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불안하니까 써보자
큰 결정을 내리기 전 불안함을 떨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쓰는 거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증폭되게끔 내버려 두는 게 아니라 보다 구체적인 형태로 붙잡아 두기 위해서. 불안함은 불확실성에서 온다. 어둠 속에서 도사리고 있는 (또는 있다고 믿는) 막연한 형체같이. 막상 불이 켜지고 모든 게 분명해지면 안심이 된다. 설령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마음의 무게가 덜어진다.
무엇을 쓸지는 저마다의 상황과 성향에 따라 달라진다. 누군가는 세세한 계획표와 일정표를 작성해야 할 수도 있다. 다른 누군가는 몇몇 문장과 키워드를 정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난 후자에 가깝다. 전체적인 방향성을 잡아놓고 흐름에 맞춰 살아간다. 거대한 바위를 만나면 돌아가고, 급류에서는 균형을 잡으려 애쓴다. 닥치면 어떻게든 하게 되어 있다.
퇴사를 하겠다며 당찬 포부를 밝힌지도 세 달이 되었다. 절반의 여정을 지나고 있는 지금, 나에게 질문을 던져보려 한다.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1. 왜 퇴사해?
퇴사를 하기 전이든 후든 언젠가는 대답해야 할 질문이다. 개인적으로 행동 그 자체보다 동기나 이유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 더더욱. 회사에는 '힘들어서 쉬려고요'식의 대답으로도 충분하겠지만, 적어도 나 자신이나 주변 사람에게는 건넬 답변을 준비하려고 한다.
내가 퇴사를 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회사를 다니고 싶지 않아서
몸과 마음을 돌보기 위해서
다른 일을 하려고
열이면 열, 백이면 백, 퇴사 사유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사실 크게 보면 비슷하다. 회사라는 조직이 제공할 수 있는 삶의 의미에는 한계가 있고, 매달 월급을 주는 만큼 대가를 요구한다. 거기에 온갖 인간 군상이 위계질서라는 틀 속에 엮여 있으니.
회사를 다니고 싶지 않다. 회사를 다니고 싶지 않다고 하면 흔히 두 가지 충고가 돌아온다. 참고 버텨라, 그리고 다른 회사도 다 마찬가지다. 이 조언의 맹점은 명확하다. 참고 버텨야만 하는 삶이라면, 어느 회사를 가나 똑같다면, 아예 다른 대안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참고 버틴 끝에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명백한 상황이라면 말이다.
회사를 다니고 싶지 않다 보니 몸과 마음이 축난다. 한 영상에서 '내 몸과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은 내게 맞지 않는 거다'라는 말을 듣고 딱 내 상황이다 싶었다. 아직도 옆구리에 남아있는 대상포진도 그렇고, 집에 오면 기절하듯 쓰러지는 내 모습도 그렇고. 몸은 착실하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내가 듣지 않았을 뿐. 이제 몸과 마음에 조금 더 귀 기울이려고 한다.
그렇게 귀 기울이다 보니 마음 한구석에서 다른 일을 해보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버릴 것도, 포기할 것도 많겠지만 그럴 가치가 있는 다른 일.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 내 에고(Ego)나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참자아를 따르는 일. 이상적인 헛소리에 그치지 않으려면 행동해야 한다. 퇴사는 그 과정에 꼭 필요한 동반자다.
2. 퇴사하기 전까지는 뭐 할 거야?
이유는 알았다. 그럼 무슨 일을 해야 할까? 퇴사라는 하나의 시점을 기준으로 전과 후를 나눴다. 퇴사를 하기 전 회사원으로서 할 일은 무엇이 있을까?
관련해서 영상을 찾아보니 주로 돈이나 경력관리에 대한 조언이 많다.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하거나, 미리 대출을 받거나, 경력 포트폴리오를 작성하는 식이다. 업무 인수인계, 퇴사 통보, 경력증명서 발급 등 회사 내에서 처리할 일도 많다.
모아둔 돈도 얼마간 있고 본가에 들어가는지라 굳이 대출까지 받을 일은 없어 보인다. 퇴사 통보는 한 달 전에 할 예정이고 인수인계나 필요한 서류 수령 같은 작업도 그에 맞춰서 하면 된다. 직장동료와 작별인사도 하고 이사 준비도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새로운 일을 시도해보기, 그리고 하던 일을 꾸준히 하기. 상황이 변한다고 삶이 무너져서는 안 된다. 나만의 루틴으로 끌어가야 한다. 한편으로는 변화에 발맞춰야 한다. 퇴사를 하면 당장 월급도 끊기고 적어도 8시간 이상 내 자유시간이 생긴다. 부족한 돈과 넘쳐나는 시간을 어떻게 다룰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행동해야 한다.
3. 퇴사하고 나서는 뭐 할 거야?
이런 고민은 자연스레 퇴사 이후로 이어진다. 퇴사를 한다고 천지가 개벽하지도 않고 모든 일이 술술 다 풀리는 것도 아니다. 시간은 흐르고 인생은 계속된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환경, 새로운 시간, 새로운 일상에 적응해야 한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휴식이다. 그냥 좀 쉬고 싶다. 모든 불안과 피로감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그렇게 몸과 마음의 건강을 조금씩 찾아오려고 한다. 게으름도 피워보고 평일에 회사를 나가지 않는 짜릿함도 누려보고.
하지만 적어도 두 가지는 쉬지 않으려고 한다. 글쓰기와 운동. 몸과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데는 이만한 게 없다. 불안한 마음도 진정시켜준다. 세상의 잡음에서 조금은 멀어질 수 있으니까. 예민하고 쉽게 피곤해지는 나에게는 꼭 필요하다.
이사를 하는 데다 회사도 다니질 않으니 루틴도 잘 짜야한다. 꼭 상세하게 계획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는 생각해두려고 한다. 모든 일은 닥쳐봐야 안다. 큰 틀만 갖춰놓고 세부적으로는 계속 조정하면 된다.
생활비를 벌 수 있는 방법도 계속 강구해야 한다. 회사를 다니지 않는다면 내가 내 손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 투자를 통해 현금흐름을 만들고 근로소득 외에 수입원을 창출해야 한다. 계속 공부하고 실행해야 한다. 두렵고 불안하지만 이렇게 살아보려고 한다. 써놓고 나니 나름 그럴듯하다. 조금 안심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