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빈 공간을 두려워하지 말자

아무것도 안해도 불안하지 않게

by 신거니

무료한 주말 오후. 가끔은 이 순간이 아찔하다. 평일에 그토록 바라던 시간이었건만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만 있는 나 자신을 보면. 알고 있다. 넷플릭스를 보거나, 핸드폰을 들여다보거나, 하다못해 잠이라도 자면 된다는 걸. 그런데 K직장인 특유의 생산 강박증 때문일까?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할 것만 같아 안절부절. 내 패턴을 완전히 파악한 유튜브 알고리즘도 재미가 없다. 천장만 멍하니 바라본다. 그렇게 시간이 간다.


하지만 진정 두려운 건 생산적이지 못한 주말 오후가 아니라 그 시간을 무의미하게 여기는 나 자신이다. 어느 순간이건 내 인생에서 그렇게 쉽게 지워버리려 하다니. 살아 숨 쉬는 시간 한마디 한마디가 모여 내 삶을 이루기 마련인데. 고된 업무 뒤에 찾아오는 잠깐의 휴식에도 이토록 무료함을 느낀다면 퇴사 이후에는 오죽할까. 광활하게 펼쳐진 시간의 빈 공간을 어떻게 채워야 하나. 그리고 그 안에서 난 어떤 감정을 느낄까.


'퇴사하면 뭐 할 건데?'라는 질문은 크게 두 가지 속뜻을 갖는다.


1. 회사에서 주는 월급 말고 어떻게 돈을 벌건데?

2. 그 긴 자유시간 동안 뭘 하면서 살 건데?


태연한 척하지만 사실 속으로 뜨끔한다. 아직 모두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들려줄 멋진 대답이 없어서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말로 넘기기엔 너무나도 현실적인 문제. 돈 그리고 시간. 사실 돈이야 벌면 된다. 어떻게든(...)






새장 안에 갇혀있던 새는 막상 문이 열려도 나가길 주저한다. 등을 떠밀어도 계속 새장에 미련을 가진다. 높이 튀어 오르는 벼룩도 몇 번 천장에 머리를 부딪히면 자기 능력보다 낮게 뛴다. 학습된 무기력은 생각보다 뿌리가 깊다. 자유란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는 차라리 저주에 가깝다.


퇴사를 하고 나면 어쩐지 더 알차게 살아야 할 것 같다. 회사에서 보내던 하루의 3분의 1을 통째로 들어내니까. 거기에 출퇴근하는 시간, 출근하려고 준비하는 시간까지 합치면 생각보다 많다. 안 그래도 불안한데 한없이 늘어져있다면 불현듯 공포가 엄습해온다.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나오기 전에 계획을 철저하게 세워도 마찬가지 아닐까. 시간의 주인이 되는 일, 쉽지 않다.


돌이켜보면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퇴근해서 집에 심심하게 앉아있으면 불안하다. 이것저것 내 루틴에 집어넣다 보니 어느새 하루가 꽉 찬다. 그렇게 이보다 더 알찰 수 없게 하루를 보내고 자리에 누우면? 엄청 피곤하다. 그대로 기절했다가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다. 거의 좀비에 가깝다.


회사에서도 그렇다. 맨날 바쁘다고 노래를 부르지만 비는 시간이 반드시 생긴다. 사방에서 재촉하는 잔소리를 듣기 싫어 일을 빠르게 끝내 놓는 날에는 말이다. 손목은 시큰거리고 눈도 뻑뻑하다. 난 분명히 의자에 앉아있는데 숨이 차다. 거기에 상사의 지적사항이 줄줄이 들려온다면? 미쳐버린다.


사실 알차게 살려고 마음먹으면 끝이 없다. 몸이 건강해야 하니까 운동도 해야 하고, 교양인으로서 악기도 하나 배워야 하고, 사회인답게 재테크 공부도 잊으면 안 되고, 퇴사를 하려면 다음 먹거리도 준비해야 하고, 인스타그램에 올릴 맛집 탐방도 하고, 사람들과 교류하기 위해 독서모임도 나가고, 코로나 풀리면 나갈 해외여행지도 검색해야 한다.


이 순간 유일한 사치는 쉬는 거다.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거. 아, 조금 허전한데 음악이라도 틀까? 좋은 음악을 들으니 글이라도 쓰고 싶어 진다. 그렇게 내 휴식은 끝이 난다.






산업화 이후 노동은 '정상적인' 인간의 소양이 된다. 병신, 장애인 등의 표현이 욕설이 된 사유도 여기에 있다. 병든 육체를 이끌고 남들과 같이 노동하는 건 힘든 일이니까. 노동하지 않는 인간은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사회는 항상 부가가치를 생산하라며 뒤에서 채찍을 들고 덤빈다. 쉬지 말고 일해라, 공장에 있는 기계처럼.


매일같이 퇴사하고 싶다고 부르짖으면서도 사표를 쓰지 못한다. 남들의 시선에 짓눌리고 내면에서 피어나는 불안함을 이겨내지 못하니까. 나약하다는 소리가 아니다. 그만큼 안팎으로 잔뜩 눌려있다는 말이다. 다른 대안은 전혀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정작 자유를 얻어도 그 시간을 온전히 누리지 못할 정도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 가장 먼저 다음 마을에 도착하는 건 단연 한국인이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쉬지 않고 걸으니 당연한 결과다. 풍경은 잠깐 서서 사진 몇 장에 담으면 그만이다. 갈길이 멀다. 발걸음을 재촉한다. 뒤에서 누가 따라오는 것도 아닌데. 한국인의 마음속엔 컨베이어 벨트가 하나씩 있다. 어떻게든 앞으로 나가지 않으면 뒤쳐져서 나락으로 떨어진다. 난 저렇게 되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라니.


순례길에서도 안식을 얻지 못한다면 대체 어디서 쉴 수 있을까. 휴식은 죽어서 영원히 누릴 수 있다는 말이 섬뜩하게 들리는 건 나뿐일까. 이렇게 말하는 나도 급하디 급한 한민족의 피를 제대로 이어받았다. 가만히 누워서도 마음을 급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니. 참 대단하다.


시간에는 본디 정해진 용도가 없다. 자유롭게 쓰면 된다. 알차게 살든 빈둥거리며 살든 내 인생이다. 별 생각이 다 든다. 이제 정말 퇴사가 얼마 남지 않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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