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갈 사람은 나간다
회사를 다니면서 황당한 일을 많이 겪었지만 유독 한 메일이 기억에 남는다. 바로 공식 업무지침으로 내려온 한마디. "퇴사 시 전체 메일 발송 금지." 본래 퇴사자가 모든 회사 동료에게 마지막 메일을 남기는 게 암묵적인 문화였다. 회사를 나가는 소회를 밝히거나 뼈 있는 한마디를 던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랄까. 퇴사 면담이나 대면 인사도 진행되었지만 이건 이것대로 나름의 맛이 있었다. 모두의 메일함에 흔적 하나를 남길 수 있으니까. (힘들 때마다 다른 이의 퇴직 메일을 읽으며 힘을 얻곤 했다.)
퇴사 릴레이가 이어지던 코로나 직전, 위에서 메일이 하나 날아왔다. 퇴사를 할 때 전체 메일을 남기지 말고 조용히 나가라는 지시사항이었다. 이미 회사를 나갈 사람에게 지시를 한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다른 팀 사원이 마지막 날에 서로 예의를 지키면서 업무 하자는 메일을 쓴 게 발단이었다. 또 회사의 퇴사율도 적나라하게 드러나니 경영진 입장에서는 참으로 틀어막고 싶은 입이었으리라.
통계마다 차이는 있지만 전체 퇴사자의 약 30~40% 정도가 1년 이내에 회사를 나온다고 한다. 2016년에 25% 정도라는 통계치를 봤었는데 그 사이 더 높아져버렸다. 물론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사태 때문도 있겠지만 회사 사정에 의한 퇴사 비율은 생각보다 높지 않다. 대부분은 대인관계 스트레스, 업무 불만, 적은 연봉 등을 이유로 꼽았다. 사직서를 항상 품고 사는 게 직장인이라지만 요즘은 시기가 너무 빨라진 게 문제다.
혹자는 이를 소위 MZ세대의 특성으로 꼽곤 한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 여기고, 열정이 부족하고 어쩌고 하는 세대 담론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세대 담론을 끌고 가는 게 MZ세대가 아닌 기성세대긴 하지만. 반쯤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문제가 단순하지 않다. 100명의 퇴사자가 있다면 100개의 퇴직 사유가 있다. 사실 기업 입장에서도 미칠 노릇이다. 신입사원을 기껏 뽑아놨더니 배은망덕하게 계속 탈출을 이어간다면 비용이나 인력 충원 상에 문제가 생긴다.
'너희 말고도 일할 사람 많아'라곤 하지만 퇴사자가 늘어나면 위에서도 질책이 이어지고 퇴사율이 높아져 취업준비생이 기피하는 이미지가 박힌다. 양질의 지원자가 이 기업을 선택하는 일이 사라진다. 여기에 평균 근속연수도 높다면 더더욱 믿고 거르는 회사가 되어버린다. 신입사원은 계속 나가고 고인물만 자리를 꿰차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에서는 대개 퇴사 직전에 붙드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연봉 인상을 제안하거나, 다른 팀으로 순환배치를 약속하거나, 업무량을 줄여주는 식으로. 물론 여기서 접고 들어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신입사원이 제안을 거부하고 회사를 나간다. 신입사원이야 다시 뽑으면 된다지만 3년 차 이상이 퇴직을 결정하면 회사도 타격이 크다. 어느 정도 회사 업무가 손에 익은 사람들이 나가버리니 실무 전선에 공백이 생기고, 중간관리자나 경영진도 뽑아야 하는데 선택지가 줄어든다.
여기에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자조 섞인 소리가 돌고도는 회사라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능력 없고 갈 데도 없어서 남아있는 이들만 점점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이 연차만 채우면서 상사가 되면 신입사원은 '대인관계 스트레스'나 '업무 불만'을 느끼며 열심히 이직 자리를 뒤진다. 신입사원이 당장 버티고 있어도 안심할 일이 아니다. 첫 직장에서 계속 재직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이직하려면 버텨야 해서'다.
연봉이나 복지혜택을 올려주면 될까? 이 역시도 쉽지 않아 보인다. 물론 아까도 말했듯 누군가는 남는다. 하지만 회사가 정말 붙잡고 싶은 인재는 뿌리칠 개연성이 높다. 최근 1~2년 사이에 공무원 퇴사 키워드가 떠오르고 있다. (정식 명칭은 의원면직이다) 공무원은 퇴사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라고 생각했는데 그 전제에 금이 가고 있다. 그런데 그 시기가 참 절묘하다. 3~4년 전부터 소위 '명문대' 출신의 공무원 시험 준비가 한참 이슈가 됐다. 물론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겠지만 예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당시 공무원 시험에 어렵사리 합격한 이들이 이제 반대를 무릅쓰고 의원면직을 신청한다.
부모님도, 주변에서도 이해하지 못한다. 공무원 경력을 살려 어딘가에 재취업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애초에 평생직장의 마지막 보루가 아니던가. 하지만 공무원마저도 이제 변하고 있다. 높은 근속연수에 따른 적체, 잦은 순환배치에 따른 전문성 결여, 수직적이고 고압적인 분위기, 갈수록 줄어드는 공무원 연금 수령액, 여전히 너무 낮은 월급, 겸직 금지 조항까지, 소위 MZ세대가 기겁할만한 특성은 다 갖추고 있다.
기업은 대개 위생 요인(Hygiene Factor)으로 퇴직 문제에 접근한다. 이는 조직행동 이론에서 나온 개념으로 직무태도에 영향을 주는 여러 요소를 두 가지 요인으로 구분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위생 요인은 연봉이나 복지, 근무환경, 안정성 등 근로자 외부에서 온다. 반대로 근로자 내에서 작용하는 동기 요인(Motivation Factor)도 있다. 성취감이나 인정, 책임감, 성장 가능성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이론이 1960년대 말에 나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MZ세대에만 국한되는 내용은 아니다.
누군가는 분명 배부른 소리로 치부할 수 있다. 이렇게 먹고살기 어려운 시점에 동기부여가 뭐 그렇게 중요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신입사원이 하나둘씩 기업에서 탈출을 실행하고 있다면 요즘 애들 운운하며 비판할 시점은 지났다. 이제 고민의 지점은 어떻게 하면 이들이 남아 있을 만한 회사가 될 수 있을까가 되어야 한다. 코로나 사태 이후 미국에서는 역설적으로 구인난이 찾아온다. 자산 가격의 상승, 국민 지원금 및 복지정책의 여파로 웃돈을 줘도 사람을 구하기 힘든 상황이 펼쳐진다.
아직까지 구직난에 시달리는 한국의 현실에서는 머나먼 얘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저출산과 노령화가 함께 만들어가는 인구절벽 현상,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가치관의 변화, 직장에 대한 대안 수입원이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차츰 '사람이 귀한 사회'로 변화할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이러니 저러니 해도 네임벨류나 연봉, 복지제도를 따진다. 그리고 '너 말고도 뽑을 사람 많아'식의 마인드도 당분간 유효할 것이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도 그런 태도를 너무나도 쉽게 볼 수 있었고 많은 이들이 퇴사를 결심했다. 주로 사원이나 대리급부터. 한참 실무를 하느라 정신이 없을 시기다.
나간 이들을 떠올려보니 가장 일 잘하고 똑똑한 (물론 나간다고 해서 다 유능한 건 아니지만) 사람들이었다. '요즘엔 나가는 게 능력이야'라는 말이 실감이 날 정도로. 이는 조직 관점에서도 굉장한 손해다. 지금과 같은 저성장 기조가 심화되고 갈수록 업무에서의 창의성을 요구하게 된다면 말이다. 위에서는 성과를 내라며 쥐어짜고, 질린 이들이 퇴사를 감행한다. 여기에 수직적인 군대 문화, 인사 적체, 소통의 부재, 불공정한 성과 배분, 낡디 낡은 업무 프로세스 등 여러 문제가 산적해있다면 더더욱. 이렇게 쓰고 보니 퇴사가 전혀 후회스럽지 않다. 퇴사 메일을 쓰지 않은 건 조금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브런치에라도 하고 싶은 말을 적었으니 됐다. 그럼 다들 잘 계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