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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남친, 괜찮은 남편

<인티제의 사랑법> 프롤로그

by 류귀복

경고 : 달달한 사랑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음



이 연재는 미혼 남녀에게 유독 위험하다.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이라는 마음 가짐이 심하게 요동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육아에까지 욕심이 생길 수 있다. 미리 경고하지만 완독 이후 나타나는 부작용(?)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는다. 간혹 이 글이 '결혼'이나 '출산'으로 이어지는 경우, 도의적 차원에서 작은 보상만을 제공한다. 마음을 담은 에세이 한 권을 전달한다. 선물용 도서는 2024년 봄, 브런치를 뜨겁게 달군 <나는 행복을 촬영하는 방사선사입니다> 저자 사인 본이다. '다음 책 베스트셀러 14주'를 기록 중인 따끈따끈한 책이다. 맨 아래 '♡'를 누르거나 '댓글'을 남기면 자동으로 참가 자격이 주어진다. 여기까지 읽었으니 주의사항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고, 오리엔테이션을 시작한다. 부디 '이 자식 뭐야?'로 시작해서 유쾌한 매력에 흠뻑 빠져드는 흥겨운 여정이 되길 바란다.


외향성 내향성 중 I(내향성)
직관형 감각형 중 N(직관형)
사고형 감정형 중 T(사고형)
판단현 인식형 중 J(판단형)


주인공 남성은 올해로 마흔두 살 가장이고, MBTI는 INTJ(이하 인티제)다. 책을 한 권 출간했지만 직업란에는 여전히 '방사선사'를 적는다. 출판시장이 불황이라 전업으로 글을 쓰는 게 어렵다 보니 부득이 로또를 구입한다. 6개의 숫자를 모두 맞추는 기적이 일어나는 날부터는 직업란에 당당히 '작가'라고 적을 예정이다.


사진 : 16personalities.com


'인티제'는 매사에 철두철미하고 영특한 면모를 보이지만 함께보다는 혼자를 더 선호한다.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본인 스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성향 때문에 연애 상대로는 최악으로 꼽힌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인티제를 '공능제'라고도 표현한다.(공능제는 '공감 능력 제로'의 줄임말이다.) 여기까지 읽고도 머릿속에 그림이 안 그려지는 독자들을 위해 예시를 하나 준비했다.



"자기야, 나 선영이 때문에 속상해."
"갑자기 왜?"
"약속한 시간에 자꾸 늦게 나오거든. 나는 미리 나와서 기다리는데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 그러니까 짜증이 나."
"그래? 선영이도 무슨 일이 있었겠지. 이유는 물어봤어?"



삐~~~!! 이 정도로 분위기 파악 못하는 미련한 남성이 바로 인티제다.

"속상했겠네. 아직도 많이 서운해?"처럼 공감이 우선 되어야 할 상황에서 합리적인 해결을 하고자 나선다. 해결사를 자처하며 미움을 산다. 이런 상황에서는 볼펜으로 손등을 열일곱 대 사정없이 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하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폭력은 되니, 심호흡을 크게 세 번 하고 화를 누른다.


"다행히 인티제에게도 반전은 있다."


연애 상대로는 최악이지만 남편으로는 괜찮다. 자기 것은 엄청 잘 챙기는 유별난 특성 때문이다. 부부가 됨과 동시에 일심동체가 되어 아내를 제 몸처럼 아끼고 사랑한다. 부족한 공감 능력을 책임감으로 채우며 나름 행복하게 잘 산다. 그렇다. 내가 바로 주인공인 인티제다. 출간한 책을 읽은 독자들은 종종 나를 '사랑꾼'이라 표현하는데,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좋은 아내를 만난 덕분에 사랑이 계속 피어나는 중이다. 그러니 인티제 남성들도 희망을 놓지 않았으면 한다. 좋은 짝을 만나는 순간, 당신의 삶에도 빛이 더해질 것이다.


그날이 꼭 오기를 바란다.




아내와 딸을 위한 해바라기와 작약 (2024. 06. 03.)


12년 차 인티제 남편인 나는 퇴근길에 종종 꽃집에 들른다. 7천 원짜리 꽃 한 송이가 주는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서다. 향기 가득한 꽃을 들고 현관문을 여는 순간, 꽃을 보고 환하게 웃는 아내와 딸이 내게는 늘 꽃보다 더 예쁘다.


"해바라기가 해만 바라보듯, 인티제 남편은 아내만 바라본다."


'최악의 남친'으로 꼽히는 인티제에게 결혼이라는 과정은 흐린 하늘에 해가 떠오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태양처럼 눈부신 아내를 만난 후, 서서히 '괜찮은 남편'으로 변하니까.




<발리, 꾸따 비치> 아내와 나


"오늘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가장 젊은 날이다. 예쁜 꽃 한 송이를 선물해 보는 것은 어떨까? 경험해 보니, 특별할 것 없는 일상도 꽃이 더해지면 특별날이 된다. 물론 꽃이 다발이면 더 좋다."


<인티제의 사랑법>은 지구상에서 오직 '2퍼센트 인구'만이 전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그들은 멀리서 볼 때는 차갑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온기가 가득한 사람들이다. 덕분에 인티제는 오늘도 '겉차속따' 겉은 차갑지만 속은 따스한 사랑을 한다.





비하인드 스토리


선물한 꽃 덕분(?)인지 발행 전 글을 읽은 아내가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한다.

"자기야, 제목을 <최악의 남친, 최고의 남편>으로 해서 라임을 맞추는 게 낫지 않을까?"

"음... 내가 최고의 남편은 아닌 거 같은데?"


3초 후.


"그렇지? 최고의 남편은 따로 있으니까. 그냥 괜찮은 남편으로 하자."











흑흑. 다음에는 꽃을 다발로 선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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