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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 은 Feb 28. 2024

소리 없이 잠든 나의 친구에게 2

#2 쳇바퀴 돌듯 지겨운 일상에

어느새 완전한 여름이 다가왔다. 매미 소리가 들리고 반팔과 반바지를 입은 채 하루를 보내는 그런 나날들이었다. 거의 불지 않는 바람이었지만 그럼에도 일어나면 매일 창문을 열어둔 채 공부를 시작했다.

어느새부턴가 볼보는 할짝 열린 창문에 방충망만 닫아둔 내 방 창문에 걸터앉아 나를 불러댔다. 평소 이어폰을 꽂고 공부하는 터라 잘 못 들을 때도 있는데 고양이 소리를 자주 들었더니 유독 야옹 소리에 예민해져서 살짝만 들려도 금방 돌아보게 된다.

그 소리가 들리면 나는 방충망을 살짝 열어 볼보를 만져준다. 만져주자마자 그르릉 소리를 들려주니 계속 만져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책상 서랍엔 고양이 간식을 자주 넣어뒀었는데 볼보가 오면 그 간식을 2/3를 부어서 준다.

그렇게 오면 만져주고 간식도 주고 했더니, 볼보는 매일 내 방 창문에 올라와 나를 불렀고 간식을 주면 다시 돌아갔다.


시간이 지나고 수능 D-100인 시간이 다가왔을 때는 볼보가 매일 앉는 그 자리에 A4용지를 직사각형 통처럼 만들어서 아침마다 간식을 부어줬다. 그러다 보면 어느샌가 그곳에 앉아 간식을 먹고 있는 볼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시험을 준비하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잠에 쉽게 들 수 없는 날들이 지속되었다. 그동안의 실패했던 기억들 덕분에 나는 트라우마들과 계속 싸워야 했다.

어느 날 모의고사를 시원하게 말아버리고 친한 언니에게 많은 얘기를 쏟아내던 날이 있었다. 그날은 유난히 달이 밝았고, 나의 기분과는 무관하게 분위기는 아름다웠다. 별자리를 찾을 수 있고, 밝은 달이 어두운 주변을 비추고 있었고, 그 아래에 앉아있는 볼보와 나, 그리고 언니가 있었다.

최악의 하루에도 나는 볼보와 함께 있었다.


볼보는 부르면 왔고, 부르지 않아도 내 모습이 보이면 왔다. 그 이유가 밥 때문이든, 간식 때문이든 어쨌든 나에게 온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그 사실이 고마웠다. 내가 어떤 일이 있든, 어떤 사건이 있었든, 내가 어떤 사람이든 볼보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나에게 올 것이다. 나라는 사람이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내게 올 것이다. 그 사실 하나가 볼보라는 존재가 나에게 주는 위로가 되는 이유였다.




행복한 순간들보다 당연히 우울한 날들이 더 많았다. 우울함이 극에 달할 때마다 뾰족한 무언가를 찾아 몸에 상처를 내기도 했다. 그 고통이 나의 우울을 잠시 동안 벗어나게 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감정을 어떻게 해소해야 될지 모르겠어서, 분노라는 감정과 우울이란 감정이 극에 달했을 땐 그 고통을 찾았던 것 같다.

힘든 순간들이 더 짙어질 때마다 나는 볼보를 찾아 밖에 나갔다. 아무 생각 없이 그르릉 거리는 아이를 만지고 있으면 잠시, 아주 잠시 현실에서 멀어져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매일 밤 기도했다. "제발 내일 아침 눈 뜨지 않을 수 있게 해 주세요. 제발, 오늘이 마지막 날이 될 수 있게 해 주세요." 결국 내 기도는 들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쳇바퀴 같은 일상에 기도 대신 한 아이가 내 일상에 들어왔고, 나에겐 언제든 위로받을 수 있는 존재가 생겼다.


아마, 이것이 나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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