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돌고 인생은 변한다
아버지가 퇴직하던 날, 집안 공기는 다소 무겁게 가라앉았다. 28년 동안 아버지는 항상 회사원이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계속. 더 이상은 아니었다. 흔히 말하는 인생 2막이 시작되었다. 예고도 준비도 없이. 연금을 수령하려면 아직 몇 년이 더 지나야 했다. 사실 당장의 돈 문제보다는 불안한 마음이 더 컸을 거라고 생각한다. 공부나 일을 하지 않고 어색하게 집에서 쉬는 모습. 나에게도 아버지에게도 낯선 모습이다.
퇴직 기념으로 온 가족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한 달간 걷다 왔다. 여행 자체는 정말 좋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마음은 복잡했다. 사실 도보여행 자체가 인생의 답을 일러주진 않는다. 그저 단순한 시간에 맞춰 살아갈 수 있을 뿐이다. 걷고 쉬고 먹고 잔다. 한국에서 우리 모두를 기다리고 있는 문제는 여전히 잊히지 않고 마음 한구석에 남는다.
그때 알았다. 모든 것엔 끝이 있고, 그 끝엔 또 시작이 있다는 걸. 애초에 끝도 시작도 그 경계가 모호하다. 삶은 그 자체로 계속 이어진다. 영원할 것 같던 회사 생활도 언젠간 끝이 난다. 그리고 더 잔인한 건 그 뒤로 일상이 계속된다는 점이다. 지구는 돌고 아침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퇴사를 하겠다고 하면 보통 '퇴사하고 뭐하려고?'라는 질문이 날아온다. 퇴사는 그저 과정에 불과하다. 인생에서 내릴 수많은 선택 중 하나. 회사에 남든, 회사를 나가든 그건 자신의 선택이다. 다만 아버지의 퇴직을 보며 느낀 건 모든 선택에 유효기간이 있다는 거다. 자의든 타의든 내가 내린 선택은 언젠가 그 효력을 다한다. 설령 공무원으로 일하다 은퇴하여 연금을 받는 생활을 하더라도 여전히 인생은 선택을 요구한다. 그래서 이제 뭐하려고?
대학만 붙으면, 공무원 시험만 합격하면, 회사에서 버티면, 인생이 끝날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다. 모두가 은연중에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 거짓말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그래야만 지금의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으니까. 그리고 당장은 다른 대안이 없으니까.
그래서 아무도 '퇴사 안 하고 회사를 다닌다고? 그럼 뭐하려고?'식의 질문은 던지지 않는다. 이게 최선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해야 일상을 영위할 수 있다. 이것도 언젠가는 끝난다는 식의 통찰은 때때로 한없이 큰 무력감과 불안함만을 안긴다. 다른 선택지가 없다면 말이다. 매 순간 죽음을 생각한다면 도리어 몸이 얼어버리지 않을까.
아버지는 귀농을 선택했다. 사람과 부대낄 일도 없고, 내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 조직 생활을 어떻게 했나 싶을 정도로 아버지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했다. 한두 해가 지나자 수익이 나기 시작했고, 친척들이 발품을 팔아준 덕에 택배로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이대로 생활이 이어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되었다. 지병이 있었던 데다 너무 무리해서 농사일을 하다 보니 몸이 축났다. 푹 쉬고 치료를 받아 지금은 나아졌지만, 예전처럼 거뜬히 농사를 지을 정도는 아니었다. 삶은 항상 예기치 못한 순간에 선택지를 들이댄다. 모든 게 영원할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어놓고.
결국 과수원을 내놨고, 팔리는 시점까지만 농사를 짓기로 했다. 물론 과수원이라는 게 바로바로 팔리는 건 아니라 적어도 2~3년은 두고 봐야 한다고 한다. 이참에 어머니도 직장을 정리하고 올라오기로 했다. 나 역시 퇴사를 앞두고 있는 마당에 많은 일이 오고 간다.
퇴사를 하든 안 하든 시간은 흐르고 상황은 변한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영원한 게 있다면 영원한 건 없다는 그 사실 하나가 아닐까. 변화하는 모습이 어쩌면 나만의 평형을 찾기 위함일 수 있다. 가만히 안주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내 발 밑에서 수많은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하다못해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는 대륙도 매년 조금씩 이동한다. 계속 이어지는 일상 속에서 퇴사란 조그만 일탈에 불과할지도. 그다음 일상을 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