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이 사라져 가는 시대, 나는 과연 잘 쉬고 있는 걸까?
A양 이야기
#호캉스 #모처럼힐링중 #나에게주는선물 #여름휴가
바야흐로 쉬는 것도 전시하는 시대가 되었다.
오늘도 보란 듯이 반짝거리는
인스타 스토리의 무지갯빛 테두리.
'제대로 쉬어본 게 언제였더라...'
생각하면서도 쏟아지는 하트에 이내 뿌듯해진다.
행복에 중독된 걸까. 더 큰 관심을 받고 싶다.
고르고 골라서 자랑스럽게 써 내려간 회심의 한 마디.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는 게 찐 휴식이지.'
쉬고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지만,
그럼에도 내 휴식을 칭송해 줄 관객이 필요하다.
B군 이야기
#주말에도열일 #갓생 #프로열정러
"주말인데 안 쉬어요?"
"휴일은 없죠."
쉬는 자는 게으르다.
일하지 않는 순간은 무가치하다.
이 사회가 새겨놓은 방정식.
아니, 실은 스스로 다짐한 삶의 방식.
쉬고 싶지 않다 말했지만
사실 난 쉬는 게 두렵다.
아무리 달려도 가시질 않는 불안은
늘 나를 더 몰아세운다.
멈추면 잡아먹힐 것 같다.
어렵게 쌓아온 모든 게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 같다.
두려움을 떼어낼 방법은 하나뿐이다.
나를 더욱더 갈아 넣는 것.
그래서 오늘도 쉼은 미뤄진다.
쉬는 것에서 도망쳐야만 한다.
내가 만들어 놓은 틀을 지키려면.
나의 일을 방해하는 모든 것은
경계선 밖으로 밀려난다.
나를 잠시라도 버릴 수 없으니까.
익숙하고 안전한 내 공간이 아니라면
그 무엇도, 그 누구도 필요하지 않다.
C양 이야기
#무계획이계획 #그냥멍때리기 #인생낭비아니고인생공부중
계획도 없이 그냥 쉰다고?
모든 사람들이 나를 경멸하는 것 같다.
마치 내가 사회의 악이라도 되는 것처럼.
배우거나, 일하거나.
열심히 일한자여 떠나라!
노예에게 잠시 허락된 충전의 시간이 아니라면
공백에는 꼬리표가 붙는다.
무능력. 게으름. 팔자 좋은 백수.
그럼에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느지막한 오후의 따스한 햇살 아래에서,
밤엔 고요한 별빛 아래에 누워서
한가로이 흘러가는 시간을 바라본다.
목적 없이 부유하고 있는데도
처음으로 살아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오늘도 쉰다.
당분간은 무작정.
어떻게든 되겠지.
P.S.
사실 이 모든 건 진정한 쉼이 사라져 가고 있는 시대에서 ‘나는 과연 잘 쉬고 있는지‘ 대한 고민을 담은 필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전하고 싶었다.
나처럼 오늘도 A양, B군, C양.
그 사이 어딘가에서 줄타기를 하며
제대로 쉬는 법을 몰라 헤매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가끔은 남들은 잊고
오롯이 나를 위해 쉬어도 괜찮아요.
마음의 틀 안에서 나를 잠시 풀어주어도 괜찮아요.
누가 뭐라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게 당신을 더 당신답게 만들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