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풍경 2

신세계 러시아

몇 년 전인지 모르겠으나 러시아의 경제상황을 담은 장면을 텔레비전으로 본 적이 있다. 슈퍼마켓은 문을 여는 시간이 제한돼 있었고 그나마 물건이 얼마 없었으며 배급의 개념으로 물건을 구하는 장면이었다. 물론 그런 상황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만 우리나라 슈퍼마켓보다 푸짐할 줄은 몰랐다. 우리는 캠핑카 때문에 주차장이 큰 대형슈퍼마켓을 이용했으므로 친구들과 갔던 유럽의 슈퍼마켓 보다도 더욱 푸짐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값싸고 신선한 야채와 과일은 물론 질이 좋은 유제품들과 싱싱한 고기들이 그득했다. 먹음직한 조리음식들은 질이 좋고 값도 싸서 부담 없이 러시아의 음식을 경험해 볼 수 있었다.

대형 주차장 갖춘 슈퍼마켓과 화려한 과일 판매대 모습. 적은 예산으로 다양하고 풍성한 식재료를 구입할 수 있다.

그런 슈퍼마켓보다 더 나를 감탄시킨 것은 자동차 수리를 기다리다 우연히 들른 대형 베이커리였다. 러시아도 외식 비용은 만만치 않은 걸 경험한 터였다. 광민 씨는 차 때문에 지쳐 보였고 비싸도 조금 맛있는 걸 주고 싶어서 큰 맘먹고 들어 갔는데 가격이 의심스러웠다. 혹시나 해서 큰돈을 냈는데 엄청 싼 가격이었다. 생과일 잼이 듬뿍 들어간 빵이 두 개에 10 루블 200원, 식빵으로 먹는 담백한 빵은 이보다 훨씬 싸다. 더구나 너무 맛있어서 함께

함께 시베리아를 넘기로한 조 선생님네도 사다 드렸다. 그리고 이때부터 우리의 본격적인 빵 여행이 시작되었다. (의외로 유럽엔 베이커리가 흔치 않았다. 슈퍼마켓에 베이커리가 같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커피는 상대적으로 너무 비쌌다. 작은 컵 한 잔에 200 루블 4천 원. 여기서 시작된 아리송한 물가는 러시아 여행 중 가끔씩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작은 물 한 병에 사과가 세 보따리?

우리를 도와주신 조 선생님을 대접하려고 갔던 하바롭스크 레닌광장 앞의 한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150m 작은 물 하나가 150 루블이었을 때는 갑자기 마음이 불편해졌다. 얼마 전에 우리는 40 루블짜리 커다란 수박을 두 가족 네 명이 몇 번에 걸쳐 나누어 먹었었고, 길에서 만난 사과장수 할머니에게 사과 한 보따리를 50 루블에 샀던 것이다. 리나라에서라면 무료로 주는 물을 수박 세 통이나 사과 세 보따리와 같은 가격을 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불합리 한가? 한국에서 수박 세 통값이면 둘이서 괜찮은 외식을 할 수 있는 가격이다. 물건을 살 때마다 수박 값과 사과값이 기준이 되다 보니 비싼 물건을 사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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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이 주인공

러시아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었던 초 대형 트럭이 매우 많다. 많은 물건을 싣고 먼 곳까지 이동하는 운전자의 휴식을 위한 곳이 트럭 카페다. 우리도 트럭 카페를 자주 이용하게 되었는데 도시의 식당보다 러시아의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으며 가성비 좋은 곳이 많다. 처음 시베리아를 통과하는 동안에 만나는 트럭 카페에서는 무료로 정박할 수 있었지만 모스크바에 가까워질수록 유로로 변화고 가족단위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유원지 같은 시설이 갖춰진 다양한 트럭 카페가 나타난다.

고급스러운 카페부터 트럭기사들이 주 고객인 트럭카페까지 다양하다. 트럭카페에서 러시아 전통 음식을 값싸게 먹을 수도 있다.

노보시비르스크를 지나던 어느 날의 일기 중에서

큰 도시가 가까워질수록 트럭 카페가 더 크고 분위기가 화려해진다. 음식은 여전히 매우 만족스럽다. 맛에서도 감동이고 가격에서는 경이로움마저 느낀다. 그런데 식당보다 더 재미있는 건 화장실이었다. 우리는 가능한 한 유료화장실은 이용하지 않는 편이지만 시설이 좋아 보여 큰 맘먹고 들어갔다. 하지만 건물이 오래되어 그런지 물에서 쇠 비린내가 심해 세수를 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화장실에서 누군가 지켜주는 가운데 편히 볼일을 보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게다가 오늘 갔던 화장실은 특별했다. 안에 식당도 있고 작은 상점도 있다. 건물의 주인공이 화장실이라니! 식당이나 상점에 화장실이 딸린 것이 아니라 당당히 화장실이란 간판이 걸린 곳 안 쪽에 식당과 상점과 휴게실이 딸린 것이다.

화장실에 사람이 있어서 앞에 있던 럭셔리 소파에 앉아 기다리는 동안 드나드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바깥에 우리가 이용했던 메인 카페의 3분의 1 쯤 되는 귀여운 식당은 단골 트럭 기사들이나 직원들이 이용하는 곳인 것 같다. 샤워실은 거의 끊이지 않고 기사들이 드나든다. 분명 쇠 비린내 나는 물이었을 텐데 피로를 말끔히 회복하고 나온듯한 얼굴들이 상쾌해 보인다. 그들 중에는 상점 주인에게 맡겨놓은 커다란 비닐봉지를 건네받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단골인가 보다. 상점에는 앞 쪽에 아주 많은 트레이닝복 바지가 수북하게 걸려있다. 광민 씨에게 혹시 필요한 게 있을까 살펴보니 가격은 600에서 700 루블 사이인데 큰 사이즈가 대부분이고 너무 얇다. 러시아 날씨는 하루하루 추워질 텐데 두꺼운 옷을 발견하기 힘들다. 러시아는 추운 나라라 두꺼운 옷을 장만할 수 있을 거라며 기대했는데 걱정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화장실에서 아이쇼핑을 하고 있네. 다시 생각해도 저절로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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