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회생활을 잘하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면 사회생활을 잘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리고 그런 사회 부적응자인 나의 모습을 좋아한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이 일을 잘 해내는 것이다. 일을 잘하면 적어도 회식을 참석하지 않아도, 사람과 잘 어울리지 않아도 나를 쉽게 건드릴 수 없기에 최선의 방어막인 것이다. 나를 쉽게 무시할 수도 없고, 함부로 대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마음이 점점 피폐해져 갔다. 자기계발로 스트레스를 풀었는데 그것도 일시적이었다. 운동해서 몸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다음은? 피아노를 배워 치고 싶던 모든 곡을 전부 쳤다. 그래서 그다음은 뭔데? 혹시 책 속에 답이 있을까 봐, 책을 손에 잡히는 데로 읽었다. 그래서 이제 뭘 할 건데? 내가 세운 목표들은 단기적으로 나를 끌어올렸지만, 나는 그 목표에 도달하면 길을 잃었다. 내가 이걸 왜 배웠지. 무엇을 위해 했지. 그래서 이제 뭘 할 거지. 내가 이걸 왜 시작했더라. 이런 물음이 찾아왔다. 나는 내가 가고 싶은 곳에 도착했지만, 그곳에는 허무만 남았다. 결국 스트레스는 점점 쌓였고, 안식이 필요했다.
자연스레 퇴사를 생각하게 된 이후부터 회사에서 몰래 채용공고를 찾아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물론 마음에 드는 일은 없었다. 적게 일하고 돈 많이 주는 곳은 없으니 말이다. 나는 내가 돈 욕심이 별로 없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공고를 볼수록 마음에 드는 연봉은 없었다. 그렇다고 다시 건설업으로 들어가고 싶진 않은데 여기만큼 많이 주는 곳도 없었다. 어느덧 나의 기준은 높아져 버렸다. 그렇게 아무런 대책도, 이직 준비도 없이 퇴사 날이 다가왔다. 앞으로 뭐 해 먹고 살지 막막하고 두렵고 무서웠다.
하루아침에 백수가 됐다. 그러나 두려움은 잠시였고, 생각보다 엄청 행복했다. 월요일 아침이 헬요일이 아니었고, 모아둔 돈도 꽤 넉넉했다. 최소한 1년은 버틸 수 있는 돈이었다. 돈 많은 백수란 이런 것일까. 이렇게 벅찬 자유를 끌어안고 행복한 상상을 시작했다. 여행을 가볼까. '한 달간 제주살이' 말만 들어도 행복한 단어. 상상은 곧 현실이 되었고, 나는 내 몸만 한 짐을 챙겨서 제주로 떠났다. 뭐든지 계획 속에서 살았던 내가 무계획으로 살아보자는 계획을 했다. 내 발걸음이 닫는 곳이 나의 목적지였고, 바람이 부는 곳으로 내 몸을 실었다. 관광지보다는 작은 마을을 다니고, 맛집보다는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비가 내리는 날은 창밖을 보며 독서를 하거나, 장을 봐서 숙소에서 냄비 밥을 지어 먹었다. 평소 사지 않았던 사치품이나 기념품도 사봤다. 매일 눈을 뜨면 설레고, 오늘을 이런 마음에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했다.
일주일마다 숙소를 옮겨 다녔다. 이번에는 제주 동쪽, 삼양 검은 모래 해수욕장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 해변 산책로를 거닐다가 상냥한 바람이 내게 불어왔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는 없어져서 어디까지가 바다인지 알 수도 없었다. 하늘까지 바닷길이 열린 것 같았다. 이 모든 순간이 동화 같았고, 나는 동화 속의 어느 한 인물 같았다. 이 동화가 끝나질 않기를 바랐다. 아니, 이 동화 속에 살고 싶었다. 나는 지금쯤 어느 페이지를 걷고 있을까.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가 걱정되었다. 인생은 행복과 불행의 반복이라던데, 내가 행복한 만큼 불행이 찾아오지 않기를 바랐다. 또 바람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그 따스한 바람은 나의 이런 쓸데없는 걱정을 모두 안고 흩어졌다. 나는 이곳에서 그저 예쁜 것을 보고, 좋은 것을 듣고, 맛있는 것을 먹고, 따스한 바람을 느끼고, 향긋한 꽃내음을 맡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둘러싸여 말도 못 할 행복감 속에 파묻혔다. 이러한 기분은 처음이었다. 그때 나는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했다. 돈 욕심은 순식간에 사라졌었다. 내가 사는 세상은 직업이 하나가 아닐 것이다. 그러니 내가 행복한 것을 하다 보면 돈은 따라오리라 생각했다. 이상적이고 무책임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내가 현실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 속에서 살지만, 이상을 꿈꾸며 사는 것. 한 번 사는 인생인데, 현실 속에서만 산다면 너무 삭막하지 않은가. 이상을 꿈꾸며 살아가야지 그곳에 조금이라도 닿을 거로 생각했다.
사람은 모두가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모두 그 소명을 찾으며 살아갈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누군가가 나에게 왜 사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말한다.
"내가 왜 사는지 모르기 때문에 살아가요. 그 이유를 찾기 위해서. 언젠가 내가 죽을 때는 그 답에 가까워질 거예요."라고 말이다.
내가 목표와 가까워질 때마다 언제나 그 끝은 허무만이 남았다. 내가 찾고 있던 것은 목표가 아니었다. 수많은 목표는 내가 가야 하는 길을 조금씩 재미있게 원동력을 넣어주는 주유소였고, 그 길로 인해 돌아간다 해도 내가 가야 하는 곳을 잊지 않는다면 나는 길을 잃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왜 사는지 미리 안다면 좋을까. 인생의 끝은 어쩌면 '무'만 남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저 인생은 과정인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과정을 살아갈 것인가가 중요하다. 나는 내가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 방향을 정했다. 쉬운 말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말. '나를 사랑하며 살아가기'. 이것이 내가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이고, 나의 선택의 기준이 될 것이다. 그렇게 나의 모든 크고 작은 선택들이 모여 나의 인생을 만들어 가겠지. 그 선택들로 인해 생기는 운명들도 있을 것이다. 내 운명은 내가 정하기로 했다. Amor fati 아모르 파티! '나의 운명을 사랑하라'라는 뜻이다. 내 선택으로 만나는 모든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산책을 끝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수많은 생각이 정리되면서 안정을 찾았다. 그 감정은 두려움도, 두렵지 않음도 없었다. 여행 중이라 행복한 것인가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 어디를 가도 내 마음이 행복하면 그곳이 여행지임을 느꼈다. 그렇게 한 달 후 나는 제주에서 돌아와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인생의 여행을 마저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