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유난 떠는 거 아냐?
처음엔 그냥 일반 독감 보다도 치사율이 낮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과잉 반응하며 공포를 조장하는 언론에 반감이 생겼다. 그래도 정부의 즉각적이고 적절한 대응에 공포는 곧 사라질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휴대폰을 울리는 재난문자가 점점 많아지자 과잉 대응하는 정부의 속내도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사회적으로 너무 많은 공포를 조장하고 국력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증상이 심한 사람들만 검사를 한다면 이런 난리를 겪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졸업식과 입학식은 취소되고 개학도 두 번씩이나 연기되었다. 회사원들은 재택근무, 식당은 배달로 바꾸는 경우가 많아진다. 의료와 방역 종사자들, 질병본부 사람들은 탈진이 걱정될 정도로 무리하고 있고, 소상공인들은 당장 먹고 살 일이 걱정이다. 2월 5일 국내 첫 확진자가 발표된 지 한 달째 되는 오늘(3월 4일)로 확진자 수는 5300명을 넘어섰다.
무한정 찍어대도 모자란 마스크, 무한정 늘어가는 검사자, 확진자들의 진단비용, 치료비용은 또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시간이 지나면서 피해는 여기저기서 눈덩이처럼 불어나 재난 영화를 방불케 한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만일 신종 코로나가 지금보다 훨씬 더 치명적인 바이러스였다면?
갑자기 소름이 돋는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인가? 그것은 나라 전체가 세월호가 되어버리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코로나 사태에 투명하고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는 것은 혹시 올 지 모르는 무서운 전염병에 대비할 수 있는 고마운 훈련의 기회다.
불행 중 다행인 점은 바이러스가 아직 전국적으로 확산되지 않고 대구 경북 지역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지난 2월 19일 대구 경북 지역에서 처음 확진자가 13명 무더기로 발생한 이래 2주 만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서 보름 만에 대구 경북지역의 확진자만 4천 명을 넘긴 점을 생각하면 대단한 선방이다. 확진자의 경로를 끊임없이 추적하여 접촉자를 알아내고 검사하고 격리하는 과정은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빛의 속도였다. 그 결과 중국처럼 도시를 폐쇄한 것도 아닌데 전국 확산을 아직까지는 잘 막고 있다.
질병본부와 방역 당국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우리가 힘겹게 역병과 싸우고 있는 사이 해외 언론은 우리 정부의 대처와 의료 방역 당국에 대해 칭찬을 잇고 있다. 많은 칭찬들 가운데 가장 애 마음에 와 닿은(찔렸던)것은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공공의료 분야에서의 정직함은 희망보다 더 큰 가치가 있다'였다.
나도 과잉 정직을 걱정한 장본인이니까.
호주 공영방송 ABC의 뉴스 앵커가 호주 당국에게 "이란 보다 한국에서 훨씬 많은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있는데 입국 제한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호주 내무부 장관은 "한국은 명백히 더 발전된 의료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계속 확진 사례를 공개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답했으니 바로 정직하고 투명한 우리 질병본부가 우리나라의 가치를 격상시킨 주인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려움을 오래 겪으며 지쳐 가던 사람들 앞에 여기저기 하나둘씩 천사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방호복 속에서 땀 흘리는 의료, 방역진들은 물론, 월세를 탕감해 주는 건물주들, 문 닫는 식당의 재료를 기꺼이 팔아주는 사람들, 정성스러운 손편지와 함께 소중한 기부를 하시는 분들...
그런 분들 덕분에 나도 나와 이웃을 격려하고 싶은 마음에 한 줄 글이라도 보태고 싶었다. 희망을 담아.
이 글을 쓰고 있을 때 올해 6학년이 되는 조카 유빈이가 친구와 영상통화로 파자마 파티를 한다고 자랑하러 왔다. 1년 전부터 절친과 약속했던 것인데 한 달째 미루다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며칠 째 집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아이가 친구를 만난다며 너무 좋아한다. 곁에서 보는 나도 저절로 흐뭇해진다. 한 사람의 행복한 에너지는 주위의 네 사람에게 전해진다고 한다. 나도 시골에 계신 아버님께 전화라도 자주 드려야겠다. 서로서로 행복바이러스를 전파해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물리쳤으면 좋겠다.
그래도 다시 한번 잊지 말 것은 공공의료 분야에서 희망보다는 정직함이 훨씬 더 가치 있다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