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이라는 이름의 재미

'재미'로 작문하시오

by 홍핑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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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끊임없이 손으로 눈가를 비비며 눈물을 훌쩍였다. ‘오이디푸스 왕’에서 오이디푸스가 자기 눈깔을 뽑고 어딘가로 사라지는 장면이었다. 나는 절절한 친구와 절박한 오이디푸스를 번갈아 봤다. 공연 전에 스치듯 읽었던 팜플렛의 해설 부분이 스쳐 지나갔다. ‘관객들은 오이디푸스 왕이 장렬하게 몰락하는 모습을 보며 재미, 즉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나는 어쩐지 사람들의 눈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되려 잔인하게 느껴졌다. 어떡해. 너무 불쌍하다. 따위의 친구의 감상평도 내 마음에 크게 와닿지 못했다. 그렇지만 친구의 마지막 말은 내 마음에 계속 웅웅거렸다. 오이디푸스 말이야, 그냥 처음에 죽는게 나았을까봐.



들었어? 서대리 이번에 이혼했다며.

네? 둘이 엄청 달달해보이지 않았어요?

바람이래 바람. 이래서 사람이 일 잘해봤자 다 필요 없다니까.

그러게요. 서대리님 우리 회사 에이스인데 남자 보는 눈은 없으셨나봐요.

신은 공평하다더니, 정말이네.



현실은 연극보다 잔혹했다. ‘제4의 벽’ 따위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구내식당에서, 탕비실 파티션 뒤에서, 화장실에서, 흡연구역에서 나의 몰락을 치열하게 되새겼다. 재미있는 이벤트라도 되는 냥 깔깔거리면서. 나는 그들의 무료한 일상 속 새로운 재미로 던져진 나라는 대화주제에 대해 생각했고, 그들의 말이 한 음절씩 뇌와 귀에 상상될 때마다 어찌할 바 모르고 스마트폰으로 도망을 쳤다. 1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카카오톡, 관심없는 포털사이트, 친구들의 행복한 소식으로 가득한 인스타그램만 들락날락했다. 귀를 애써 닫으면서.


참고 사는게 나았으려나. 때때로 그런 생각이 나의 모든 판단을 잠식했다. 회사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친구의 '죽는 게 나았으려나'라는 말은 계속해서 내 귀에 굴러다녔다. 나는 나를 계속 설득해야만 했다. 이건 내 탓이 아니라고. 나는 몰락한 게 아니라고.


‘먹방 유튜버 나민 오늘 7시 해명방송 공지, 논란에 답하나’ 그 기사를 봤을 때도 그랬다. 구내식당에서 들으란 듯이 쑥덕거리는 사람들의 소음을 견디지 못했을 때. 사람들의 '내 탓'에 나조차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할 때. '먹뱉’으로부터 출발한 기사는 어느새 근거없는 외모, 가족, 인성 논란으로 뻗어나가 있었다. 나락. 솔직히 이 정도로 깔 일은 아니지 않나? 쟤 골드버튼 영상부터 쎄했음. 증거 있어? 억까좀 그만해. 응~ 다음 쉴드. 댓글이 어지러이 뒤섞였다.


나락.

나락.

나락.

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무슨 이유에선지 7시를 맞춰 나민의 방송에 들어갔다. 나민이 방송을 키자마자 사람들은 낄낄대며 나락을 외쳤다. 하나의 재미있는 놀이처럼. 거식증이 있었다는 나민의 말은 사람들에게 닿지 않았다. 나민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책상만을 바라봤다. 너무 신경쓰지 말라고 내가 다급하게 올린 채팅은 무수히 많은 나락들에 금세 밀려 올라갔다.


OO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그 와중에 후원도 켜놨냐? 진짜 답없네.


나민은 당황하며 죄송하다, 실수였다, 바로 조치하겠다 연신 사과를 내뱉었다. 나는 다급하게 뭐라도 치려고 시도했다.


OO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괜찮아요 나민님 잘못 아니야 지나갈거에요


동시에 후원이 닫혔다. 후원 메세지가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읽혔다. 메시지는 나민과 동시에 내 귀에도 한 글자 한 글자 박혔다. 내 잘못이 아니야. 나는 귀의 감각을 기억하기 위해 애썼고 치열한 설득의 결론이 이것으로 끝맺기를 바랬다. 맺힌 눈물은 채팅창에 올라가는 모든 나락을 흐리게 했다.


나민은 내가 보낸 후원을 잠시 바라보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민은 처음으로 앞을 바라보며 일곱글자를 눌러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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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이라는 이름의 재미, 김핑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일 1업로드는 쉽지 않네용 ..

하지만 내일은 1일 2업로드(아침, 밤)로 찾아뵙겠습니다!

많이많이 읽어주세용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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