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히다/ 먹이다
엘리베이터 1층에서 남자아이가 탔다. 처음 보는 아이였는데, 1학년이나 2학년쯤 되어 보였다. 손에 얇은 나무 위에 색칠을 한 비행기 같이 생긴 것을 들고 있었다.
아이가 웬일로 인사를 했다. 요즘 아이들은 낯선 사람에게는 인사를 하지 않는다.
"비행기를 만들었구나?"
"글라이더예요."
"아주 잘 만들었네. 날려 봤어?"
"네."
아이가 입을 오물오물하며 자랑스러워한다. 글라이더를 나에게 가깝게 보여준다.
"이건 어떻게 날아가는 거야"
"여기에 고무줄을 걸고 이렇게 하면 날아가요."
나를 향해 몸을 돌리고 실제로 보여주려 하는데 아이는 내려야 했다. 내리기는 했는데 문이 닫히기를 기다리며 나에게 손을 흔든다.
인정받는 순간이나 부정당한 기억은 아이에게 아주 중요한 성장 경험이 된다.
사회적 인식의 변화는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행에도 민감하고, 시대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것 같은데도, 유난히 인식의 변화는 느리기만 한 것 같다.
동남아에서 오는 그녀들은 한국에서 거의 알아듣는 사람이 없는 언어를 갖고 있다. 물론 살고 있는 나라의 언어를 익히는 것은 생존이기도 하다.
필리핀에서 온 그녀들은 상대적으로 덜 치열하다. 간단한 영어는 한국에서 유용하게 쓰이기 때문이다.
베트남어는 성조가 있어 배우기 쉽지 않다. 베트남은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중국의 영향력 아래 있었기 때문에 중국어에서 음을 가져온 것이 상당하다.
또 한동안 프랑스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문자 표기는 알파벳을 쓴다. 6 성조가 있어 'Hàn Quốc - 한국', 'Việt Nam - 베트남'처럼 알파벳 위아래로 기호를 붙여 높낮이를 표시한다.
어떤 때는 노래를 듣는 것 같지만 어떤 때는 싸우는 것 같기도 하다.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그녀들은 한국에 오면 전혀 모국어를 쓸 수가 없었다. 친구도 없고, 대화를 나눌 가족도 없고, 특히 시어머니가 싫어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중언어, 혹은 엄마나라 말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권장 사항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아빠는 한국어를 쓰고, 엄마가 다른 말을 사용할 때 자녀의 언어가 늦게 트이는 현상이 발생한다.
교육적으로 보았을 때 주 언어를 먼저 가르치고, 일정 정도 언어의 구조를 익혔을 때 외국어를 가르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집에는 엄마들만 있으니 외국어를 사용하게 되고, 아빠들은 집에서 말을 잘 안 하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적다 보니 아이들이 어떤 말을 뱉어야 하는지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되는 현상이다.
자녀를 출산하는 시점에 그녀들의 한국어 실력은 대체로 1단계 혹은 2단계쯤 일 때가 많다. 아직 한국어를 입 밖으로 내놓기 쉽지 않은 시점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서로 다른 말을 하는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한 두 살 아이들도 갈등하는 것 아닐까?
보통 첫돌 정도면 아이들은 한국어로 된 단어를 내뱉을 수 있고, 이후 꾸준히 낱말 종류를 늘려간다. 그렇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의 말은 늦어지게 된다.
아이의 상태를 걱정하기 시작하는 것은 2돌이 지날 때쯤 일 것이다. 이때부터 가족들은 적극적으로 말을 시키게 된다. 그러면 아이들은 더 말을 안 한다.
이미 아이들은 부정당한 경험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럼 아이는 이제 언어치료를 받으러 다니게 된다. 5살이 될 때까지 제대로 된 발음을 할 수 없게 되면 부모는 안절부절못하게 된다.
너무 일찍 공부를 시켜도 비슷한 현상을 보인다.
물론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많다. 초등학교를 들어가기도 전에 한국어도 잘하고 벌써 엄마 나라 말로 통역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 엄마에게 통역사 역할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
베트남에서 온 그녀는 한국 사람처럼 말을 했다. 책에서 배운 말하기가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쓰는 한국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국적취득을 하고 이름도 바꾸고 운전면허증도 취득한 상태였다.
5살 아들과 3살 딸이 있었는데, 그 아들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엄마만 알아들을 수 있는 발음이었다. 베트남어와 한국어의 중간 정도 되는 발음인 것 같았다.
다양한 국적의 그녀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우리는 발음이나 문법이 잘못된 문장이라도 일반인보다는 훨씬 잘 알아듣는 편이다. 그런데 그 아이는 그렇지 못했다. 발음을 교정해 주려하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자기가 틀렸다는 것을 또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언어치료를 받기 시작하면 아이에게는 그것이 말이 아니라 공부가 되기 시작한다. 센터에는 신청자가 줄을 서 있다. 외부에 있는 언어치료센터는 비용도 만만치가 않다. 반대로 세 살 딸아이는 청산유수로 말을 쏟아 냈다. 부모의 관심이 독이 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읽고 쓰기는 차치하고 말하기가 제대로 되지 못하면 초등학교 생활에 지장을 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한글과 셈을 할 줄 모르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또래 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발음을 내뱉게 된다면 그 뒷일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그녀의 아들은 오히려 엄마가 베트남어를 쓰면 곧잘 따라 했다. 인정받은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걱정을 드러낼 수도 없다.
조금씩 천천히 지속적으로 애정을 갖고 말을 배울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해 줄 수밖에 없다.
'아니', '다시'라는 말보다 "잘했어. 이것도 해 볼까?"라고. 참고 기다려주는 끝없는 인내의 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먹히다) 피동사 : (동사로 쓰여) 남의 행동이나 힘에 의해 행해지는 동작. '-이-, -히-, -리-, -기-'
(먹이다) 사동사 : (동사와 함께) 주어가 목적어(사람, 동물, 사물)에 어떤 행동을 하거나 어떤 상태에 이르도록 할 때, '-이-, -히-, -리-, -기-, -우-, -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