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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거니 Dec 07. 2023

사랑이라는 사치

[관계] - 1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8년 조사에 따르면 미혼 남성(20~44세)의 25.8%, 미혼 여성의 31.8%만이 이성 교제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비취업 남성의 이성 교제 비율은 18.1%에 불과했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고 말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대다수의 젊은 세대는 기본적인 삶의 요건조차 충족하지 못한 채 살아갈 뿐이라는 슬픈 결론에 이르게 된다. 적어도 이들에게 있어 사랑이란 꽤 비싼 사치품이다.


물론 사랑이 연인 관계에서만 성립하라는 법은 없다. 누군가는 자기 자신과의 사랑에 빠진다. 그 어느 때보다 자기애가 넘쳐나는 시대다. 이는 흔히 말하는 나르시시즘적 사랑이라기보단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에 가깝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비교할 수 있는 시대다. 상대적 박탈감이 도처에 만연해 있다. 자기애와 자기혐오를 동시에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자신을 가장 내세우는 이들이 실은 가장 깊은 우울감에 빠져있을 수 있다. 이들은 자아를 포장하기 위한 갖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안에서 채워지질 못하니 밖에 뭐라도 덮어야 하는 것이다. 그 포장지가 어떠한 계기로 벗겨지면 내면의 벌건 속살을 드러낸다.


서점에 가면 ‘내가 나라서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는 고백이 넘실거린다. 나를 사랑하는 데 다른 이유는 필요 없으며 그저 나 자신인 것으로 충분하다는 말이다. 이 경우 자기애는 자존감이라는 단어로 대체되어 발현되고는 한다.


물론 자신을 혐오하거나 증오하는 것보다는 사랑하는 게 정신건강에 더 이롭다. 하지만 어쩐지 순환논리에 빠져 있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이는 마치 ‘치킨이 최고의 음식인 이유는, 치킨이 최고의 음식이기 때문이다’라는 주장과 같다.


실은 내가 나라서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나라도 나를 사랑해야 해서 사랑한다. 요즘 들어 새삼 불거져 나오는 자신에 대한 사랑 고백은, 선뜻 사랑해 줄 대상을 만나지 못한 이들이 만들어 낸 방편이다.


자기애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이면서 동시에 외부에서 들어오는 공격을 막기 위한 방어 기제다. 기능과 지위, 선천적 정체성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에서 개인은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단이 필요하다. 비록 인간소외를 겪고 있지만 자기 자신으로부터는 소외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 준다면 구태여 자기애라는 방어막을 칠 이유가 없다. 자신의 개성대로 살아가도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평소에는 나라는 존재를 의식하기 어렵다. 하지만 특정 정체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어떠한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냥 내가 나라는 이유로 좌절을 겪었다면 자신의 존재감이 거치적거린다.


사실 자신을 사랑하는 일에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문제는 자기애 자체가 아니라 자기애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이 사회의 문화인 것을. 사랑할 이를 찾지 못한 이는 자연스레 사랑의 대상을 갈구한다. 사람은 사랑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젊은이들은 왜 사랑할 대상을 찾지 못한 채 떠돌고 있을까? 한 조사에 따르면 현재 이성 교제를 하지 못하는 가장 주요한 이유는 ‘알맞은 상대를 찾지 못해서’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성은 해를 거듭할수록 한층 더 깊어지고 있다. 연애 예능과 데이팅 앱이 넘쳐나는 시대, 현실에서의 사랑은 도리어 빈곤해지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


연애란 냉정하게 말하면 일종의 협상이다. 마치 구직자와 회사가 취업 시장에서 만나 상대방을 평가하듯, 두 사람이 연애 시장에서 만나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진다. 각자가 가진 취향, 외모, 신념, 가치관, 경제 상황, 사소한 습관까지도 결정을 내리는 데 주요한 변수가 된다. 여기에 변덕스레 변하는 내면까지 더해지면 연애는 예측할 수 없는 국면을 맞이한다. 이성과 감성이 모두 개입하니 맞추기가 참 어렵다.


연인 관계에서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마음이 크다 보니 미리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더 깐깐하게 상대방을 평가한다. 외모는 괜찮은데 성격이 별로라면 탈락. 성격은 괜찮은데 직업이 변변찮으면 탈락. 다른 건 다 좋은데 신념이 다르다면 탈락. 그렇게 패자부활전 없는 잔혹한 오디션이 머릿속에서 펼쳐진다.


한 마디로 젊은 세대가 너무 똑똑해진 탓이다. 이제 멋모르고 하는 연애의 시대는 저물었다. 애초에 모든 스펙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선수끼리 포커를 쳐야 한다. 큰 판돈을 딸 것까지도 없다. 크게 잃지 않도록 계속 포기한다. 다이(Die), 다이(Die), 또 다이(Die). 설령 이어지더라도 안심할 수 없다. 계속 지켜봐야 한다. 더 나은 사람이 불현듯 나타날 수도 있으니까.


상대방을 더 면밀히 알고자 하는 태도는 좋다. 위험을 피하려는 태도도 나쁘지 않다. 다만 비유적으로만 쓰이던 연애 ‘시장’이라는 단어가 정말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되어버린 듯한 씁쓸함이 남을 뿐이다.


사람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다. 자기 자신조차도 완벽히 알 수는 없다. 사람은 관계라는 맥락 속에서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좋은 사람이 꼭 좋은 연인이 되지는 않는다. 결국 위험을 무릅쓰고 들판으로 나가야 한다. 연애라는 특수한 관계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감정과 경험이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그대가 잃을 것은 시린 옆구리뿐이고, 얻을 것은 사랑이다. 만국의 솔로들이여 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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