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니다/-ㅂ니다/-습니다
나 스스로 인생 최상의 난이도에 도전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지난 일이어서 인지 딱히 떠오르는 일이 없다.
병이나 죽음은 너무나 힘들고 아픈 경험이지만 도전이라 볼 수 없고, 각종 시험은 도전이기는 하지만 최상의 난이도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남녀가 만나서 사귀고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함께 살아가는 시간은 쉽지 않은 사건들을 동반한다. 그렇지만 결혼을 하기로 하는데 그리 큰 고민의 시간을 갖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 과정은 자연스러웠고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선배들이 갔던 길을 따라가게 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점차 다양한 주장과 모습으로 결혼이라는 형태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내가 만난, 만나는 그녀들은 최상의 난이도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외국 남자와 결혼하는 한국 여자보다 한국 남자와 결혼하는 외국 여자들이 내가 주로 만나게 되는 그녀들이다. 그녀들은 어느 날 갑자기 한국에 오게 된 경우가 많다.
남자가 여행을 갔다가, 여자가 여행을 왔다가 만나는 경우도 있고 지인들의 소개로 만나게 되는 경우, 소개소를 통하는 경우도 있다.
그녀들을 결혼에 이르게 하는 것이 무엇일지 나는 매번 궁금했다. 어떤 경우는 100여 년 전 중매쟁이를 통해 한 두 번 얼굴을 보고 결혼했던 선배와도 비교할 수 없는 최상 난이도가 아닐까 싶었다.
내 기억 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그녀 둘. 우즈베키스탄은 아시아계와 유럽계 혈통이 있다. 지리적으로 실크로드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 역사적으로 이란계, 튀르크계, 몽골계, 유럽계가 섞이게 되었는데 체형으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먼저 만난 그녀는 얼굴도 크고 엉덩이도 크고 다리도 굵은 예전 러시아 영화에서 본 듯한 몸집이었다. 한국에 온 지 10년 정도 되었었는데 한국어로 의사소통은 힘들었다.
셋째를 임신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이 부부는 대체 의사소통을 어떻게 하고 있는 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화가 났을 때 러시아어를 쏟아내는 그녀는 정말 화가 난 것 같이 보였다. 중장비 기사였던 남편은 돈을 버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친절했고, 요리에 진심이었고,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어 했다.
그녀는 몇 가지 기억을 남겼다. 자주 자신이 만든 요리를 맛보게 하고, 한국사람인 나에게 김장김치를 싸주기도 했다.
한 번은 금은방에 같이 가주기를 청했다. 이유는 목걸이를 팔려고 한다는 거였다. 남편이 돈을 안 주냐고 했더니 자신이 알아서 하고 싶다고 했다.
그때까지 나는 그런 경험이 없었다. 그러나 미숙하게 굴 수는 없었다. 금은방 사장이 준다는 돈 보다 더 줄 수 없느냐는 말도 내가 했다.
둘째 아이는 어렸을 때 심장 수술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항상 신경을 써야 하는 상태였고, 그녀 또한 임신성 당뇨로 호락호락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틈에 시간을 내서 한국어를 공부할 수 있을지 내가 봐도 이해가 되었고, 도무지 진도를 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의지가 있으니 신청은 했을 것인데.
아이들 학습에도 신경을 쓸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은 게임만 하는 것 같았고, 초등학교 1학년 딸은 휴대폰만 보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자주 커다란 웍에 닭볶음탕을 만들었다. 셋째를 낳는 것까지 볼 수 있었지만 한동안 멀어졌다.
그리고 얼마 전 들은 소식은 그녀가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자녀 서비스를 들어간 선생님에게 듣기로 넷째를 낳다가 그랬다는 거였다.
이게 무슨 어이없는 소린가. 그 사이 또 임신을 했었다고? 셋째를 가졌을 때 이미 몸이 너무 안 좋았는데,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 남겨진 아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될 것인가. 엄마를 잃은 집은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있다고 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여러 날 결혼식을 한다면서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주곤 했었는데...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려고 했었던 그 노력이 아이들에게 전해졌길, 한국의 시스템이 그녀의 남겨진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작동하기를 바란다. 그녀는 한국 국적을 갖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나중에 만난 그녀는 작은 몸집에 눈이 아주 큰 인형처럼 생겼었다. 입국한 지 3년 정도 되었었다. IT 쪽 일을 한다는 남편은 재혼이었고,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고 있었는데 문제는 학습에 있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한국어 선생님이 아니라 가족 상담사가 되어야 했다. 그녀의 시어머니는 나에게 전화를 해서 며느리 험담을 했다.
그녀는 자주 울었다. 남편은 어머니 편을 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고 있는 것 같았고, 시어머니 또한 분노하고 있었다.
폭력 사태가 발생하고 경찰에 신고를 하고 쉼터에 가기도 했지만 이혼은 쉽지 않았다. 그녀는 아이들을 포기할 수 없었고, 모국으로 돌아갈 생각도 없었다. 한국어를 공부할 마음의 시간이 조금도 없는 것 같았다.
스물세 살, 너무 어린 나이였는데 안타까웠다. 대학도 갈 수 있고, 전문적인 직업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이 학습 능력도 좋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조언이라는 것이 시어머니와 분가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현실이 되었다. 그녀의 남편이 한국 일을 접고 싱가포르에 있는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시어머니가 같이 간다고 했다가 안 간다고 했다가 말을 바꿀 때마다 지옥과 천당을 오가는 것 같았다.
싱가포르에서 그녀는 셋째를 낳았다. 남편과 세 아이와 그녀는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았다. 스승의 날이나 크리스마스에 그녀에게서 문자가 오곤 했다. 한국어를 잘 못해도, 문자가 없어도, 그녀가 예쁘게 나이 들어가면 좋겠다. 그녀는 아직 한국사람이 아니다.
나중에 만난 그녀의 엄마가 한국에 오면서 고향 음식을 조금 싸가지고 왔었다. 그중 작은 사과가 몇 개 있었는데 하나를 나에게 맛보라며 주었다.
나는 그것을 먼저 만난 그녀에게 갖다 주었다. 그녀는 한눈에 그것이 고향의 사과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내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그녀는 한국에 온 후 한 번도 고향에 다녀오지 못했다고 했었다. 아마도 이제 고향을 마음껏 볼 수 있게 되었겠지.
-입니다 : 명사에 붙어 주어가 지시하는 대상의 부류나 속성을 지정하는 뜻
-ㅂ니다, -습니다 : 동사나 형용사에 붙어 사실을 서술. 어간의 받침 유무에 따라 형태 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