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괜찮은걸 바란게 아닌 모양이다.

by 투명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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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반이 넘게 일을 안 했다.

다시 일을 해야겠다 맘먹고 적당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물론 출근 일주일 전부터 긴장감에 잠을 설쳤다.

불안이 찾아왔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두어 번쯤 불안할 때 먹는 비상약을 먹을까? 고민했지만 이번에도 잘 넘겼다. 스스로에게 계속 말했다. 이것도 못 견디면 앞으로 어떻게 살 거야??

출근 이틀 전에 마라톤 대회가 있었는데 나의 모든 관심사는 뛰기라는 듯이 마라톤에 열중한 척했다.

나 스스로를 그렇게 속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출근하고 내가 세운 대전제는 평일엔 일에 집중하자였다.

나의 신체적 정서적 체력은 일 이외의 다른 것들을 같이 수행할 정도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뛰기도 독서도 뜨개도 가급적 평일에는 하지 않으려 한다. 출근을 잘할 수 있는 신체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목표다. 그렇다고 일에 매몰되지도 않을 것이다. 퇴근하면 가급적 일생각을 안 하려고 한다. 주말에도 일부러 일 이외의 것들에 몰입한다.

간단한 전제인데 지난 직장생활에서 제일 안되던 것들이다.

출퇴근이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처럼 일상적인 일이 되도록 애쓰고 있다. 특별히 잘하려고 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출근하면 일을 한다는 기본 탑재한 성실한 태도가 있으므로 나태해질 걱정은 애초에 없다. 이전에는 잘하고 싶은 마음에 오버해서 넘치는 게 늘 문제였다.

그저 내 몫을 해내려고만 한다. 욕심도 기대도 별로 없다. 현실에 충실하려 한다.

업무 할 때에도 지금 당장 해야 할 일들에 몰두한다. 지나간 일에 아쉬워하지 말고 미래에 불안해하지도 말고 그저 심플하게 살고 싶다. 아직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지만 걱정한 거에 비하면 꽤 담담하게 살고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괜찮은걸 바란게 아닌 모양이다.

담담하게 살아내고 싶었던 거 같다.


지난달 평일 브런치 모임을 하던 친구들을 만나 이제 나는 평일 모임에 못 나올 거 같다는 선언을 했다.

다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적응을 못하고 또 동굴 속으로 들어가게 될까 봐 걱정된다는 말도 했다.

그때 모임의 한 분이 “그러면 걱정 말고 회사를 나와요. 그리고 우리랑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라고 말해줬는데 그 말이 참 든든했다.


번아웃이 찾아왔던 지난 몇 년간 나를 지켜준 내 사람들에게 담담히 살아내고 있는 나를 보여주고 싶다.

더 이상 사람들이 나에게 괜찮냐고 묻지 않아도 될 만큼만 즐겁게 살고 싶다.

내 빚진 마음을 그렇게 조금씩 갚아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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