."


오랜 방송을 제작하신 국장님은 내 말에 어이가 없으신지 하하 웃으셨다. 아마 말은 안 하셔도 경험도 없고 초짜인 내게 방송 주제가 있어야 하는 걸 이해시키는 게 쉽지 않으신 듯했다.

"그래요. 나쁘지 않아요. 그런데 주제가 없으면 청취자 입장에서도 무슨 내용인가 혼란스럽기도 하고 배로 치면 목적지가 없이 산으로 가는 거라고 해야 하나?"


대화를 듣고 있던 30대 N이 이야기를 듣다 의견을 냈다.

"전 문화회관에서 일하면서 공연 보러 오신 분들한테 다양한 질문을 받는데요. 어떤 질문을 하시냐면 '공연 끝나고 인근에 가볼 만한 곳 있나요?', 아기나 반려견을 데리고 오신 분들은 '공연 끝나고 아기(또는 반려견) 데리고 갈만한 식당 좋은데 있나요?' 하세요. 그런데 제가 아는 게 없어서 답변을 잘 못 드렸어요. 저희 방송도 이런 내용을 잘 섞어서 하면 좋을 거 같아요."


들어보니 반려견, 육아, 문화공연이 연관된다. 국장님이

"오. 이런 거 괜찮네요. 뭔가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연결하면 좋을 것 같아요."


나도 갑자기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그러면 한주는 반려견에 대해, 한주는 육아, 한주는 문화공연 이런 식으로 진행하는 건 어때요? 셋이 하니깐 한 명이 할 때는 다른 두 명이 받쳐주고 이런 식으로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매주 방송을 준비해야 하는 부담도 덜고 무슨 일 있을 때 빠질 수도 있고요. 너무 숙제하듯이 하면 힘들 것 같아요."


"네. 그것도 괜찮은 의견인데 세 개의 주제를 하나로 연결할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그럼 먼저 방송 제목부터 정해볼까요?" 국장님이 말씀하셨다.


한참을 생각하다 20대 막내인 Y가 한마디 했다. Y는 이전부터 제목 아이디어를 잘 냈다.

"세 여자들의 수다 어때요?"

"괜찮네요."

우리 이야기를 듣던 국장님이 갑자기 소리치셨다.

"세수다!!!! 세수다 어때요?"

"좋은데요" 우린 다들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했다.

국장님은

"혹시 다른 아이디어 있음 말해봐요."라고 하셨지만 이미 그 제목으로 기운 듯했다.


제목이 정해지니 주제가 따라 나왔다. N이 말했다.

"그러니깐 세 개의 주제에 대해 세 여자가 수다 떠는 방송. 그러면서 정보도 제공하고요."

"맞아요. 예를 들면 공연 정보 제공하면서 공연 끝나고 반려동물이나 아기 데리고 갈만한 곳, 식당도 추천해 주고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제목과 내용이 얼추 정해지자 국장님은 방송기획서 양식을 주셨다.

"여기에 방송 내용에 대해 작성해 봐요."


기획서에는 방송 제목, 진행자, 프로듀서, 코너 내용 등 작성하게 돼 있었다. 우리 셋은 의견을 서로 나누며 기획서를 작성해 나갔다. 그런데 이미 시간이 저녁 6시가 다 돼 가고 있었다.

"국장님. 그런데 6시에는 가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내가 말했다.

"전 약속 있어서 6시에 나가야 해요." 국장님이 답했다.

"저희도 같이 나가요." 내가 답했다.

"아니요. 여러분은 기획서 다 작성하고 가셔야 돼요. 끝나면 불 끄고 문만 닫아주면 돼요." 국장님이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헉. 다 하고 가라고요? 국장님 무서운(?) 사람이네요." 난 웃으면서 농담으로 한마디 던졌다.

국장님도 재미있는지 막 웃으셨다.

"남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든 6시에 끝내겠어요."


우리 셋은 짧은 시간에 의견을 나누며 기획서를 열심히 작성했다. N이 말했다.

"제 생각인데요. 1부에 임팩트 있게 인터뷰나, 동영상, 사진 등 뭔가 보여주는 방송을 하고 2부에는 우리 셋이 수다 떠는 방식으로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괜찮네요. 처음에 재미가 없으면 사람들이 안 보니깐 그렇게 구성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셋이 각자 작성한 기획서를 내가 통합해서 국장님에게 메일로 보내기로 했다. 6시에 다들 사무실 밖으로 나와 빠르게 인사하고 각자의 길을 갔다.


다음날 3장의 기획서를 통합해 한 장으로 완성해서 카톡 단체방과 국장님 이메일로 전송했다. 얼마 있다가 N이 우리 얼굴을 딴 방송 인트로용 영상을 만들었다며 카톡방에 올려줬다.


첫 방송은 N이 반려견을 주제로 하기로 했다. 며칠 후 그녀는 방송 대본 가안을 카톡창에 올렸다. 이후 Y가 자신의 의견을 추가해 다시 올렸고 나도 거기에 내 의견을 작성해 다시 올렸다. 이렇게 만들어진 대본에 N이 최종 수정을 하면서 첫 방송 대본이 완성됐다.


카톡창에 국장님이 글을 올리셨다.

"우리 첫 방송 녹화는 언제가 좋을까요? 10월 첫 주 목요일 오전 어때요?"

기존 라디오 방송 수업 시간이었다. N이 답했다.

"죄송해요. 제가 그날은 안될 것 같습니다." 직장을 다니고 있는 그녀는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 10월 10일 화요일 오전은 어때요?"라고 국장님이 다시 글을 올렸다.

"네. 저는 괜찮아요."라고 N이 말했다.

"저도 괜찮습니다." Y가 답했다.

사실 난 매주 화요일 오전에 글쓰기 모임이 있는데 방송 날짜 잡기 어려운 상황에 안된다고 하기가 어려웠다.

"네. 저도 괜찮습니다."

그렇게 10월 10일 화요일 오전에 첫 방송 녹화일이 잡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