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잔인하다. 내가 죽으려 할수록 신은 나를 살게 한다. 어디선가 윤회라는 것을 들은 적 있다. 전생, 이생, 환생. 삶은 돌고 돌아 계속 태어난다는 것이다. 나는 죽어도 또 환생할까 봐 끔찍했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이번 생으로 족했다. 내가 죽으면 신에게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손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싹싹 빌 생각이었다. 제발 이번 생이 마지막이길 빈다고, 다시는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그만 멈추어 달라고 말이다. 혹여나 부탁을 들어준다면, 이번 생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니 나는 더 이 악물고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환생이 없더라도 인생은 한 번뿐이니 말이다.
회사를 다닌 지 6개월 되었을 때 안전관리자 2명을 더 선임했다. 과장급 1명과 신입 1명이 들어왔다. 직무는 다르지만, 안전과 보건은 겹치는 일도 많고, 기본적인 업무는 알고 있던 터라 내가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은 내가 신입을 가르쳤다. 내 첫 근무 때가 생각나서 아주 열심히 가르쳐줬다. 모르는 것은 혼자 앓지 말고 언제든지 편하게 물으라고 하고, 실수해도 이해를 했다. 그러나 사람은 내 뜻대로 되질 않는다. 천천히, 자세히, 완벽하게 가르쳐줬다고 생각했다. 언제든 편하게 물으라고 했지만, 그 말을 후회했다. 그는 완전히 물음표 살인마였다. 메모가 필요하지 않겠냐고 물어도 이미 외웠다고 했다. 그러나 오전에 가르쳐준 것을 전혀 기억을 못 하거나, 시킨 일은 5번 넘게 말해야 행동을 할 때가 많았다. 어느 날은 같은 것을 8번째 가르쳐주다가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그러자 새로 오신 김 과장님은 나보고 친절히 가르치라고 한 소리 하셨다. 신입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멍한 얼굴로 있었다. 그 표정이 더 얄미웠다. 김 과장님은 신입이 자신의 옛날 모습 같다며 아주 예뻐하셨고, 나에게는 일을 어쩜 이리 잘하냐면서 대단하다고 하셨다. 나는 1~2일이면 끝날 인수인계를 2주나 걸렸고, 그 이후에도 2달은 일 처리 하는데 문제가 생겨서 점점 나에게 일이 떠넘겨졌다. 대기업에 어떻게 뽑혔냐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신입은 원래 탈락자였고, 합격자들 후보 총 3명이 갑자기 돌연 듯 각각의 사정으로 인해 입사를 못 하게 되었다. 우리 현장은 당장 채용이 급했고, 그렇게 탈락자가 하루아침에 합격자가 되었다. 그래도 나는 답답함을 억누르고 최대한 친절히 가르치려고 애썼다. 그런데 뒤에서 들려오는 한 마디가 있었다. 나는 소규모 회식도 참석을 잘하지 않았지만, 신입은 회식에 자주 참석했다. 그곳에서 신입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가 일을 안 해도, 다 해주던데요."
다른 팀 박 과장님이 말씀해 주셨다. 나는 멍해졌다. 몰라서 열심히 도와줬는데 일부로 안 한 것인가. 신입이 바보가 아니라 내가 바보였다. '다 해주던데요'에 대한 주어는 '나'였다. 그 이후 진짜 모르는 것이든, 아는 것이든 신입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 과장님은 그 와중에 끊임없이 신입이 잘 못 하니까 일을 나에게 다 떠넘겨 주려고 했다. 나는 완강히 거부했지만, 결국 피를 본 것은 나이다. 김 과장님과도 사이가 틀어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김 과장님 입장에서는 신입이 뭘 알겠냐고 감싸기만 했다. 나는 너무 서러워졌다. 나도 신입인데 아무도 나를 신입으로 봐주지 않았다.
내가 있던 현장은 아파트 짓는 곳이었는데 보통은 준공 때까지 2~3년이 걸린다. 내가 업무에 익숙해지려 하면 늘 새로운 업무가 나를 덮쳤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땅을 파는 동안 그것에 맞는 업무를 하고, 이제야 익숙해지면 건물 틀을 만든다. 건물 틀을 만드는 관련 업무에 익숙해지면, 시멘트로 벽을 만든다. 그러면 또다시 새로운 업무를 맞닥뜨리는 것이다. 다시 땅을 파고, 틀을 만들지 않으니까 말이다. 즉 공사가 끝날 때까지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새로운 일이다. 신입이 처음 하는 일들은 나 역시 모두 처음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김 과장님은 자꾸 신입의 한계를 김 과장님이 정하셨다.
'신입은 그런 거 못 해. 신입이 그걸 어떻게 하니. 쟨 이거 처음 하잖아.'
나도 처음이다. 나도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 나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여전히 지금도 그렇다. 적어도 신입은 가르쳐주는 사람이라도 있지 않았던가. 심지어 자신이 일을 못 하거든 모든 책임을 져주실 든든한 안전관리자 선배가 2명이나 있다. 나는 보건관리자가 내가 유일해서 책임 또한 나의 몫이다.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방향도 모르고, 모르는 업무를 옆에서 보고 배울 선배도 없다. 그런데 왜 자꾸 신입만 손 하나 까딱하는 것을 보지 않고, 모든 걸 나에게 떠넘기려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신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느린 아이구나 생각하면 좋을 텐데 자꾸 나의 첫 모습과 신입의 첫 모습이 비교되었다. 신입이 나처럼 열심히 하지 않는 것에 나는 답답했다. 나는 신입과 김 과장님 둘 다 사이가 틀어졌고, 결국은 김 과장님과 몇 번의 전쟁 같은 긴 대화 끝에 나는 나의 업무를 지켜낼 수 있었다. 내가 말하다가 우는 도중에도 할 말은 끝내 다했다. 내가 알던 나는 아무 말 못 하고 속앓이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할 말 다 하는 사람으로 변해있었다.
나는 나의 한계를 두지 않았다. 내가 죽음의 문턱에 선 순간, 나의 죽음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나의 죽음뿐이라고 생각했다. 죽음에 실패했으니 말이다. 대신 나는 이 세상 무엇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해보자고 생각했다. 열심히 아주 최선을 다해서 말이다. 모든 것을 도전했다. 운동을 해서 11자 복근을 만들어 보고, 피아노도 배워보고, 요리도 만들어 봤다. 뭐든 배우고 도전하니 점점 내가 변하고 있음을 느꼈다. 내 안에는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 차가운 모습도, 웃는 모습도 모두 나이다. 누군가에겐 천사지만 누군가에겐 악마이기도 하다. 아마 신입과 과장님에겐 내가 악마였겠지. 그리고 예전에는 밍밍한 코코넛 음료를 싫어했지만, 지금은 그 오묘한 코코넛 음료를 좋아한다. 변하든 변하지 않든 모든 모습이 나이다. 그래서 나는 '아무나' 될 수 있다. 이처럼 한계를 두지 않고 계속 나아가다 보면 변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변하지 않는 소중한 가치가 내 안에 깃들기도 한다. 내가 하나, 둘 최선을 다해 살면 살수록 나는 마음에서 무언가 꿈틀거린다. 이 마음은 뭘까.
여전히 신은 잔인하다. 이번 생을 마지막으로 여기고 죽어라 사니까 자꾸 더 살고 싶어진다. 자꾸 그 꿈틀거리는 마음이 나를 살게 한다. 이러면 안 되는데, 죽어서 신에게 빌어야 한다. 나 이제 그만 살고 싶다고, 이번 생만 살게 해달라고 말이다. 그런데 나는 아마 또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되겠지. 한 번 더 살고 싶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