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캐리어 두 개를 들고 서울에서 고향으로 내려오던 날이었다. 행복이 가득할 거라 믿었던 나의 꿈을 위한 여정은 나에게 우울증을 남겨주었고, 이 여정에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처음 내 꿈을 입 밖으로 내뱉었던 13살, 본격적으로 학원을 다니며 첫걸음을 내디뎠던 18살, 한 발짝 더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지만 모든 대학에 다 떨어지는 쓴 맛을 본 19살, 대학이 아닌 그 직업을 위해 서울로 상경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학원을 다녔던 20살, 그리고 그 꿈을 포기해 버린 21살의 3월의 나.
나이라는 것은 참 신기하다. 20살 때까지만 해도 존재했던 희망이 고작 1살 더 많아졌다고 사라져 버리다니. 21살이란 나이에 뭐가 그리도 겁이 났는지 깜깜한 미래에 그 무엇보다 안정적이라는 단어가 필요해졌다. 몇 년간 미래만 생각하면 불안정한 것들만 가득 펼쳐지게 돼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래서 결정했다. 더 이상 행복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미래는 다를지 몰라도 지금 나의 현재가 이리도 불행하다면, 다른 길을 걷는 것이 맞겠다고. 난 그렇게 결정했다.
막막한 미래에 꿈을 포기했지만, 포기하고 난 이후에 내겐 막막한 현재가 펼쳐져 있었다. 예전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내가 서울에 온 이유를 아셨던 매니저님께서 현실 때문에 꿈을 포기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하는 내게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었다.
"포기하면 그때부터 현실이 되는 거야."
그 당시에 이 말은 내 가슴속에 계속 맴돌았었다. 그러나 포기하고 난 이후에 그 말은 내게 다른 의미로 내 머릿속을 맴돌게 했다. 그래, 현실이 되고 말았다.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을 두려워했던 내게 아무것도 남지 않은 현실이 펼쳐지게 되었다.
결정해야 했다. 뭘 먹고살아야 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아니 뭘 해야 하는지. 나에겐 이제 뭘 하고 싶은가는 사치였다. 이 꿈이 아닌 다른 꿈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공부를 그리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학원을 다니면서부터 성적은 갈수록 떨어져 갔었고 그렇게 졸업을 했다. 정말이지 막막하다는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다들 나에게 아직 젊다고, 너무 젊으니 무얼 해도 좋다고 말해주지만 뭘 해야 되는지 몰랐다. 아무도 내게 정답을 주지 않았다. 그때 처음으로 '누군가 정해준 길을 가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고향으로 내려가기 전, 서울에 사는 사촌 언니에게 도움을 청했다. 만나서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뭘 해야 될지 몰랐던 내게 '대학교를 가보는 게 어때?'라고 말해주었다. 지금 나에겐 그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 인터넷 강의를 추천받고 문제집을 사고 독학으로 수능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공부를 하다 서울에서 살던 집의 계약 만료 기간을 몇 주 정도 앞두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연기학원을 처음 다녔던 18살 때부터 21살이 됐을 때까지 연기자라는 직업만 바라봤던 내가 손 놓은 지 오래된 펜을 오랜만에 잡으며 21살이 된 그 해, 11월에 치를 수능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우여곡절도 많았고 눈물이 마를 새 없던 나날들 속에서 만나게 된 볼보는 어느 순간 존재 자체로 내게 위로가 되어주는 친구가 되었고, 나는 이 아이와의 이야기를 이곳에 남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