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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십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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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주 Jan 20. 2023

며늘아, 이번 설에는 오지 마라

결혼 13년 차에 처음 듣는 그 말

시어머니가 전화하셨다.


네, 어머니


뉴스에 나오는데

이번 설에는

길이 엄청나게 밀린다고 하더라.




이번 설에는 오지 마라.



네?



이번 설에는 오지 말고 쉬어라.






.........?






명절에 시댁에 가지 않은 적은 몇 번 있었다. 아이를 낳은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에도 먼저 말씀해 주신 것은 아니고 먼저 못 가겠다 하여 가지 않았다. 

물론 못 간다 해도 뭐라 한마디 하신 적 없는 시어머니다. 내가 힘들어 가지 않을 때도 싫은 소리 비슷한 이야기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많이 힘든가 보구나. 쉬어라 하실 뿐. 단지 아들을 너무 사랑하시고 손주들을 너무 보고 싶어 하시고 나를 많이 아껴주시는 것만큼 자주 보고 싶어 하신 점이 다소 부담이 되긴 하였. 


그러니

길이 막힌다고

오지 말라고 하시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아마도 작년 11월부터 12월까지 자주 뵈었고 또 지난주 남편이 혼자 내려갔다 와서인가 보다 생각해 본다. 


그렇다고 해도 아닌 것 같은데?


암만 생각해도 아닌 것 같단 말이다.


지난주만 해도



이번 설에는

절에 갈 때 필요하니

 애들 속옷을 가지고 와라.




라고 말씀하셨던 어머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아버지 잘 지내시나 뵈어야겠다는 말에

오려거든 설이 끝나면 오라고 하셨다.


생각했다.

그러다

더 생각은 않기로 한다.


모두가 움직이는 그 시각에

모두가 움직이는 그 전쟁에

이번은 참전하지 않기로.


내게 휴식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라는 생각만 하기로

결심.


'남편과 4일이나 있을 수 있구나.'


외출을 하지 않지만 꺼려지지만 희한하게도 남편과 있으면 용기가 난다. 내게 생기는 모든 일을 남편은  해결해 주거나 그게 아니면 그건 아무 일도 아니라고 말해줄 것이니까.  


20대.

친구들이 추석에 해외여행을 가자고 했다. 엄마는 안된다고 했다. 결혼하면 맘대로 살아도 되지만 결혼하기 전엔 명절에 해외는 안된다고. 그건 근본이 없는 행동이라고 여기신 것 같았다. 친구들은 다 된다는데 나만 안 되니 속상했다. 이런 푸념을 늘어놓는 나를 보고 나의 남자친구는 말했다. 나와 결혼해서 명절마다 여행을 가자고.




30대.

실은 한 번도 못 갔다. 사람에게도 관성이라는 게 있나 보다. 그게 대단했던지 조기교육의 힘인지 남편이 권해도 나는 명절에 대담한 여행을 갈 수 없었다. 어쨌든 명절은 나에게 기다려지는 순간은 아니었다. 엄마가 엄마 친구 딸 누구는 결혼하지 않고 엄마랑 같이 사는데 너는 왜 시집을 간 거냐고 농담하면 만약 엄마가 명절에 해외여행을 보내주었다면 아마 지금쯤 같이 살고 있을 거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건 진실에 가까운 말이기도 했다.

     

30대의 명절은 힘들었다. 어느 해였던가. 남편은 지쳐하는 나와 딸을 두고 아들과 둘이서만 시댁에 다녀왔다. 나는 버스를 타고 명동에 가서 나의 사랑 명동 칼국수'를 딸과 나누어 먹고 광화문에서 열리는 문화 축제에 갔다. 명절을 이렇게 보낼 수 있다니. 실로 행복했다. 미안하지만 너무 행복한 추석이었다 했더니 남편은 안도했다. 결혼 후 아이를 키우고 남편과 싸우고 시댁과 친정에 참 많이도 오가고... 멈춰있으나 참으로 치열했던 30대였다.   



40대.

남편과의 사이도 편안해지고 아이들도 많이 컸다. 달라진 나의 외모에 좌절하고 집밥보다 사 먹는 음식이 훨씬 좋고 예쁘고 좋은 곳에 가면 행복하고 남편과 그토록 싸워도 또 말할 수 없이 알콩달콩 했던 나의 30대가 저물었나 보다. 나의 외모보다는 건강이 중요하고 사 먹는 음식보다 내가 하는 음식이 맛있는 날이 더 많고 남편과 둘이 있을 때에 느꼈던 두근두근 설렘이 저만큼 멀어진 것이 나의 사랑도 늙었구나 싶다.  마음 깊이 이제야 아줌마가 되었구나 생각한다.  


아줌마 포스 물씬 나게 

나는

드디어 엄마에게 말하려고 한다.


엄마 나 이번 설에 쉬어볼게!


나를 작가님이라고 부르는 장난꾸러기 남편에게 이번 넷이서 쉬자고 하면 보나 마나 흔쾌히 오케이를 외치며 말할 것이다.


어디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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