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표현은 아니지만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 회사 이사님도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을 키워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는 자기 자신을 학대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목표를 이루기 위한 시련과 고난을 잘 극복할 능력을 키우라는 뜻일 것이다.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삶은 상상만 하면 행복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물고기가 긴장감을 유지하며 더 오래 생존할 수 있도록 수조에 미꾸라지를 풀어놓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직장에서도 가끔 힘든 동료가 있지만 그가 사라지고 나면 도움받았던 순간들을 깨닫기도 한다.
적절한 스트레스 수위를 정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최소한 자기 자신을 해치는 수준이어서는 안 된다. 외부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있지만 사실 스스로 주는 스트레스가 더 많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받지 않아도 되는 스트레스를 우리가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잘하려는 욕심을 줄이고 타인에 대한 불필요한 증오와 반감을 줄이는 것이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스트레스와 문제에 지속적으로 봉착하면 그것을 견디는 인간의 역량은 점점 더 강해진다.
부자의 언어
또한 지나치게 많은 생각도 스스로를 지치게 만든다. 나 역시 생각이 많은 편이라 사소한 고민에도 머리가 아플 때가 많다. 하지만 막상 관련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렇게까지 깊이 고민할 일이 아니었음을 깨닫곤 한다.
글쓰기에 대한 고민도 마찬가지다. 지난번에도 언급했듯이 생각보다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큰 관심이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불필요한 예민함을 가지게 된다. 하고 싶은 이야기와 쓰고 싶은 말을 편하게 풀어내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삶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기도 한다. 결국 스트레스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